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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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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강의실
나는 약속시간을 딱 맞추어 나가는 습성으로
학교 가는 중 교통체증 등 돌발변수가 생기면
어김없이 늦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약대시절 약대 파이퍼홀이 실험실로 많이 사용되는
관계로 농대 11호 강의실에서 두 시간짜리 생화학
강의를 자주 듣곤 하였다.
부천에서 전철이나 버스로 통학하던 나는 생화학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오시는 시간의 분과 초까지
따져 교수님보다 한발 앞서 자리에 골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계산법이 도중에 도로 교통 사정으로 자주
어긋날 때가 있었다.
그러면 큰 문제였다.
교수님 성격이 얼마나 괴팍하고 불같은 성미에 무서우신지
강의실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뒷자리에 슬그머니 앉으려 해도
11호 강의실 문짝이 도와주질 않았다.
육중한 문짝이 안 맞아 문을 열 때면 들어 올려 열어도
우당탕탕 다 바지는 소리가 났다.
학기 초 교수님의 엄명이 떨어졌다.
단 1분이라도 지각 시는 문을 열고서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 있으라는 것이다.
십 분이든 이십분이든 교수님 마음이 내켜 자리에 앉으라는
지시가 떨어져야 좌석에 착석할 수 있었다.
생화학 실험실에서도 교수님이 입장하기도 전에 실험실
의자에 앉기라도 하면 혼쭐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에게만은 관대하셨다.
강의 초 교수님과 개인면담이 있을 때 아버지 직업을
물어 보시기에 강화 삼산면 석모도의 조그만 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아주 호감을
갖으시고 아버지를 봐서라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과
당신께서 주말이면 석모도로 낚시를 즐겨 가는데
외포리 선착장에서 해병대들이 금속 탐지기를 당신께
갖다 대고 낚시가방을 열라는 것이 교수체면에 싫으셨던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본인을 예외 시켜 달라고 하셨다.
난 속으로 나의 아버지가 해병대 사령관이라면 몰라도
조그만 시골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서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럴 수 있겠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교수님의 농담으로
알고 웃어넘긴 일 이외에 교수님과 나 사이에
별것은 없었다.
부천에서 통학을 할 때 후배하나를 만나면 그 날은
영락없이 강의시간에 늦는 날이었다.
그 후배는 나보다 더 느긋하여 응당 늦을 것을 감안해
가니 조심스레 문짝을 들어 강의실 문을 열고 그 후배와
함께 서 있었다.
복학한 선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교수님이 먼저 나에게 물으셨다.
“미스터 윤은 집이 어딘가? 네! 부천입니다.
그럼 너는? 후배는 머뭇거리다 “네! 하인천입니다.”
그러자 대뜸 “야 이놈아! 그 먼 부천에서 통학하는
윤군은 늦을 수 있어도 엎드려도 코 달거리에 사는
네놈은 뭐냐? 미스터 윤은 앉고 넌 더 서있어!“
이건 완전히 편애를 하고 계셨다.
강의 중 질문을 잘 하셨는데 하나하나 지적하시다가도
나를 보시고는 “미스터 윤 옆에 너” 하시며 날 늘
비켜갔고 대답을 못한 학생들은 독일 병정처럼 줄줄이
서 있어야하는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교수님도 어쩔 수 없는 대책 안서는 여학생이 있었다.
삼천포에서 유학 와 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자취하는
후배 여학생이었는데 이 여학생은 강의시작시간 30분을
넘기고서도 유유히 그리고 그 문제의 11호 강의실
문짝을 아무 조치 없이 당당히 우당탕하고 여니 한참 강의에
열을 올리시던 교수님은 놀라 정말 어이없어 하시며
문 앞에 서 있는 아주 작고 당돌한 여학생에게
눈을 돌리시면서 “이봐 자넨 집이 어딘가?”하고 물으니
그 여학생은 “저 말이예? 삼천포예”하며 안색하나 안변하고
대답하였다.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남학생으로 오인 할 정도로 당돌하고 배짱이 두둑하였다.
축제 때 친구와 숙대 생약실에서 담근 여러 종의 약주를 얻어와
총학생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전에 술장사를 하였는데
상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에 문제의 여학생후배가 동업을 요하기에 그 후배가
쓰던 곤로에 파전을 부치게 하고 우리는 손님을 끌어 모아
첫날은 꽤 수입이 올랐다.
그런데 다음날을 위해 재투자 할 돈을 후배 여학생이 갖고
튀어 난생처음 부도라는 사업실패의 쓴 맛을 보았다.
