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발표작 - 초보운전
본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만 연출했던 정치권이 그렇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서민 경제가 그렇고,
양극화를 부추기고 희망마저 꺾어버리는 사회 흐름이 그렇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2006년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는 보다 활기찬 발걸음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잘 이루어지고 가정에 복락이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초보운전
진 우 곤
아침에 직장 내 행사 관계로 평상시보다 30분 정도 일찍 집을 나서 출근하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인접한 아파트 쪽 삼거리가 여간 어수선하지 않았다. 도로 위에는 차의 부서진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크래커 차가 3대나 도착해 있었으나 운전자들은 병원으로 후송한 뒤인 듯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 나온 듯 젊은 청년이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의 모습을 위치를 바꿔가며 열심히 담고 있었다. 승용차와 승합차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고인 듯 양쪽 차의 앞쪽은 심하다 할 정도로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소름이 확 끼쳐왔다. 그리고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한 달이 미처 안 된 나는 요즈음 다년간 운전을 해온 아내에게서 도로 연수를 받는 입장인데 이런 광경을 접하니 운전하겠다는 생각이 싹 가셔버리는 게 아닌가. 사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로 연수만큼은 전문가에게서 얼마간 정식으로 배워야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비싼 돈 들일 필요 없이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아내가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의지하게 된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땄다고 하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아보니 서툴고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종종 학원에서 배운 이론대로 적용되지 않는 돌발 변수 앞에서 당황할 때도 있었다. 예고도 없이 끼어드는 차에 신경질이 나고, 한두 번이면 족할 것을 몇 번이나 시도하는 주차의 서투름에 아내에게 핀잔도 자주 먹고,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의 차선 바꾸기의 어려움,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의 속도 조절 등등 많은 것을 한꺼번에 소화하자니 그야말로 진땀이 나는 일이었다.
때로는 아내의 가시 돋친 말 한 마디에 주눅이 들거나 내심 그를 고깝게 여기기도 했다. 내 딴엔 용기를 내서 학원에서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해보지만 아무래도 아내에게는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순 엉터리로 배웠다고 단정을 내리며 미간을 잔뜩 모을 때 그것은 마치 거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소크라테스’에게 이웃 사람들이 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욕설과 함께 구정물을 퍼붓는 그의 아내 ‘크산티페’를 보는 듯했다.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는 아내의 태도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일이란 게 어디 첫술에 배부른 게 있는가. 아내야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베테랑 강사에게서 도로 연수비를 주고 배운 것이기도 하고, 그도 처음엔 주차를 제대로 못해 이웃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실수로 들이박기도 했거늘 내가 아직 사고를 안 내고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 안 되는 것일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더니 바로 그 짝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오십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운전을 배웠다는 게 서럽기도 했다. 왜 진작 젊었을 때 배우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특히, 나름대로 골목길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전을 하게 될 경우 사고 빈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데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지적해 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밀어 그런 건 잘 알고 있노라고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기도 한다. 이에 아내는 왜 화를 내냐며 자신이 처음 운전할 때 나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즉, 초보운전이라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닌데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으로 내가 옆에서 이따금 차선과 신호만큼은 잘 지키라고 참견하는 게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같이 고깝게 들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아무리 상대방 운전자가 무작정 끼어들기를 한다든지 깜박이를 넣어주지 않는 얌체 짓을 하더라도 불쑥 욕을 내뱉는다거나 교양 없는 습관을 버리라고 강조할 때마다 아내는 오히려 당신도 운전해 보면 그게 쉽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즉, 그런 것쯤은 자신이 모르는 바 아니나 초보라 갑작스런 돌발 상황 앞에서 머리끝이 곤두서는 데다 덤으로 짐을 지우는 것에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지 않고 운전자는 모름지기 교양인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누누이 주장해왔다. 과연 그것이 초보운전자였던 아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턱이 된 것일까. 역지사지의 삶을 내세우는 내가 정작 초보시절의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한번은 운전면허증을 딴 지 일주일 정도 된 상태에서 처음으로 아내의 차를 몰고 나갔던 때의 일이다. 물론 아내가 동승하여 요모조모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서투르나마 학원에서 배운 대로 차를 몰았다. 될 수 있으면 넓은 대로로 다녔다. 거기에 점차 익숙해진 상태에서 난데없이 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의 비좁고 노면조차 고르지 못한 시골길을 만났다.
