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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경 훈(70회)/브라보! 나의 인생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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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공단 주최 제1차 은퇴설계교육 변화성공 수기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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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나의 인생2막
/박 경 훈
지금부터 4년 전인 2013년 9월, 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4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6개월 남은 퇴임 후의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New Life 미래설계 연수’에 참석차 수안보상록호텔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퇴임 후의 생활에 대한 기대보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었다. 하지만 4박5일간의 연수를 통해 여러 저명한 강사님들과 퇴직 선배들로부터 유익하고 생생한 강의를 듣다보니 막연했던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앞날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 퇴직예정자들이 가장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던 공무원연금개혁에 관한 것이었지만 정작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퇴임 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인간관계, 일자리 탐색, 여가 설계, 자원봉사 등의 분야였다.
그 중에서 내가 감동 깊게 들은 과목은 박영재 중앙이아이피(주) 전문의원의 ‘일자리 탐색’이란 강의였는데 그 강의는 ‘우리가 지내야 하는 노후 기간은?’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그 질문에 “퇴직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주는데, 예를 들어 55세에 퇴직하여 90세까지 35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하루 24시간 중 잠자고, 식사하고, 친구 만나는 등으로 소비하는 시간을 13시간 정도로 잡고나면 11시간의 개인시간이 남는다. 그렇다면 하루 11시간 × 365일 × 35년 = 14만 5백여 시간이란 계산이 나온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10만 시간은 나올 텐데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 많은 시간을 TV 앞에서 빈둥빈둥 보내거나 동네 산이나 다니면서 헛되이 보내지 말고 외국어나 악기 등 무엇을 배우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라고 하시던 강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매일 3시간씩 약 10년, 혹은 매일 10시간씩 약 3년 훈련하면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1만 시간의 법칙’이론이 새삼 머리에 떠올랐다.
그 강의에서 기억에 남은 또 하나의 내용은 은퇴한 후에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인간은 일과 휴식의 균형을 추구해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며, 만약 일을 하지 않으면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면과 더불어 일을 함으로서 얻는 보람과 기쁨은 다른 그 무엇에도 비할 데 없다는 강사님의 말씀에 공감하며 나도 나 자신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꾀하고, 또한 내가 지닌 지식과 능력을 활용하여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사회의 공공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무언가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을 영어교사로, 그리고 전문직과 관리직으로 살아 온 교육자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설계도와 리스트를 작성해야 했다. 그동안 나의 인생에서 오랜 친구처럼 지내왔던 여러 일 중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고, 한때 배우다가 포기했던 것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새롭게 도전할 것 등을 선정하여 좀 더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세우고, 그 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나의 경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먼저 찾아내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에서 2014년 2월말에 퇴임한 후 바로 인천가톨릭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 인물스케치 과정에 등록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그리기를 좋아해서 장래 만화가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주 화요일이면 스케치북과 4B연필을 챙겨 열심히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처음에는 선 긋기, 원 그리기, 명암의 농도 표현하기 등의 기초부터 시작하여 차차 인물의 특징과 표정을 나타내는 단계까지 배운 후 그 해 12월에는 1년 동안 함께 공부한 회원들과 합동으로 인천의 한 쇼핑몰 갤러리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한편으로 매주 월, 수요일에는 인천시 산하의 한 평생교육기관에서 일본어와 중국어에 도전하였는데 이 공부는 지금까지 3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새롭게 외국어 공부에 도전한 이유는 외국어 공부가 치매 예방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은 언제라도 자유여행을 갈 수 있는 곳이고 그럴 때 그 나라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훨씬 실속 있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는 어학에 소질도 있었고 또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일본어와 중국어 모두 중급과정까지 수료해 이제는 어느 정도 회화도 가능해지고 해당 언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절반은 알아듣는 수준에 도달했으니 이것 또한 퇴임 후 3년 동안 얻은 크나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외국어 공부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교양을 높이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림 그리기 역시 인격수양이나 정서함양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나의 능력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고심하고 있던 어느 날 신문에서 아코디언 수강생을 모집하는 서울 어느 음악학원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렇지, 악기를 하나 배우자. 악기를 연주하면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해줄 수 있지 않은가. 특히 아코디언은 다른 악기와 달리 독주는 물론 여러 사람이 노래 부를 때 반주도 가능하니 어디에서든 환영 받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 나는 바로 다음 날에 종로에 있는 ○○아코디언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나의 음악 실력은 대학 다닐 때 폼으로 통기타 좀 만져보고, 나이 들어서는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 문화센터에서 오카리나를 불어 본 게 전부였던 거의 초보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악보도 빨리 읽지 못할 뿐 아니라 피아노는 평생 손도 대 보지 않은 내게 있어 아코디언이란 악기는 요즘 말로 소위 ‘넘사벽’, 즉 넘지 못할 벽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피아노는 건반을 보고 치지만 아코디언은 악기를 세워서 연주하기 때문에 건반을 볼 수 없어 오른 손이 자기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도, 미, 솔 등의 기본 건반에 표면이 거친 스티커를 붙여 손가락이 그 스티커를 더듬어서 제 위치를 찾도록 했고, 악보에도 한글로 계명을 표시하여 외우는 등 음악을 공부한 사람보다 몇 배의 정성을 들여야 했다. 그 뿐 아니라 매주 한 번, 하루 한 시간의 레슨을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왕복 여섯 번 갈아타며 서울에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가버리는 가운데 몸은 파김치가 되는 일과를 3년 동안 반복하였다.
