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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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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목
고향 강화에서 인천 오갈 때 초지에서 동양기선의 황보호를 타거나 내린 적은 많았지만 갑곳에서 출발하는 황보호를 타본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아버지와 함께 갑곳에서 황보호에 올랐다. 정원이 삼백 명 정도인 황보호는 초지에서 대부분의 승객이 타고 갑곳에서는 승객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날도 얼마 안 되는 승객을 태워 텅 비워있다시피 한 황보호의 이층 갑판에 자리를 차지한 나는 갑곳을 출발해 초지까지 도착할 때까지 배 위에서 염하 좌우로 펼쳐지는 새 풍경을 살피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다소 지루하게 좌편의 김포와 우편의 강화 풍경이 이어지다가 제법 좌우의 경치가 좋아진다고 느끼기 시작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어디까지가 김포이고 어디까지가 강화인지 도무지 구분이 힘든 곳에 이르자 나는 내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 너머 좌우로 야트막한 숲이 계속 연하여 이어지는데 도무지 배가 나아가는 앞쪽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황보호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암만 보아도 배는 꽉 막힌 뭍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었다. 좀 전까지는 좌우로 비슷한 거리에 강화 땅 김포 땅을 끼고 계속 앞이 틔어 있었는데 이젠 앞이 꽉 막혀 보이기 때문에 곧 배가 땅에 다다를 기분이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곁에 서있던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냈다.
“효철아, 여기가 어딘 줄 아냐. 여기가 바로 선돌목이란다.”
“선돌목요?”
내가 처음 들은 것처럼 대답하니 아버지는 다시 찬찬히 설명한다.
“왜 옛날 임금이 강화로 피난 갈 때 뱃길이 막힌 것 같아 뱃사공을 의심해 목을 쳤다는 곳이 바로...........”
“아, 알겠어요. 죽기 전에 쪽박을 물에 띄웠다는 곳 그곳 말이군요. 여기가 바로 그 선돌목이란 말인가요?”
나는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준 뱃사공의 이야기를 기억해내곤 큰 소리로 말했다.
배를 타고 피난 가던 임금은 앞이 꽉 막힌 방향으로 배를 모는 뱃사공을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사공이 임금을 적군에게 팔아넘기려는 수작으로 믿고 뱃사공의 목을 치라 하니 뱃사공은 내가 죽더라도 이 쪽박을 따라 배를 몰면 뱃길이 나온다며 쪽박을 물에 던진 후 참수를 당했고 쪽박 따라 흐르던 배위의 임금은 얼마 후 뱃길이 열리는 걸 보고 크게 놀라 자기의 실수를 크게 한탄했다고 했다.
‘내가 가장 충성스런 백성의 목을 쳤구나.’
그런데 갑자기 그때 때 아닌 추위가 몰아쳐 그 뒤론 때 아닌 벼락 추위를 그 사공의 이름을 붙여 선돌추위라 했고 그곳을 선돌목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가 예전에 들려준 것이다.
“그래, 여기가 바로 그 선돌목이란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말하고는 계속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들과 같이 배에 올라도 아들이 갑판에서 구경을 하건 말건 선실에 자리를 잡고 아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가 그날은 선실에는 아예 들지도 않고 내 옆에 있었는데 아는 승객이 없어서라기보다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선돌목의 모습을 일부러 보기위해 내 옆에 계셨던 것 같았다.
정말 뱃길은 계속 막혀보였다.
황보호의 이층 갑판이면 예전의 돛단배에 비해 제법 높은 곳인데 거기서도 바닷길이 막혀 보이는데 하물며 사공 선돌의 낮은 배위에서는 더욱 의심이 클 수밖에 없었으리란 상상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있는데 얼마 후 갑자기 황보호가 크게 뱃고동을 울린다.
그러고 나자 얼마 후 곳 막혔던 바다가 탁 터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넓어진다. 김포 강화 사이는 더 벌어지며 오른 쪽 멀찍이 초지 선착장에 전마선과 승객들의 줄 서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초지에서 처음으로 황보호를 타던 날 멀리서 뱃소리가 나다가 뱃고동 소리가 들린 후 갑자기 뱃머리가 나타나던 곳이 바로 여기 선돌목이였구나 하며 나는 들뜨는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초지에 도착한 황보호는 전마선으로 두어 번 승객과 짐을 싣고서는 물가 쪽에서 후진한 후 인천을 향하여 뱃길을 잡았다.
한산했던 황보호는 초지에서 거의 만선을 이루었고 아버지는 곧 선실로 들어갔지만 나는 평소처럼 갑판에 서서 황보호가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바다구경을 계속했다.
그런데 좀 전에 경험했던 선돌목의 신기한 광경이 뇌리에 깊이깊이 돌이켜졌다.
그러면서 언젠간 다시 그 곳 선돌목을 지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날의 그 경험이 나에게 선돌목을 지난 처음이자 마지막 뱃길이 되었다.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쯤 아예 갑곳에서 인천사이의 뱃길이 끊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강화에서 서울 인천으로 시외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똑대기 시절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요즘 어쩌다 강화도에 들러 그 쪽 해변도로를 다녀 봐도 선돌목의 옛 뱃길 풍경을 살려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까지 해 본다.
뱃길이 끊긴 그곳에 선돌목 관광 나루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잘만하면 아주 훌륭한 역사관광 코스의 하나가 될 거다 하며 말이다.
통상의 관광나루가 아닌 이런저런 이벤트도 했으면 어떨까.
관광객을 태우고 선돌목을 지나기 전 승객 중에서 임금을 정하고 사공 선돌도 뽑고 사공의 목을 친 호위 병사 등도 선발해서 선돌목을 지나며 즉흥연극도 벌여보면 무척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보는데 염하가 남쪽으로 한참 세차게 흐르는 썰물 때 시간을 맞추어 관광선의 엔진도 멈춘 후 쪽박을 물에 던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거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뱃길을 다녀본다면 엣 모습 그대로 바다가 막힌 모습이 살아있을까.
만약 그 동안의 개발 등으로 인해 그 모습이 사라졌다면 무척 안타까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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