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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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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커피
아침저녁 식사 후에 어머니는 커피를 탄다.
이런 커피 맛을 즐겨온 지도 벌써 이십년 가까이 되어 온다.
어머니를 모신지가 얼추 그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군에서 제대하여 함께 살다가 결혼하며 취직한 곳이 지방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년정도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다행히 직장을 서울로 옮겨 함께 사는가 했더니 노시는 아버지를 부르는 직장동료가 있어서 안성에 내려가셔서 잠시 일하시게 되었는데 이삼년 일하다보니 힘도 딸리고 일거리도 변변찮으니 그 일도 눈치 보여 그만 두었다며 어머니와 함께 올라와 줄곧 며느리 신세를 지신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커피가 등장하였으니 그 얼마나 마신 걸까.
사실 어머니의 시대는 커피 세대가 아니다.
무쇠 솥에 밥 짓고 남은 누룽지에 물 넣어 다시 끓인 따듯한 숭늉이 제격인 세대이다.
어릴 때 너무 밥이 타서 쓴 숭늉을 마시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투정하는 때도 있었고 밥을 덜 태워 흰 밥알만 가득하여 맹맹한 물맛을 맛보던 때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머니의 숭늉에는 언제나 구수한 맛이 있어서 내 먹던 사기대접에 가득 담아 목축이던 일들이 떠오른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무쇠 가마솥은 사라지고 양은솥이 나오더니 이마져 사라진 지금 전기솥에 전자 솥 까지 나와서 밥을 태우는 일 전혀 없으니 숭늉 먹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끔 설렁탕집에서 돌솥밥을 먹고 숭늉을 직접 만들어 마시거나 특별히 손님을 위해서 숭늉을 내오면 모를까 우리 곁에서 언제인가 슬그머니 사라진 숭늉인 것이다.
내 아들을 비롯해서 젊은이들에게 숭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 한두 명은 대답 못할 일이 발생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없으면 대체되는 것이 있으니 슬그머니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커피였다.
아내는 커피를 입에 대지도 못하는 체질이라 커피 타는 것 서투른 터에 어머니는 언제 맛을 들였는지 커피를 좋아할 뿐 아니라 커피 타는 것까지 즐기셨다.
커피와 밀크를 넣고 설탕을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서 잘 저으면 커피가 되는 것을 내가 하면 할 때마다 맛이 다르니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먹고 싶으면 직접 타서 먹으면 되는 것을 어린애처럼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마시었다.
어머니가 타 주신 커피 맛은 항상 맛이 일정하여 어제 먹었던 맛을 오늘도 즐길 수 있었다.
내 입맛에 꼭 맞는 것이다.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무쇠 솥에서 우린 숭늉처럼 구수한 맛에 커피 못 끓이는 아내는 제쳐두고 어머니에게 커피 부탁을 하여 줄곧 즐겨 마셨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는 어머니의 커피 맛이 예전과 너무 달랐다.
설탕이 너무 들어가 단맛이 진하였다.
한번이려니 했는데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으니 계면쩍은 웃음을 띠고 “어머니 단것 싫어하잖아요.” 하니까 “그때야 설탕이 귀하니 조금 넣을 수밖에.” 하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손끝 맛이 변한 줄 알았는데 무슨 귀한 설탕이라고 마음껏 드시지도 못하고 아끼셨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 속에서 무엇이 솟아오른다.
솟아오르는 것을 지긋히 누르며 지난달 시창작 교실에서 내어준 숙제를 하려고 슬며시 어머니 곁을 떠난다.
품속에 파묻혀 빨아 먹던 젖가슴
따듯한 온기도 모두 마셔 버렸어라
그 가슴 그 마음속에 무엇이 남았을까
손잡고 입학하던 그날의 고운 얼굴
호수에서 잔물결 일렁이고 있으니
내 어찌 이리 되도록 보고만 있었을까
손자가 사드린 조그만 목걸이
만지고 걸어보며 주름 펴고 되 준 선물
내 지금 이밖에 없으니 한잔 마셔 보거라
찻잔에 담겨진 정 보듬어 마실 때에
너무 달게 변해 버린 어머님 손끝 맛
전에는 귀한 것이라 아끼신 것 아닐까
“어머니의 커피”라 제목을 달며 어머니의 등 굽은 허리를 물그러미 다시 바라 보았다. .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이글보며..엄니에 전화드립니다..『저환성이 잘도착했습니다』
장재학님의 댓글
울 선배님들은 다 효자이십니다 ^^
윤용혁님의 댓글
오윤제 선배님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마셔봅니다.
허리 굽으신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어머니의 커피향 같은 진한 사랑을
느껴봅니다. 마음을 적시는 좋은 글에 마음 두고 갑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현대적 감각의 노래가 멋은 있는데 맛은 덜 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눈물이 나서 조금 자제하는 마음으로 선곡햇습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저도 늘 커피를 마시지만
가끔 어머니가 타주는 커피는 유난히 향이 좋아,
꽃잎 동동 띄운 사랑이 듬뿍 한
사랑 향기 같기도 하고,
햇살 고운 빛을 갈아 넣어 만든
해 맑음이 가득한 것도 같으니, 그 커피를
사랑의 차라 이름 지어보고 싶습니다.
차안수님의 댓글
지난주 일요일 부모님께서 우리집을 방문하셨지요. 몇일 묵어가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님 화장실 이용 문제로 점심만 드시고 가셨습니다. 언제 다시 오실수 있을까? 기약도 없이...자주 찾아 뵙겠습니다..계실때 잘해야 되는데.....
이동열님의 댓글
울 마누라두 나중에 울 아들이 잘해 줄까??
오윤제님의 댓글
근데 지금은 나두 잘타서 먹어요 요즘은 함게 섞어 나오니 나같은 놈 편하게 됬어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70년당시 설탕푸대는 최고의 선물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