처음으로 부닥친 돌발 변수에 눈앞이 어리어리했다. 이에 그냥 되돌아갈까 말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자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동승한 아내는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며 자신이 운전대를 잡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자존심이 퍽 상했다. 하여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무작정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한번은 경험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내에게 대꾸해 주면서.
이에 아내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이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때로는 핸들 조작이 원만치 않아 바퀴가 개울에 빠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고, 정면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준답시고 내 차선을 지키지 않고 반대편 도로로 핸들을 꺾자 아내는 왜 자기 차선을 지키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즉, 사고가 나면 차선을 지키지 않은 게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닌가. 내 딴에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푼답시고 한 것인데 그게 도리어 내게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새로운 사실에 내가 세상을 너무도 세세히 모르고 살아왔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엑셀레이더를 밟는 바람에 옆으로 지나가는 차와 접촉 사고를 낼 뻔했다. 신중을 기해서 조심조심 천천히 가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핸들 조작 미숙으로 교통 혼잡을 야기했던 일들, 그러면서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진땀을 빼며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올 때 그래도 내가 해냈다는 쾌감(?)이 전신을 휩싸고 돌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그 시골길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사노라면 여러 가지 돌발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처음 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겁이 나는 일이고 서투르기 마련이다. 때로는 의지력과 인내심이 약해 도중하차하는 경우도 있다. 사자의 어미는 새끼가 홀로 서기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거기서 낙오가 되는 것들은 냉정하게 뿌리친다는 것이다. 독수리도 마찬가지다. 드높은 창공을 자유자재로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수없이 땅에 곤두박질쳐서 부리나 날개가 부러지기도 한단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시련과 역경은 파도처럼 수시로 우리에게 닥친다. 그것에 굴복한다면 자신을 한 뼘 이상 키울 수가 없다. 사자의 어미가 새끼의 홀로 서기를 가르치듯, 독수리가 피나는 연습에 의해 자유자재로 창공을 날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낯선 길은 선뜻 가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수많은 길도 처음에 누군가가 용감하게 앞장을 서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걷어내며 나아갔기에 형성된 게 아닌가. 뒷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하여 이따금 차를 몰아본 지도 벌써 1개월 째. 때때로 들려오는 아내의 핀잔도 고맙게 받아들이고 싶다. 수많은 난관을 통하여 터득하지 않으면 어찌 생명줄과 같은 운전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내게 도로 연수를 시켜주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핀잔을 주는 것도 명색인 가장이 내가 잘되라고 하는 선의(善意)에서 나온 것일 게다. 이제 남은 것은 내 노력밖에 없다. 자유자재로 차를 모는 유능한 운전자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고달프기는 하지만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는 진리를 몸소 깨닫는 즐거움이 생활에 변화를 주는 요즈음이다.
(2006년 4월)
댓글목록 0
윤용혁님의 댓글
진 선배님 병아리 초보운전의 애환을 그리셨군요.
저도 옛날에 집사람 도로 연수시키다 말다툼을 벌였지요.
인생사 첫술에 배부르는 경우 없음을 실감합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jk13.codns.com/video/mp3new1/Distant Drum-Jim Reeves.wma" loop=-1 width=70 height=25> ♪♪Distant Drum/Jim Reeves
김태희(101)님의 댓글
요즘 그런 운전강사 있음 뼈도 못 추리겠지요.암튼,,, 그 강사에게서 빠져 나와 10년간 운전포기. 부인들께 운전 친절히 가르쳐 주세요.
차안수님의 댓글
주행시험 준비중입니다.....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부부간에 쉽지 않은 게 이것 저것 있는데...그 중 하나가 Golf 그리고 운전 가르침 이라 하더군요 요인은 가르치는 사람 위주라 그런데, 신체 조건 성격이 다른데 배우는 사람 입장이 되고 처음이라는 사실과 인내로 임하면 언쟁 조차 하지 않는 보기 좋은 부부간의 협력을 창출 할 수 있습니다 부부애까지 좋아집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운전 뿐 아니라 초보시절은 모든 것에서 서러움을 받습니다. 몸 굳어 군대에서 태권도 품새 배울 때 조교들이 으시대는 꼴이라던가 그리 높지도 않은 바둑 급수로 세력이 어떻고 실리가 어떻고 하며 무안을 주는 자칭 고수의 고언 그러나 그런 밤송이 같은 아픈 말에 진전이 잇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이어서) 주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수필가 진우곤의 연말에 올려지는 글들이 추운 날씨 우리를 따뜻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