게다가 아코디언은 오른손이 건반을 칠 때 왼손은 바람통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하고, 또한 멜로디와 화음을 병행해서 연주해야 하는 어려운 악기라 열 명이 시작하면 일고여덟 명은 한 달도 지나기 전에 지쳐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나도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었지만 그럴 때마다 “슬럼프는 내 마음 속의 꾀병이다.”라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의 말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 연습에 매진한 결과 1년이 지나니 조금 아코디언의 세계를 알게 되고, 2년이 지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쉬운 곡이나마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고, 3년차인 지금은 어지간해서는 무대에 서도 떨지 않고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정기적으로 여러 노인요양시설에 가서 어르신들을 위해 아내와 함께 오카리나를 불기도 하고 아코디언 연주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노인요양원에서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라는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이란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 앉아계시던 어느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께서 일어나시더니 그 노래를 높은 소프라노로 따라 부르시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연주를 들려드려도 별 반응이 없던 분이었는데 그 노래에는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었는지 고운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부르시던 백발의 고운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하나 퇴임 후에 시작한 봉사활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전공을 살려 영어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그 강의는 2015년 8월에 받은 한 통의 전화가 계기가 되었다. 전화를 걸어온 곳은 인천시평생학습관인데 나에게 지식재능기부를 할 의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어느 종편방송에서 방영한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보고자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져 ‘시니어 여행영어’란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를 맡아 줄 사람을 여기저기 물색하던 중에 인천시교육청에서 나를 적임자라고 추천한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40여년을 교육자로 봉직하다 퇴임한지 불과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 교단에서 평교사로 수업을 한지는 제법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영문학, 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에서 오랜 기간 영어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에다 많은 해외여행 경험, 그리고 인천국제고 교장 등을 지내며 쌓은 다양한 국제교류활동의 경험을 살려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뜻있는 일일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제의를 수락하였다. 그래서 우선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에 두 시간씩 강의를 하기로 하고 드디어 그 해 9월 3일에 24명의 수강생과 함께 첫 수업을 시작했는데 강의에 오신 분들은 모두 60세 이상이었지만 뜻밖에도 놀랄 만큼 젊고 건강한 멋쟁이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영어실력이 수준급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에는 교장으로 퇴임한 분들도 있었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분들도 있었다.
수업은 교재를 중심으로 '기내에서, 입국하기, 호텔에서, 쇼핑하기…' 등 해외여행의 전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따른 영어표현을 익히고 반복연습을 통해 회화능력을 키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강의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각종 영상자료를 만들어 활용하였고 매일 강의 끝에는 감미로운 추억의 올드 팝송도 한 곡씩 선정하여 가사의 뜻을 해석해 보고 문법 요소도 익히고, 동영상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예정된 두 달의 강의를 마쳤다.
일단 강의를 시작하니 옛날에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던 왕년의 실력(?)이 되살아나 수강생들의 80% 이상이 개근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강의가 돼버렸다. 그러다보니 여행영어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강생들이 한 명, 두 명씩 늘어 수강 인원을 30명으로 늘리고 기간도 두 달 더 연장하여 그 해 연말까지 강의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한 강의는 점점 더 소문을 타고 퍼져 지금까지 3년 째 계속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인근 인천연수도서관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와 매주 화요일에는 연수도서관, 목요일에는 평생학습관에서 인기 강좌로 계속되고 있다. 특히 평생학습관에서는 이제는 정식 예산을 편성하여 소정의 강의료도 지급하여 주고 있다.
얼마 전에 '인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40년간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던 70세의 한 남성이 어느 온라인 쇼핑몰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하여 30대 여성CEO와 다른 젊은 직원들의 멘토가 되어 엮어나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인데 그 영화에 "Experience never gets old."란 부제가 붙어 있다. 그 뜻은 "경험은 결코 나이 들지 않는다."라는 말로 어른들이 쌓아올린 지혜와 소중한 경험들은 결코 녹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우리 퇴임 공직자들도 뒷방 신세를 지지 말고 현직에 있을 동안 자신이 쌓아 온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무기 삼아 현실로 뛰어 들어 사회 속에서 어울리며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퇴임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제2외국어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시작하고 그림 그리기와 아코디언 연주하기를 배웠으며, 평생 해 온 일이었던 영어교사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교육기부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이것들이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이 되어 버렸다. 강의 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이나 악기를 들고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또 거기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순수하게 내가 지닌 능력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취미로 시작한 일이 특기가 되었고, 그 특기가 이제는 나 자신의 자아실현 뿐 아니라 귀여운 손주에게 과자나 책을 사 줄 돈까지 벌게 해 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 ‘브라보! 나의 인생2막’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변함없이 인기 있는 영어 강사로 사랑받으며 현재 하고 있는 강의를 계속하고, 또한 실력 있는 아코디언 연주자로 자리매김하여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만일 기회가 온다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받은 미래설계연수가 계기가 되어 불과 4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변한 현재의 내 모습을 퇴임을 앞두고 있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보여주며, 그동안의 경험과 과정을 그림으로도 그리고 악기도 연주해 가며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어 우리 후배들이 퇴임 후의 나날을 보다 의미 있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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