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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 골목길을 따라 꼬불꼬불 가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친구집이 있어서 눈 뜨고 잠 들기
전까지 우리는 오며가며 붙어 다녔다. 학교에서 내어준 숙제를 하는 둥 마는 둥 내동댕이 치고
친구와 함께 일과처럼 한길로 나간다. 그때 우리는 한길을 신작로라 하여 그길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길이라 생각했다. 하룻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시절이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최고요,
최상이며 제일이 라고 우기면 그 누가 알겠는가. 이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이놈인 시절 300미터도
안되는 문학산이 제일 높다고 주장하는 놈에게 “아니야 높은 것은 백두산이야” 하는 되바라진
친구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때일 뿐 백두산은 안 보이고 문학산은 눈 앞에 떡 하니 버텨있는데
따진들 무었하랴. 보이는게 제일이지
한길가에는 벌써 이놈과 그놈 그리고 저놈까지 나와 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놀이라야 술래잡기,
진돌이, 자치기, 구슬치기이지만 이런 놀이를 하루라도 빠뜨리면 몸이 근질근질 하였다. 혹시라도
어머님이 심부름 시킬가봐 소리없이 대문을 살짝 열고 문지방을 넘어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꼴이란
지금 내가 보더라도 웃을 수 밖에.... 그리고 이골목 저골목 쏴다니며 나무칼을 들고 장군 흉내를
내고 맥아더 장군도 되어 두손으로 쌍안경을 만들어 주위를 살핀다.
길은 어린시절 놀이터요, 모임의 장소인 줄로만 여기던 악동시절이 지나 중학생이 되어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거나 석탄가루 휘날리는 증기 기관차를 타고 시내로 통학하면서 길의 쓰임새가 집에서
이웃으로, 집에서 학교로, 이웃에서 이웃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어주는 매체임을 서서이
터득한다.
길이 이웃과 이웃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공간의 연결이라면 말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아버지와 나를 잇고 아들을 넘어 손자 까지도 이어주는 길의 역할을 훌쩍 뛰어 넘어 지나간 시간까지
연결하는 튼튼한 밧줄이 된다.
이천년 전의 주몽이 흩어진 옛 조선의 백성들을 모아 고구려의 초석을 다지는 적나라한 모습과
암울한 시절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며 해방을 고대하는 유대민족의 기대를 물리치고 인류의 영혼을
구하려는 사랑의 행위를 우리들이 뚜렷하게 볼 수 있음은 그 때 그 말들이 지금까지 길을 따라
잘 이어왔기 때문이다.
길이 어두운 골목길, 아기자기한 오솔길, 질퍽질퍽한 논길, 쭉쭉 뻗은 고속길, 출렁출렁 뱃길,
시원스런 하늘길, 재미나는 여행길, 피가 나는 가시밭 길, 칙칙폭폭 기찻길, 뛰뛰빵빵 버스길,
실크로드 문명길, 컬럼버스 발견길, KTX 일주길 등 이루 헤일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길이 있듯이
말에도 소곤소곤 사랑말, 몸조심해 엄마말, 일수불퇴 아빠말, 티걱태걱 형제말 , 아옹다옹 동무말,
상경하애 군대말, 허풍쟁이 정치말, 느릿느릿 충청말, 깍쟁이의 서울말, 가나다라 우리말,
딸깍딸깍 일본말, 쏼라쏼라 서양말 등 수많은 종류의 말들이 있어서 서로의 존재를 내어 보인다.
그 말에는 그 말 대로의 억양이 있고 운치가 있고 이 말에는 이 말대로 정감이 있으며 위엄이 있다.
또 품격과 품위가 있다.
옛날에도 “하거라” 하시는 임금의 명령과 “아니 되옵니다” 라고 반대하는 신하의 상반된 의견
속에서 그것을 수렴하는 일은 어느 것이 백성을 위하여 좋고 그른 것인가의 기준으로 중지를
모았을 것이다. 지금에도 국정의 의견 수렴은 옛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일진대
의견이 분분하여 갈팡질팡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오늘 나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신문을 통해 읽는다 “온몸으로 말하겠다” 하신다니 어떤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며 대상이 누구인가는 잘 모르겠다마는 권위로 국민을 이끌어야 하는 분이 온몸으로
온힘을 다하여 이끌어 나가시겠다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말씀하시겠다니 가뜩이나 말 잘한다는
분이시기에 오히려 살벌하기만 하다. 근로자들이 머리띠 두르고 온몸으로 “죽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6. 25때 소대장들이 “나를 따르라”며 총알 쏟아지는 고지를 오르는 것에 소대원들이 기꺼이 죽음에
함께 동참하는 것은 소대장이 소리지르는 고함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의 솔선수범의 앞장 때문이요,
是日也放聲大哭하는 장지연의 목소리는 조국산천을 돌아돌아 처절하게 메아리 쳐 심장을 쑤시고
후비니 국민의 가슴이 쓰리고 목도 메이는 것이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죽어가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의 말이 있었기에 역사에 길이 빛나는 눈물의 승전보
노량대첩이 있는 것이리라.
