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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만큼 성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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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한다.
고시에 매달린 형은 기필코 합격하여
형의 여자 친구에게 보란 듯이 선물을 안겨 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번번이 낙방을 하니 부모님이나
여자 친구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집안의 장손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턱수염만 더부룩하게
기른 채 점점 사람의 꼴을 잃어가니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안타까워했다.
골방에 틀어 박혀 민법 형법을 펼쳐 들어도
며칠 전 여자 친구가 우리 빨리 결혼하자고 한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서울의 명문 S교대를 졸업한 형의 여자 친구는
현모양처형의 참신한 여인으로 학교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매사에 사랑을 받게 하였다.
늘씬한 키와 백옥 같은 피부, 조분 조분한 말솜씨와
교양미는 형의 마음과 부모님의 눈에 쏙 들게 하였다.
말없이 형의 뒷바라지를 하던 그녀는 크리스마스 전날
어렵사리 형에게 말을 꺼냈다.
자기 오빠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니 오빠한테
부탁하여 S그룹에 취직시켜 줄 테니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나랑 결혼을 하자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이별의 화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형은 그 말에 몹시 화를 냈으며
그 즉시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눈 내리는 그 추운 날 광화문에서 형이 살던 부천 집까지
한참을 걷고 또 걸어 내려왔다.
온 몸은 얼어 있었다. 아니 거의 빈사 상태였다.
생전 안 먹던 술까지 먹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다.
사나이 눈물이 이렇게 많고 마음을 아프게 할 줄이야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오직 형 하나만을 보고 온갖 정성 뒷바라지 하던 여인의
보람은 오간데 없고 단지 현실적인 제안을 고민 고민하다
조심스레 꺼냈건만 여자 친구의 오빠가 형의 고교 선배이자
고시출신 이었기에 더욱 오기가 발동하여 형이 몹쓸 몽니를
부렸던 것이다.
헤어지자는 최후통첩에 그 여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남자의 자존심이 대체 뭐 길래 사랑보다도 우선 한단 말인가?
어려운 고시보다는 평범한 직장을 선택해 행복하게 살자는
그 말이 그렇게도 싫었단 말인가?
그 아름다운 여인의 눈에서도 구슬 같은 눈물이 흘렀고
이별의 아픔으로 가슴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형은 울면서도 테이프를 크게 틀었다.
슬픈 음악이 아침까지 흘렀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 주세요.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은데 이별은 이별은 싫어요.~ “
정말 이별은 모든 이를 슬프게 하였다.
부모님도 둘 사이의 헤어짐을 눈치 채시고 형의 신중치
못함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너 가 그 마음씨 곱고 아리따운 여성을 복에 겨워 걷어찼으니
어디가도 그런 아가씨는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는 내용이었다.
밤낮으로 한숨짓던 형은 급기야 식음을 전폐하였다.
얼굴은 병자처럼 창백해져만 갔다.
법전 책도 몇 페이지에서 가던 길을 멈춘 채 덩그러니 주인을 잃고
묵묵히 무거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평생을 같이 할 것 같은 사랑도 한순간에 물거품 되어
추억만 남긴 채 영원한 작별의 순간을 맞았다.
다이얼식 전화기는 꿀 먹은 벙어리인양 숨 죽인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새해 태양은 밝게 떠올랐다.
형은 모든 것을 잊고 책장을 열어 희망의 싹을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이별의 아픔이 쓴 약이 되어 드디어 형의 인생길에 큰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형이 그 토록 사랑했던 여인도 하늘아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형은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바랐고 그녀를 위해 행복을 빌어 주는 것
같았다.
아픈 만큼 성숙하였던 것이다.
.
댓글목록 0
李聖鉉님의 댓글
본인얘기 같은데.......ㅎㅎ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의연함 떳떳함을 택한 백씨의 결심 남아의 그 것이나 왠 지 슬픔이 있어 애틋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용혁/형의 경험...베드맨&우먼턴우승..쓸꺼리 무궁무진 용혁님 부러워...
이동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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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열님의 댓글
<img src=http://pds27.cafe.daum.net/download.php?grpid=t5ez&fldid=2tAI&dataid=605&fileid=2®dt=20070130142340&disk=16&grpcode=inzoook&dncnt=N&.jpg>이번 코리아 오픈 남자 복식에서 우승한 이용대 선수(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결승에서의 모습)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누군가 하는말...성숙한 사람일수록 아픔이 많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