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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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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가 좋아요
삼월은 입학 시즌이다.
지금은 삼월에 입학을 하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오십 년대는 사월이 아닌가 싶다.
그 때의 겨울 추위는 굉장해서 삼월의 초순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음지의 논에는 녹다만 얼음이며 눈이 남아있었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뚝딱 하며 눈앞을 지나가지만 위험한 얼음 위에서 썰매도 타고 뛰어 놀다가 빠져 곤쟁이(다른데서는 메기라고도 함)도 잡기도 하였다.
젖은 양말을 말리다 태워먹고 어머니에게 꾸지람 들은 기억도 새롭다.
그 시절을 거쳐 조그만 연못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올챙이가 꼬리를 떼고 넓은 논으로 이동하여 자유로이 물과 뭍을 드나들듯이 나도 인천의 변방에서 당당이 입학시험을 치루고 시내의 한 학교에 합격하여 시내와 시골을 드나드는 기분은 굉장하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두 번이나 낙방하였을 때의 그 서러움, 그 패배감, 그 부끄러움은 봄이 오도록 내 가슴엔 가득하게 남아있었다.
다행이 후기로 대학에 입학하여 친구들을 사귀며 지내는 사이에 하나하나 서러움이며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있을 무렵이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열차는 거의 한 시간 간격인지 싶다.
친구를 기다리느라고 서울역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때 그 짓을 우리 몇 명은 재수라 하였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워 전철 들어오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
가서라도 그 차를 타야하는 바쁜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때는 친구들이 마냥 좋아 그 짓을 자주하면서 동인천 뒷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서로의 호주머니를 털어 파전 하나에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 놓고 무슨 여자라도 된 듯이 떠들던 그 기분에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야 자리를 일어서곤 하는데 일진이 나쁜 날은 통금 단속반에 걸려 혼쭐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즉석 훈방으로 보내는 아랑을 베푸는 다수의 지팡이들의 인정이 흐르는 시절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지 오전 강의만 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초여름에 접어드는 계절이라 열차에 앉아 졸음을 참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는데 어깨들 툭 치고 내 옆의 빈 의자에 들어와 앉는 사람이 있었다.
요즈음이야 동창들의 사정을 세세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잔 주고받으며 익힌 세월이 있으니 서먹한 기운이 사라졌지만 그 당시 3년 동안 반을 한번이라도 같이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서먹한 구석이 있는데 그런 내색도 없이 옆 자리에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동인천까지 온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 데에는 단순히 그 친구 학과 여학생 때문이었다.
우리 학과에는 여학생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언제인지 모르게 입학하던 몇 주가 지나니 너나 할 것 없이 존댓말이 사라지고 걸쭉한 욕도 자연스레 나오는 터에 자기들은 한 여자 때문에 존댓말을 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제 만난 지도 얼마만큼 지났으니 트고 지내자며 반말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한 즉슨 홍일점인 한 여학생 曰 “나는 이대로가 좋아요”하더란다.
그래서 지금도 불편한 존댓말을 그 여학생에게만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친구 다신 만나지 못 하고 있으니 존댓말이 언제까지 갔었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본다.
하긴 고관대작들도 그 여자에게 존댓말을 하였을 텐데 젖비린내 나는 대학 신입생이 트고 먹으려 하니 "나는 이대로가 좋아요“가 절로 나왔을 것이라 지금에서 수긍을 한다.
세상은 이대로가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저대로가 좋을듯하여 바꿔 보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대로가 좋으면 보수 저대로 바꾸려하는 것은 진보가 되는가.
법은 국민이 편리하고 잘 살게 고치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틈엔가 양쪽으로 나뉘어 네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다툼을 하고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에 앞서 편하고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여주었으면 좋으련만 가진 것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무리와 가지고 있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빼앗으려 하는 고약한 싸움만 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국민이 보일 리 있겠는가. 다 자기 뽑아 달라하여 뽑아 놓으면 “이대로가 좋아요” 하는 사람 대부분인 것을 그 누가 모르랴.
이대로가 좋은 것도 있을 것이고 저대로 바꿔 보는 것에 좋은 것이 필경 있을 것이다.
