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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군함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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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똑대기 타고 강화에서 인천을 오던 중 인천 외항에 정박 중인 아주 큰 군함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데 강화 인천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었다면 아마 휴전이후 일거로 짐작되는데 내가 인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때가 일곱 살이던 1954년이니까 바로 그 전해인 1953년의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57년 전의 이야긴데..........
그날 내가 똑대기의 난간에서 본 그 군함은 무척이나 컸다. 회색으로 깨끗하게 칠이 되어있는 그 군함의 갑판위에 흰 복장을 한 수병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일 정도의 거리를 두고 똑대기는 한참시간동안이나 그 군함 옆을 지나갔는데 그 군함의 앞뒤로 달려있는 대포들은 무지무지하게 컸다.
군함위의 수병들이 장난감모양 작아 보일 정도로 큰 그 대포는 군함의 앞쪽에 세 개씩 세 개씩 여섯 개에 뒤쪽에 세 개 해서 모두 아홉 개나 달려있었는데 맨 앞의 세 개는 포가 서있는 각도가 각각이었고 나머지 여섯은 가지런히 포구에 국방색 마개가 씌워진 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워낙 큰 대포는 포 구멍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아니겠나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군함의 뱃머리로부터 군함의 끝부분까지 똑대기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는데 배 끝 쪽 그러니까 선미에 달려있어서 바람에 펄럭이는 성조기의 모습까지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지금 그 광경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 군함은 선수를 강화도 쪽, 그러니까 북쪽방향에 닻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시간이 썰물 때라는 증거다.
강화에서 인천을 오가는 연락선들은 밀물 때 강화 쪽으로 올라갔다가 썰물 때 인천방향으로 내려왔는데 인천 앞바다의 물살은 워낙 빨라서 시간당 시오리정도는 족히 흘러가므로 물살 방향에 따라 운항시간을 정해서 뱃길 시간도 당기고 연료비도 절약하는 이런 인천의 뱃길운항 요령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그래서 그날 그 군함의 정박된 방향이나 인천으로 향하는 똑대기로 봐서 그 때가 썰물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내가 이 사실을 굳이 들추는 것은 나의 그날 그 기억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항변 중의 하나다.
내가 그 군함이 미국의 전함 미주리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은 한참 뒤로 고등학교 이후였다.
도꾜만에서 일본이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 조인식을 한 이차대전 중에 아이오와급으로 건조된 사만오천 톤 급의 미 전함 미주리호 말이다.
한국 전쟁 시 참전했고 인천 상륙작전 당시 상륙부대 선단 사이에 그 모습이 찍힌 사진도 있는 군함으로 이후 퇴역했다가 월남전에 다시 참전했던 그리고 지금 다시 퇴역한 그 미주리호 말이다.
예전에는 접하기 힘들던 정보가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그리고 특히 전쟁물 메니아들의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미 전함 미주리호에 관해서 이런 저런 사실들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때 그 군함이 틀림없이 미주리호라고 자신 있게 확신하게 된 것은 인터넷에 눈을 뜬 오십 줄에 들어서였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에도 어렸을 적 남아있는 기억 중의 하나인 그 군함의 모습을 가끔은 떠 올리면서 아마도 그 군함은 미주리호 일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지만 그 때는 그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서 무슨 큰 덕을 보는 것도 아니요 설사 그 이야기를 해도 주위에서는 큰 관심을 보여줄 것 같지도 않은데다가 잘못하면 미친 소리 한다고 너 잘났어 하며 핀잔받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그저 나 혼자 그 기억을 되새기며 지내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 시절 아홉 문의 함포로 무장된 미국의 취역 군함은 오직 미주리호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을 하고나서는 얼마 전부터 갑자기 이 기억을 글로 남기고 싶어져서 이렇게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글로 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누가 이 글 읽고 ‘그래 나도 그 옛날에 그 군함 인천바다에 떠 있는 것 본 적이 있어.’ 하면 얼마나 반가울까 해서 말이다.
아니면 또 나만큼이나 쓸데없는 일에 관심 많은 그 누군가가 자료를 뒤져서는 ‘그렇다. 1953년 몇 월 며칠 미 함대가 인천 항구에 친선 방문 했는데 미 전함 미주리호가 동행했다.’ 라고 댓글을 달아주면 이건 특종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영어시간에 이내화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이내화 선생님이 사변 끝자락인지 언젠지 인천에 입항한 미 해군 장병 위문 차 인천의 몇몇 인사와 함께 외항에 정박 중인 미 군함에 올라섰다고 하는데 말이 위문단이지 모두 행색이 거지꼴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들이라고 나중에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대접 받는 중 그날의 메인 메뉴로 통닭요리가 나왔는데 도무지 포크와 나이프로 그 요리를 발라내기가 어려워 서로 진땀만 빼면서 아무도 그 통닭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고 했다. 시중드는 웨이터들의 표정으로는 뭐가 잘못하고 있다는 표정들이지만 그렇다고 뭐랄 수도 없이 뒤에 서서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고.........
일행 중 한분이 미국에서 생활하신 분이 있어 서로 그 분 눈치만 살폈지만 그 분은 아예 통닭 요리에는 손도 대지를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분에게 물어보니 그 분 이야기가 그 요리는 미국에서도 맨 손으로 먹는 요린데 거기서 자신이 그러면 모두 의아해할 것 같아서 혹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까봐 아예 손도 안 댄 거라고 했다.
선생님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는 마른 침을 삼켜가며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는데 사실 우리 고일 때도 통닭 요리는 무척 귀할 때였기에 우리의 모두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이내화 선생님이 방문했다는 미 군함이 혹시 그 미주리호가 아니었을까.........
댓글목록 0
석광익님의 댓글
"아! 그거 저도 봤어요!!" ..........라고 댓글 남기고 싶은데 그 땐 제가 태어나기 전이라....^^;;; 통닭은 우리 고등학교 때에도 흔치 않은 음식이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李淳根님의 댓글
연고가 없는 어린이들의 강화도의 첫번째 방문은 아마 전등사에 소풍을 가면서 시작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는 연인과의 마니산 나들이 일것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효철형님의 입성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깁니다.그간 청안하셨죠? 추억의 아름다운 글 읽고 또 읽어 봅니다.형님의 필력에 찬사를 드리며..여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