정말 뻔뻔한 것은 축제 마지막 날에 그 후배 여학생이 자기보다
두 배나 큰 훤칠한 킹카의 남학생과 축제장에 아무일 없듯이
나타나니 난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그 축제에서 장차 가수가 될 그리고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한 주현미후배를 "VISONS"라는 노래로 당당히 제치니
모든 걸 다 잊기로 하였다.
그 정도로 반죽이 좋은 학교 앞에서 사는 후배가 오늘도
덜커덩하고 문을 열 때면 교수님은 강의노트를 내려놓으시고
“미스터 윤!”하며 또 나를 찾으셨다.
“윤군이 성당에 다닌 다 그랬지? 난 말이야.
신부님이 헌금 적게 낸다고 고등학생을 때리는 것을 보고
정떨어져 안 나가.“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
나는 “교수님이 성당 안 나가시는 것을 정당화 하기위해
그러시는 거죠?“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꾹 참고
“교수님, 성당을 신부님 뵈러 가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 계신
절대 주 하느님을 영접하러 가는 것이죠.“ 하였다.
그런데 문제의 삼천포 여학생이 느닷없이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예! 그거 교수님이 지어서 한 말이지예!”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교수님 눈 밖에 나는 결정적 실수를 하였다.
당시 가수 주현미도 학생시절 생화학 과목에 울고 갔는데
이 겁 없는 후배여학생이 좌충우돌 문제를 일으켰다.
교수님은 마구 신경질을 부리시면서 “내 제 때문에 못 살아
못 산다고“ 하시며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하시며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그 결과 그 과목의 재시험자가 수두룩하더니 과락이 전 학년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전체 160학점을 이수하는 중에 전공과목의 낙제점수는 곧
유급을 의미하였다.
당시 약대생들 사이에 유행어가 있었는데 “D라도 좋다 학점만
나와라.”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 그 과목만큼은 A 플러스를 받아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고 급기야 교수님은 날 불러 당신이 유학한 미국의
모 대학으로 졸업 후 가서 유전공학분야에 정진하도록
독려하셨다.
형에게 그 문제를 심각하게 의논하니 형은 “뼈 빠지게 고생하는
아버지를 좀 생각하라.“ 하는 한 마디를 나에게 던졌다.
며칠을 고민하다 교수님의 배려를 잊기로 하였다.
졸업반이 되도록 전공필수인 생화학과목을 따지 못한 친구와
후배들은 안달이 나 4학년 과대표인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갈비 한 짝을 사들고 교수님
집을 찾았건만 교수님을 닮은 그 댁의 사나운 개들에게 쫓겨
혼쭐나고 학번과 이름들을 적어 문틈으로 가까스로 밀어 넣었건만
워낙 학점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분이시라 통할 리 만 무였다.
11호 강의실 벽과 책상이 컨닝글씨로 도배되는 이유가 있었다.
오죽들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어느 한 학생은 유급의 스트레스로 정신이 돌아 갑자기
11호 강의실로 돌진하더니 교수님이 보는 앞에서 자기와
사귀던 캠퍼스커플의 한 여학생이 자기를 배반하였다고
따귀를 올려붙여 교수평의회가 열려 결국 퇴교를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평소 아무리 학점이수에 스트레스가 많아도 그렇지
학교 앞 대구집에서 원서 책을 맡기고 술을 조금만 덜
먹었더라도 유급은 면하지 않았겠는가.
그해 모 가수를 포함 인천출신 후배들 상당수가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과대표로서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심혈을 기울여 조선호텔에서 사은회를 멋지게 해드리고 학장님을
면담한 결과 유래 없는 또 한 번의 재시험을 보아 그 중 딱
반을 구해내 약사고시를 치르게 하였다.
지금도 11호라는 글자만 봐도 지난날 그 딱딱하고 통과하기
어렵던 약대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쓴 웃음을 지어본다.
11호 강의실은 지금도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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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부天/하인天/삼天포...天씨리즈 당시 유전공학분야에 정진했다면 天이 바꿨을듯...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tyle src="http://myhome.naver.com/norea99/nrea/Love7.wma" width="0" height="0" hidden="false" volume="0" loop="-1"> 사랑의 기도
오윤제님의 댓글
생화학 교수님의 끝발이 말단 소대장 끝발 만큼이나 대단하군요. 밤송이를 무었으로 까라면 군말없이 실시하던 우리의 어두웟던 시절 지난 일은 아름답습니다. 아니 영원할 것입니다.
최병수님의 댓글
중대 약대 11호실의 장학생, 인컴의 문학 장학생으로 성장. 담엔 어디 장학생이되시남요?? 건승하고 웅비하는 윤브라더즈-3-가 되도록 노력해 주길 바람다. 화이팅!!!..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윤 부라더즈-3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