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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지즐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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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지즐대는
올해가 丁亥 年 돼지해다.
그 옛날 아랫집에 돼지가 새끼를 낳고 있어
아이들은 신기해 돼지우리를 들여 보다가
그만 기절초풍 하였다.
어미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광경에 놀라 집으로
달려왔다.
같은 시골이라도 조그만 논 떼기라도 있으면
가을에 추수하여 쌀밥을 먹어도 그도 저도 없으면
깡 보리밥이나 고구마 등으로 삼시 세끼를 때워야
하는 당시 농촌의 현실이었다.
춘궁기 보리 고개의 현실이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바로 우리 아랫집이 본 보기로 하루에 두 번
고구마를 쪄 허기진 배를 채우니 우리가 놀러가도
그 분들의 주식인 고구마를 한번 먹어 보란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아니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 형편으로 새끼가 든 돼지에게 돼지죽하나 제대로
못준 결과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안 되는 집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당시 돼지새끼는 없는 집 살림에 소 다음으로 중요한
소득원 중에 하나인데 그런 꼴을 보고야 말았다.
가난은 대를 이어갔고 그 집 아들들은 남의 농사일을
해주고 품삯으로 살아가려니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학교에 다니신 관계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보고난 시험지를 집에 가져와 그걸 네 등분하여
화장실 휴지로 사용하였는데 아래 집은 그 마저도 없어
물독에 지푸라기를 구겨 그걸로 뒷일을 처리하는 극히
원시적인 방법을 썼다.
찢어지도록 가난하니 가끔은 우리 집 화장실을 뒤져
빵점이 수두룩한 시험지를 훔쳐가 사용할 정도였다.
일 년간 남의 집 몸살이등 그 집일을 죽어라고
해 줬어도 수중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면 가을에 우리 집에 와 사정을 해 쌀 한가마를
장리로 빌려갔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내년에 우리 농사일을 전적으로 해준다는
조건으로 빌리건만 그것을 당해에 갚지 못하면 이자가
붙어 두가마가 되었고 그 다음해는 네 가마로 불어났다.
어린 나로서도 부당하게 생각되는 고리의 장리쌀이
관행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면 아버지는 과감하게 탕감을
해 주셨다.
대신 품삯을 두둑이 줄 테니 남보다 우리집일을
열심히 해 달라는 부탁은 잊지 않으셨다.
그 집의 큰 며느리가 들어 왔는데 시어머니와 사이가
늘 좋지 않아 사니마니 매일 말썽이었다.
감싸주지 못하는 시어머니도 문제였지만 큰 며느리가
늘 말이 많아 이간질로 동네에 문제를 일으키더니
가출을 밥 먹듯 하고 대를 이어줘야 할 아이를 낳다가
요강에 빠트려 죽였다는 소문이 나돌더니만 급기야
아주 집을 나가 버렸다.
큰아들은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심성이 착하였는데 그
충격으로 결국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큰 사건이
시골 마을에 벌어졌다.
경찰이 오가고 병원차가 경적을 울리는 일대 큰 사건
이었다.
그래도 아랫집에 놀러 가면 놀이 감이 많았다.
그 집 막내아들이 재주가 좋아 쌍 싸리집도 나무에
잘 지어 개떡이라도 들고 가면 올라가 놀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주었고 통나무를 잘라 바퀴로 만든
구루마를 잘 태워 주었다.
겨울이면 굵은 철사를 끊어 썰매도 잘 만들었으며
그 집의 주식인 고구마를 쪄 해에 말린 것을 어쩌다
얻어먹는 맛은 겨울밤의 일미였다.
어머니는 주사를 참 잘 놓으셨다.
시골 동네에 결핵환자가 꽤 있었는데 어머니가
지속적으로 주사를 다 놓아 주어 많이 고쳐 주셨다.
엉덩이를 앙팡지게 찰싹 때리고 주사를 아주 잘
놓으시는 돌 파리 간호사였다.
그러시다 한번은 잘 못 먹어 영양실조로 부스럼을 달고
살던 옆집 내 친구에게 주사를 놓다 쇼크가 일어나
그 애가 숨을 헐떡거리며 다 죽어가는 바람에 어머니는
그때 얼마나 놀라셨는지 그 후론 일체 주사를 놓지
않으셨다.
그러나 돼지새끼가 탈이 나면 상황이 달랐다.
어느 날은 설사병이 난 돼지새끼 뒷다리를 나보고
들라 하여 주사를 놓던 중 이놈이 발버둥 치며 뒤로
분비물을 뿜어 내 얼굴에 온통 뒤집어 써 울상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다리가 땅에 닿지 않게 하라
명하시더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신기하게도 조용해진
돼지새끼 귀 뒤에 주사를 잘도 찔러 넣으셨다.
수의사가 따로 없었다.
인정이 많으신 어머니는 겨울밤이면 아랫집 살 떨어질까
걱정을 하시다가 다음날 슬며시 뒤주를 열어 쌀을
퍼 그 집에 갖다 주시곤 하였다.
그런데 아랫집이 남의 땅에 터를 잡아 결국 집이 헐려
그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시로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참 죽어라 죽어 하였다.
그런데 새해 그 가족들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 집에 딸들이 시집을 가 서울에서 기름장사로
큰돈을 벌어 남동생들까지 불러들여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아주 흐뭇한 소식 이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정해 년
돼지해에 모두들 부자가 되기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니 마음만이라도 부자가 되는 한해이기를 진정
빌어본다.
댓글목록 0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보릿고개는 아는 데, 장리 쌀은 못 들어 봤는 데... 나두 총각때 아산(둔포)농장에서 3년동안 객지 생활하며 고생하였던 게 기억나네요. 가끔은 그 곳으로 그 때 친구들[머리는 하얗고 반질거리고 무지 늙었음. 다들 할아버지라고 부름]을 만나서 추억을 씹으러 내려 가곤 하지요. 지금은 아산테크노밸리로 개발 중이랍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부평 만석꾼이 장리쌀을 모르면 누가 알리. 내릿 부자도 있었지만 가난의 대물림 우리의 과거였지요. 요즈음 부자임을 느낍니다. 아파트 한채면 오억 넘는게 태반 아닝교
윤인문님의 댓글
요즘 아이들은 보릿고개란 말은 먼 옛날이야기로 들린답니다. 3D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제조업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즐비하고 편하게 돈벌고 일확천금을 노리려는 황금만능주의가 각종 투기 열풍으로 번져 막상 실업자는 많은데 일할 사람은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이 안타갑습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IMG src="http://avatarimage.hanmail.net/CharImg/Hero/27/HWP_341_050201.gif"border=0>☜여기에 꼬리 좀 달아줘유~~♬♪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위험한 장사가 이문이 많다..밀수/기름/가스/3高....여기나오는 장리는 고리를 의미하는건감? 돼지해에..병수님 돼지는 분명 금돼지였네..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윤제선배님,환성형,동열형,인문형 그간 안녕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꾸뻑.
환성형님, 장리가 고리를 의미하죠. 1년 단위로 계산하니 고율이 횡행되던 시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