“난데 없이 굴러 들어온 놈, 흔들어 보자 이거 아닙니까” 보다는 “내가(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 밖에 없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는 처칠의 호소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뒤를 더 많이 볼수록 당신은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다”라고 자상한 가르침을 주는 수상에게 어느 국민이 앞 다리를 잡고 훼방한단 말인가?
“賢者는 역사에서 배우고 愚者는 체험에서 배운다”고 하던데 世宗의 훈민정음 창제정신을실천해
보고 싶으신지 행정도시를 세종시라 명하고 올해부터 사업을 시작한다 하시니 도시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하였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는
짤막한 세종대왕의 말씀에는 자주정신, 애민정신, 실용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세종의 통치이념을
함축한 말이라 여겨지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자주정신이나 실용정신은 몰라도 애민정신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지 이미 오래이다. 牛耳讀經인가
馬耳東風인가 자신의 소들은 말을 못 알아 듣고 남의 말(馬)들은 말(言)을 흘려 버리는 형국이니
기막히고 답답한 마음 오죽할까.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면 상대방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는 것을 딴전 부리고 행하지 않음은 지혜의 부족함을 탓할까 오기와
오만을 탓할까. 국민이 대통령의 말씀에 기울이지 않코자 하는것은 하고자 하는 의욕은 있으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믿음이 부족하니 진실성은 떨어지고 진실성이 떨어지니 권위도 없어진다.
권위없는 말로 아무리 소리치고 호소해 본들 소리없는 메아리 일 뿐이다. 북치고 장구치고 꽹가리까지
두두려도 구경꾼이 없다면 훌륭한 공연을 벌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춤추는
무용수가 있고 그것을 즐거워 하는 구경꾼이 있어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만 멋있는 춤판이 되는 것이다.
민주를 울부짖던 시절에도 계엄령 발동하고 위수령 내리면서 상아탑 문 잠가 놓은 민주의 반항아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말과 함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라는 합창을 목청 높이 부르도록 국민을 선도하여 국민이 한곳으로 갈 수 있도록 민족의 힘을 집중시고
이승만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계승 발전시킨 새마을정신은 봉사하고자
하는 시대적 사명과 자기희생의 철학이었기 때문이고, 경제를 어지럽게 하였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의 암울한 시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온다”는 이 한 마디 말로서
민주투사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킨 것에는 누구 못지 않은 진정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할 때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첼린저호가 공중폭발한 사고를 당했을 때 “여러분 이런 일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중략) 그들(승무원)은 지상의 험악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신의 얼굴을 만지러 갔습니다
(They slipped the surly bonds of Earth to touch the face of God)”라면서 사망한 7명의 이름을
부르며 애도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설명하며 우주선의 부실 사고를 아름답게 극화한 레이건은 못다한
배우의 역할을 대통령이 되어 훌륭하게 수행하지 않았는가?
에이브라함 링컨은 어떤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하던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보는 일이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소박한 꿈이더냐! 노예를 해방한 위대한 힘은 이렇게 소박한 꿈에서도 이루어 지는가 보다.
JFK를 보아라. 양극의 시절 평화봉사단을 설립하여 어려운 나라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던 사랑의 손길, 평화의 발길은 지도자의 진정한 덕목이 아니더냐? 그에게 진정한 용기가
없었다면 소련의 도전을 뿌리칠 수 없었으리라. 일촉즉발의 순간을 뉴. 프론티어 정신으로 임하던
자세에는 단호함이 묻어나고 대통령이 되어 취임사의 말에는 당당함이 솟구친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라고 요구한 배포 큰 함성은 “영원한 불꽃”이 되어 알링턴 국립묘지에 타오름을 보아라.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맥아더가 응봉산 자유공원 정상에서 먼 바다를
지금도 바라보고 있다. 그의 통찰력과 예리한 판단은 그토록 불리한 전황을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 노장의 풍부한 경험과 근면함이 아우러져 부하의 사기를 북돋고 육해공의 입체적
작전을 가능케한 진솔한 대화 즉 좌우의 원활한 대화와 상하의 막힘없는 소통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여 중국에 원자탄 투하를 주장하던 그도 한치 앞은 내다보지 못하였나
보다. ‘황해 건너 무엇을 바라 보시오. 원수님! 당신 발 밑에서 당신을 쓰러뜨리려는 무리가 두눈을
부릅 뜨고 기회를 엿 보고 있는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죽지 않고
사라진다는 말이 씨가 되어 자유공원에서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무리와 지키려는 사람들이
옥신각신하는 오늘의 實情이 정말로정말로 서글프다.
