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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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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회상
이번 설에 우리 가족들은 윷놀이도 마다한 채 둘러앉아
그간에 모아놓은 비디오를 돌려 보게 되었다.
아버지의 44년 10개월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시며 찍은
정년퇴임식과 칠순잔치, 그리고 팔순잔치의 8미리 캠코더로
찍은 것과 사진관에서 출장 촬영한 것들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17년 전 회갑연 때 찍은 비디오를
보며 그간의 어머니의 일대기를 보는 듯 모두가 조용히
지켜보았다.
1990년 11월 어느 날,
결혼하여 모처럼 장만한 나의 집 우성아파트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가족끼리만 모여 조촐하게 치루고 있었다.
회갑상이 차려지고 막내 동생의 어설픈 사회로 큰형의 개회사가
이어지고 술잔을 따르고 형제 순으로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어린 조카들과 이가 빠진 딸아이를 보는 순간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고 그 속의 나는 무척 젊어 흠칫 놀랐다.
집사람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어머니 은혜를 다 같이 불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시는 맘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에 희생은 가희 없어라. “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지난날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우시는지 아니면 자식들이
자라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 기뻐 우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형도 울고 사회를 보던 동생은 멀뚱히 천장만 쳐다보고 누나는 손수건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닦으며 흐느끼고 나는 어린 딸을 안아 얼굴을 가려
울고 있었다.
당시의 시골어머니들이 다 그랬듯이 종일 논밭일로 얼굴은 검게 타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셨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안계셨다.
어쩌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집으로 뛰어 오면 어머니는 안 계셨고
가운데 솥에 찐 김치와 밥 한 그릇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윗말 밭에 가셨거나 아니면 새 논이나 백수 논에서 농약을 치시거나
김을 매시고 계신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다는 것이 늘 싫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우리 엄마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물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줄달음질 쳐 달려가 “어머이! 나 오늘 산수 100점 맞았어요.”
라고 외치면 어머니는 허리를 펴 “아이고! 내 새끼야 잘했다. 잘했어!”
하시며 엉덩이를 두드려 주셨고 쑥을 뜯어 개떡을 해 주시거나
밀가루를 개어 빵을 쪄 주셨다.
어릴 적 당신이 아파 젖을 제대로 못 물렸던 것을 늘 마음아파 하셨던
어머니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 동생에게 물리고 남은 당신의 젖을 짜
나에게 억지로 먹여 지금도 나는 당시 어머니의 젖내음과 고소한 맛을
기억하는 행운아다.
당신의 몸이 자주 아프시니 어린 형을 붙들고 앉으셔서 내가 죽으면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를 것인지 늘 물으셨다는 어머니가 옆에서 같이
비디오를 보고 계셨다.
화면에서 비록 얼굴은 검게 그을린 모습이어도 그래도 젊고 곱던 어머니가
지금은 성인용 종이 기저귀를 차셔야만 하고 기력이 쇠진하셔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것도 아주 힘들어 하시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월이 모든 것을 데려가려는 것 같아 가슴이 저리고 조바심이 났다.
“엄마 나 갈게요. 강화읍 처가에도 들러야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으니 힘없이 바르르 떠셨다.
가볍게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나는 또 울음을 삼켰다.
완전 틀니를 위해 발치 후 합죽이에다 죽만 드셔서 그런지 더욱
가엾어 보였다.
뒤에서 지켜보는 집사람은 내가 바보처럼 울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보다 더 빨리 먼 여행을 떠나실 것 같아 어머니를 붙들고 실컷
울어버리고 싶다.
시간이 어머니에게 만큼은 빗겨가 이대로도 좋으니 오래 오래 우리 곁에
머무를 수는 없는지 아무나 붙들고 묻고 싶다.
그러나 울지 않겠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동안 어머니가 싸 놓으신 새벽기도와 어머니를 지켜
주시는 거룩한 분이 계시기에 기도하며 아픈 가슴을 달래보련다.
댓글목록 0
李淳根님의 댓글
임종을 지켜보지 못함을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 갔지만,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어머니의 시신을 붇잡고 어머니의 이마에 입맞츰을 하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르지 않음은 불효 때문인가? 인정을 하지 않음인가? 지금도 그 입맟춤의 느낌이 기억 저편에 있습니다. 때가되면 더욱 그리워 집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이순근 선배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심을 뼈저리게 뉘우치시니 가슴 한편이
나도 모르게 아려 옵니다. 선배님의 어머니 사랑을 깊게 느껴봅니다.
위로를 드립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살아계신 엄니에 최선 다하지못함..멀리서 눈시울 적십니다..올해는 엄니가 자식생일을 빠뜨리셨네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에게 전화하는것 조차도 가끔 잊어버리는 저..이제 자주 찾아뵙고 매일 안부전화 꼭 드려야 겠습니다. 생존해 계실때 효도를 다해야겠지요..어머니!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집집마다 자식이 여럿여도 부모님 병수발 혼자 감당하는 사람 꼭 있게 마련인데... 그런 형제들께 잘 하십시요.<br>정말 힘든 일이거든요.제가 그런일 도맡아 하는데...아들들 정말 시러요. 찔리는 분 많을듯...ㅎㅎ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제가 그런일 도맡아 하는데===>효녀는 꼬리도 잘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칩니다..왜 이모양지?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의 멀리서 부르시는 사모곡에 눈시울 붉히며 인문형의 효심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김태희님, 정말 효녀세요. 아들들 마눌 눈치보느라 요즘세상 핫바지들 많지요.
그중 딸들이 더 났군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효녀는 꼬리도 잘ㅊㅊㅊㅊㅊㅊㅊ..?? -> 환성님 왜 더듬으세요? <br>아~ 너무 (비)꼬지 마세요...제가 개인적으로 힘든일이 있어서 한동안 못왔는데 앞으로 또 잠수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다시 나타날테니까요.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아주 큣하시군요. 슈베르트의 숭어노를 올려 주시고 화음에 트윈폴리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좋군요.잠수하지 마시고 언제나 저희 곁에 머물러 주세요.
멋지시군요.
이창열(78회)님의 댓글
전 아버님이 80이 넘으시도록 잔치 한번 못해드린 불효자입니다. 글을 읽으며 눈가에 왜 눈물이 글썽거리는...
글로 표현하신 용혁형님 효심이 이 정도인데 행동은 더 하시겠지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합니다.
J J YU 67님의 댓글
용혁님의 좋은 글, 101회 특별 동문 김태희님의 귀가 (?) 너무 반갑습니다 허나 가출 (?)을 칭송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효성이 그득하고 반가움이 함께 하는 우리 인천고 동문회 천하 으뜸의 결정체 입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태희님이 계셔야 그래도 신변방이 빛이 나는군요..*^^*
윤용혁님의 댓글
특히 제 마음을 사로잡는 트윈폴리오가 변주하여 부르는 송어 노래는 김태희님의 쿨한 마음씨라 여깁니다.
창열후배님의 마음과 효심을 헤아려 봅니다. 진솔한 후배시군요.
재준형님, 설 명절 잘 보내셨죠? 손님을 따스하게 배려하시는 모습에 인고인의 훈훈한
정을 느껴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윤브라더즈의 둘째 인문형도 오셨군요. 카리스마의 멋진형님!
차안수님의 댓글
오랜만에 숭어노래 들어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때 잘해야하는데 잘않되요...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