말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아니라지만 그래도 말하는 표정에서 우리는 그들의 진심을 알고 말하는 억양에서 그들의 속내를 안다.
이제 이무기들이 용틀임 하려 기지개를 하고 시절이 오고 있다.
떠벌이는 자마다 다 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 한 명 만이 용좌를 차고앉을 것이다.
지금 용틀임 하고자 하는 자는 무엇이 이대로가 좋고, 어떤 것이 저대로가 좋은가를 지금 모두 국민들에게 낱낱이 내어 놓아 요리 조리 자세히 보게 하시라.
껍데기만 살짝 내어 놓고 색깔로 덫 칠하지 마시라.
성장과 평등 아니면 보수와 진보를 교묘하게 숨기지 말고 그것에서 어느 색깔의 순이 나와 어떤 꽃을 피워서 무슨 열매를 맺는데 그 맛은 어떻다고 속속들이 예기하시라. 그 판단을 우리 모두에게 맡기시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저대로가 좋은 것이고 미동도 않는 것이라면 이대로가 좋은 것이리라.
잠용들이여 그대들 아직은 이무기인 것을 용틀임 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마시라.
설혹 용좌에 앉을 날이 오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그 짓 하지마시라.
그대들이 소임을 다하고 용좌를 떠나는 날 크게 한번 용트림하시라.
그것이 진정한 용이요, 용의 몸짓 아니겠는가.
용좌에 앉을지라도 이대로가 좋은 것인지 저대로가 좋은 것인지를 온 국민에게 항상 물어 보시라.
마음에 국민을 품고 일하다 끝나는 날 용좌에서 사심 없이 내려오며 멋있게 용틀임 하는 것을 이번만은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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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74회)님의 댓글
이대로가 좋아요..복지부동의 자세..바람직한 모습은 아닐런지요..그리고 볼 수 있는데도 보려하지 않고 찾을 수 있음에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장재학님의 댓글
이대로가 좋아요... 깊은 뜻이 있었던거 아닐까요...? 출출합니다...ㅜㅡ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지금은 삼월에 입학을 하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오십 년대는 사월이 아닌가 싶다==> 제 중학교 1960년대초인듯한..인문님 확인해줘요..
오윤제님의 댓글
초등학교 입학하고 3학년 땐가 3월로 바뀌었지요. 학구제도 바뀌어 헤어진 친구들도 있었지요.
송해영님의 댓글
윤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59년 초등학교 입학시 4월이었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저도 59년 초등학교 입학시 4월이었습니다 ==> 70회해영님 초등입학은 당연히 4월맞네..오늑70회이순덕님이 입학했네..우리 마눌은 이덕순인데..인문님 테니스치러가서 아직 입가심인감?ㅋㅋ
신명철(74회)님의 댓글
단순히 그 친구 학과 여학생 ==> S대학 P여학생 이야기 같으네요..ㅋㅋ P여학생은 그대로가 좋았겠죠..
윤용혁님의 댓글
오선배님, 잊고 있던 단어를 새삼 일깨워 주셨어요. "메기잡았다." 입니다. ㅎㅎㅎ
입학시기가 4월에서 3월로 바뀐 것이군요?
이대로가 좋아요. 모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신명철(74회)님의 댓글
오선배님 댁이 혹시 선학동아니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우리나라에 2월 수업과 봄방학이 생긴 것은 1961년 ‘3월 학기제’가 도입되면서부터 입니다. 그 전에는 일본의 4월 학기제와 미국의 9월 학기제가 혼용되고 있었다합니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세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3월 학기제’가 자리잡고 있는데. 겨울방학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졸업식, 종업식등 마무리하는 중요한 학사업무와 교사의 인사이동으로 2월에는 꼭 개학을 해야하고 또한 새 학년이 시작되기전에 또 한번의‘짧은 방학’ 즉 봄방학이 필요하여 2월은 그야말로 허송세월이 되고 있습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신 후배님 우리집 선학동에 있네요. 여기 선학동 이대로가 좋은데 아마 얼마후에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장학관님 지금 그 자리에 있을 때 제 정책들 이대로가 좋은지 저대로가 좋을 것인지 검토하시어 좋은 교육정책 수립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