오늘의 출석부
이원규 선배님의 시민토론회 기조 강연을 듣고 와서.
본문
어느 나라이든 , 어느 조직이든 역사와 전통이 있다 . 대한민국의 과거는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다 . 과거사에 대하여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 기억하려 들지도 않는다 . 우리 인천고등학교 총동창회는 과거의 우리 선배님들의 족적을 발견하려고 노력 중에 있고 , 그 노력 중에 우리 인고 인물사의 편집을 계획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 선배님들의 빛나는 흔적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 그러므로 이러한 빛나는 흔적들을 발굴하여 미래의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겨 줄려고 하는 것이다 .
우리 인천고등학교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자랑스럽다 . 일류고등학교로 평가를 받든 , 못 받든, 우리는 모두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이다 . 그리고 우리가 졸업한 인천고등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 그 작업을 65 회 이원규 선배님에게 맡겼다 .
그런데 이원규 선배님이 ‘60 년 망각의 세월 , 조봉암이 남긴 평화의 씨앗 ’이라는 시민 대토론회의 기조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 자랑스러운 인고의 선배님이 하시는 강연에 참여하고 픈 마음이 들었다 .
이원규 선배님은 1988 년 《침묵의 섬 》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소설부문 )을 , 1990 년 《황해 》로 박영준문학상을 , 1993 년 《천사의 날개 》로 동국문학상을 받았던 명망있는 소설가이신데 , 이 선배님이 조봉암 평전 출간을 계기로 , 죽산에 대한 사법살인 사건이 대법원 재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되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자 , 이제 인천 시민 대토론회가 열리게 된 것이었다 .
이념은 인간의 사고 속에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사고 속에는 진보적 사고도 존재하고 있고 , 보수적 사고도 존재하고 있다 . 이제 이원규 선배의 기조 강연을 들으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의 조봉암을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은 정말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이원규 선배님의 기조 강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
왜 오늘 다시 죽산인가에 대하여는 이원규선배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이야기 하였다 .
죽산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의 사법 재판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천 출신의 인물로 , 독립운동가 , 초대 농림부 장관 , 국회부의장 , 대통령 후보 였던 분이다 .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에 대하여는 이제 자유롭게 논의를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
첫째 , 죽산에 대한 명예회복은 국격과 국가양심의 회복을 의미한다 .
둘째 , 1956 년대의 책임정치 , 수탈 없는 계획경제 , 민주적 평화통일의 3 대 정강정책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이념으로 절실한 과제임을 깨닫게 한다 .
셋째 , 신념을 향해 전진하다가 두려움 없이 쓰러진 실천가로서의 죽산에 대한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넷째 , 억울한 죽음에 대한 위무와 진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그리고 죽산이 실현한 꿈은 우리 역사 1 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소작제도를 단번에 끝나게 한 농지개혁으로서 그가 입안한 농지개혁법은 이 나라의 공산화를 막았다 .
소작농들이 6. 25. 이후 북으로 간 박헌영이나 김일성이 기대한 대로 공산당 편에 서지 않았기에 김일성의 뜻대로 적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고 , 그 밖에도 6. 10 만세 사건의 지휘는 죽산이 상하이에서 원격 지휘한 사건으로 독립과정에서의 일제와의 투쟁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
그리고 죽산이 실현하지 못한 꿈으로는 한국의 진보주의인데 ,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하여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점을 들었다 .
죽산이 외친 평화통일 (당시로서는 이승만 정부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시기였음 )과 평등과 정의 사회의 구현은 오늘날의 보수세력의 이념과 다를 바 없음에도 그의 평화 통일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같다고 하여 국가변란이요 반역이라고 밀어 붙여 결국 사법살인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 죽산이 얻은 216 만표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득표력인데 이것이 두려워 이승만 대통령이 영원한 종신 대통령을 꿈꾸기 위하여 조봉암을 사법살인했다는 것이다 . 공산주의자로 몰아 붙여서 말이다 .
죽산은 손아랫동서인 윤길중 변호사에게 ‘언젠가는 평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며 , 씨를 뿌린자가 거둔다고 생각하지 않고 , 자신은 씨만 뿌리고 간다 ’면서 유언을 했다는 대목은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
이원규 선배님은 또한 죽산에 대하여 앞뒤가 꽉 막힌 외골수가 아니라 정반합적 변증법론을 뛰어 넘은 인물이라면서 , 그가 조선 공산당을 창당하였다가 그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전향을 하였던 점을 들었고 , 민족주의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상하이 망명정부 시절 상대방을 포용하였다는 포용력을 죽산의 덕목으로 들었다 .
동료의원들로부터 특히 반대파의원들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국회 부의장으로서 상대방을 존중한 점은 오히려 반대파의원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는 점을 들었다 .
이제 죽산에 대한 명예 회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면서 독립유공훈장의 추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
2011. 1. 20. 대법원에서 “이 사건은 정권에 위협이 되는 야당정치인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표적 수사에 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한 사건으로 , 민주국가에서는 안될 비인도적 , 반 인도적 인권유린이자 정치 탄압사건이다 .”라고 판결한 이유를 들어 , 그의 명예회복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아직도 죽산이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 죽산은 광복이 후 반공주의자로 살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 2017. 7. 망우리 묘소 추모제 당시 대통령의 조화가 놓인 점을 보며 , 2 년 뒤인 탄생 120 년 , 서거 60 주년이 되면 국가 보훈처로부터 서훈이 되지 않겠냐는 바램을 강조하였다 .
이원규 선배님의 기조 강연 뒤에 참석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멘트는 우리의 시각을 바로 잡아 주는 시각이 되기도 하였다 .
죽산 조봉암은 동경 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이동화와 손을 잡았는데 , 그가 입안한 사회민주주의 강령이 공산주의자로 둔갑되는 계기가 된 것이라며 , 사실상 죽산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 죽산 주변에 함경도 출신의 이명화 , 전혜령 , 김기철 , 윤길중등이 있었는데 , 함경도 출신 이명화의 득세가 대구의 서상일을 놓치게 함으로서 결국 공산주의자로 둔갑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하였고 , 강원용목사 , 김재준 목사 , 그리고 조향록 목사와의 광릉 회합시 기도 내용을 들기도 하였다 .
아울러 남재희 장관은 뜻밖에 인천의 제물포고등학교 출신의 심재갑 선배님 이야기와 지용택 선배님이 인천일보에 썼던 칼럼 중에서 JOE STUDWELL 의 “아시아의 힘 (HOW ASIA WORKS : SUCCESS AND FAILURE IN THE WORLD’S MOST DYNAMIC REGION)의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 이 언급에 심히 놀라기도 하였다 .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 남재희 전 장관님과 합석하여 저녁을 같이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 이 자리에서 심재갑 선배님이 제물포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인천고등학교 출신이심을 말씀드렸다 .
이원규 선배님의 강의를 정리하면서 , 이원규선배님의 강연이 한편으로 , 인천시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 다른 한편으로는 인천고등학교 동문들의 자긍심으로 자리 잡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
2017. 11. 15.
인천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이기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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