백년 전에도 일본, 청나라,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힘 쓴다는 나라들이 만국공원에서
조계를 정하여 세력을 넓히더니 지금은 북한 핵 문제로 미, 중, 일, 러, 들이 요란한 삿바 싸움을
하고 있다. ‘오호, 통재라’를 뇌이며 공원을 내려 오면서 고교시절 성함은 잊었지만 지리선생님은
조용히 그러나 희망적인 음성으로 “항구인 인천은 통일이 이루어지면 황해로 뻗어 광활한 중국과의
교역이 활성화되어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하였는데 통일이 이루어 지기도 전에 중국과
무역은 활발하고 바로 코 밑에 있는 평택은 인천항보다 더 크게 항구를 만들서 인천항을 위협하고 있다.
세월따라 환경따라 변하는 것이 인심이요, 물정인 것을 말이라도 변하지 않는 진실의 말들이 너와
나로부터 피어나와 이웃과 이웃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대통령님들의 말씀이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 꽂히고 대서양을 넘어 런던과 파리를 돌아 로마에
아로 새겼으면 좋겠다. 서울은 물론 동경과 북경은 말할 것도 없고 뉴델리를 거쳐 카이로까지
전세계에서 회자되는 말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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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한참을 읽었습니다...그동안 어디 계시다 이제 나오십니까?...오호통재 아니 오윤제님...
최병수님의 댓글
우리 국립묘지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남요???
진우곤님의 댓글
할 말을 잃고 사는 세태입니다. 아니,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허전함을 자주 느끼는 시대적 흐름 앞에 선배님의 글은 흡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오 선배님, 현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과거를 부정하려는 한심한 세태와 아마추어리즘의 국정운영 실태는
이미 포기 상태이지요.
말의 품위를 잃은 채 신중치 못한 시장잡배들의 비속어나 쓰는 그 속에
권위는 스스로 웃음거리를 만들고 이분법적 사고로 국론분열은 극에 달했죠.
빨리 지나기를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유럽에 가보면 SAMSUNG 간판이 즐비하고 길거리엔 국산차 마티즈가 많이 굴러다님으로 우리 한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많이 느끼는데 국내에 들어오니 왜 답답하고 암울한 기분이 드는지 뭔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 국민모두가 힘을 합쳐도 힘든 세상이 되는데 말입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모두가 힘을 합쳐도 힘든 세상이 되는데 제학인 어디 간겨..형님/명철/태희님 따라간남?
李淳根님의 댓글
줄줄이 가슴에 쨘하게 스며드는 글 입니다. 나랏님의 신년사가 이러한 맘을 갖고 시작 하였으면 합니다. 나랏님의 생각은 위와같이 정녕(?) 그럴진데 아랫것들이 오망방자하게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닌지요? 위의 글을 청와대 홈피에 올려 보심이 어떠신지 아룁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위의 글을 청와대 홈피에 올려 보심이 어떠신지 아룁니다===> 01/21 16:40 나도같은생각했는데..순근인 생각과 행동이 같은 새나라젊은이..난 새나라노인네..ㅋㅋ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해외 생활을 하며 최, 전, 노,김, 김 대통령, 그리고 이번인데..이번이라 칭함은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무조건 창피해서 이다 어느 국가를 보아도 이런 대표자는 전무 무식에 교양까지 없다 탄핵에서 복권 후 외교 사절 초청 연설 중 자신이 "부활했다"는 망발에 참석 외교 사절 전부 웃기는 커녕 냉소적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인문 동문의 답답한 느낌 국민 모두의 느낌 해외에서는 더 잘 보이고 더 발 느껴진다 우수한 국민에 우둔한 지도자가 걸림돌 되는 우리 현실 차기 대통령 잘 선출해야 한다 말 잘한다고 한다 설화를 유발하는 말을 잘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대통령은 묵묵히 화합하고 지도하는 인사이어야 한다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정정: 발 느껴진다 ==>잘 느깨진다
오윤제님의 댓글
부모 얼굴 깍는 어느 아들 보며 저건 아닌데 하였습니다. 우리 대통령 마음껕 자랑하고 싶건만 자꾸만 입은 다물어지더니 오히려 말하고 싶은 충동 .... 말해봐야 제얼굴 침밷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