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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머니 칠순잔치 고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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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파일을 정리하다가 2004년 가을 어머니 칠순잔치날 오신 손님들
에게 낭독한 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안녕하십니까?
공사다망하신데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가장 기쁜 날인 저희 어머니 칠순 잔치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같이 기쁜 날에 저희를 헌신적으로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하여 한 말씀드리고자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세상에 어머니들이 다 훌륭하시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저희 어머니의 사랑처럼 숭고하고 오염되지 않은 감정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또 누구에게도 자랑을 해도 다함이 없는 그런 분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칠순을 맞이하신 저희 어머님은 평안남도 남포에서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6.25를 맞아 1.4 후퇴때 어업하시던 배 2척에 대부분의 가족들이 나누어타고 남하하시어 인천에 자리를 잡으시어 지금까지 생활하시고 계십니다.
97년 고인이 되신 저희 아버님과는 휴전이 된 다음해에 결혼하시었습니다.
그때 엮어주신 분이 아버님과 친구이셨던 여기 나와 계신 외숙부이십니다.
잠깐 소개...주 자 영자 관자 이십니다.
여기에서 잠깐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하여 말씀 안드릴 수 없네요.
저희 아버님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다니실 때 6.25를 맞이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국군이 북진한 후 공산당 치하에서 받은 설움을 푸시려고 치안대에 가담, 잔류 공산당 색출에 전력을 다하셨다 합니다. 다시 중공군이 내려오자 저희 할아버지로부터 그때 당시 200원 쥐어주시며 잠시 피하라는 말씀을 듣고 말그대로 비내리는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홀홀 단신 월남하시었습니다. 그러시곤 즉시 6.25 당시 그 유명한 8240 켈로부대(일명 동키부대)에 입대, 험난한 사선을 넘나드셨습니다. 그때 백령도에서 무전사로 근무하셨는데 여기 계신 외삼촌을 만나셨다 합니다. 휴전후에는 H.I.D(육군첩보부대)로 편입, 64년도까지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십여차례 비밀리 북파공작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항시 죽음을 담보로 한 활동이었기에 어머님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59년 제가 세살 때 아버님이 뇌를 크게 다쳐 1년간 병원에 계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직접 행상에 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65년에는 아버님이 C.I.C(육군방첩부대)-육군보안사령부의 전신 으로 옮기시어 75년까지 반공전선에만 20여년 근무하시는 동안 박봉에 어려움을 느끼셔서 어머님이 직접 생활전선에 나서서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대학 다닐 때까지 어머니는 연안부두에서 생선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저는 컴컴한 새벽 일찍 움직이시는 어머님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하루에는 아침 점심 저녁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시간에는 낮과 밤의 구분 또한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세월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다 여름이요, 겨울같았을겁니다. 그랬습니다, 분명 그랬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고 잠시 두 눈 감고 머리 속에 하나 가득 저와 우리 가족들의 옛 기억들을 슬라이드처럼 비쳐보면 분명 그 속의 우리 어머니는 늘 분주하고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어머니의 하루는 늘 차가운 새벽으로부터 시작되셨습니다.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 새벽에 연탄가스에 어려 정신이 몽한 상태에서도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천근만근 힘든 몸을 이끌면서 장사를 나가시는데도 말리지 못했던 뼈아픈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칼날같은 차가움도 마귀같은 고단함도 어머니 당신에게만은 감히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75년 아버님이 보안사를 나오시면서 사업을 하신다고 퇴직금을 탕진하셨는데도 아무 일 없는 듯 굳굳하게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정한수 한 그릇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합장한 두 손으로 우리 남편 건강하고 성공하게, 우리 아이들 공부 잘하고 훌륭한 사람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빌었던 어머니의 지극정성만 눈앞에 어립니다.
이 땅의 관습과 운명처럼 대물림 된 가난으로 소녀적의 분홍빛 꿈과 스무살의 연정은 빼앗기듯 차압 당한채 너무나 일찍 아내와 어머니라는 태산과도 같은 운명을 떠맡으셨던 우리 어머니,
저희가 다 성장하여 생활의 기반을 다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생활에 보탬을 주려고 10년전까지만 해도 평생 해오셨던 사업 역량을 발휘, 경양식집, 일식집을 운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 가족의 큰 불행은 94년 아버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셔 누워계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4년째 어머님이 거의 홀로 병구안을 하던 중, 또 막내 여동생마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저희 본가로 들어와 남편과 자식을 동시에 병구안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고생의 보람도 없이 97년 11월 아버님을 보내드리시고 석달후 여동생마저 저세상으로 보냈습니다.
불과 몇 달사이로 남편과 딸마저 잃은 슬픔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슬픔을 뒤로한 6년이라는 세월...지금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이 남기고간 저의 조카를 어려서부터 키운 정을 가지고 본가에서 애지중지하며 홀로 뒷바라지 하고 계십니다.
저는 역사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랑이 다 고귀한 것이지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만큼 절대적인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가끔 저희 어머님께 이제 고생 그만하시고 저희와 함께 같이 사시지요..하시면 내 손발이 멀쩡한데 왜 같이 사느냐 하시며 펄쩍 뛰십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저희를 키워주신 어머니..지금도 저는 자식으로서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시왈 부혜생아하시고 모혜국아하시니 애애부모여 생아구로샷다
욕보심은인대 호천망극이로다
‘시경’에 말하기를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아! 슬프다. 부모님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고 고생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 갚고자 하나 넓은 하늘과 같아 끝이 없구나! 라는 구절..제가 항상 명심해야할 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오직 바라는 게 있다면 저는 오로지 어머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랄뿐입니다.
오늘 즐겁고 좋은 날..여러분들께 너무 긴 말씀을 드린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저희 어머니 고희연에 참석하여 얘기를 들어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저희가 마련한 소찬이지만 부족하나마 저희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어주시는 의미에서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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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성(70회)님의 댓글
짝짝..뭉쿨..대박예감..역사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자식』사랑!
장재학님의 댓글
효자 인문 선배님께 박수를 짝짝짝짝짝 ^^
이진호님의 댓글
어머니를 사랑하고..존경하는 마음이 글에 묻어 나는듯합니다...몇달 후면 어머니 칠순잔치를 해야하는데 선배님 글을 읽고 잠시 어머니를 생각해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중간에 읽다가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답니다.
모질고 험한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반공정신으로 조국을 지키신 위대하고 장하신 아버님,
당신의 몸을 살피지 않으시고 가족을 지키신 어머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누이동생 일은 차마 뭐라 위로를...
어머니와 형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멋지신 형님.
차안수님의 댓글
아~ 아버님 어머님이 아직 살아 계시지만 칠순 잔치를 못해 드렸습니다. 이제 팔순을 바라 보시니 그때는......
오윤제님의 댓글
바위고개를 넘는 것 같습니다. 연로한 부모님 효도 잘 해야겠지요.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형 동생 마찬가지겠지만 오르나 그르나 역성들어 주는 것이 제일인데 그걸 못해 효자 소릴 못들고 있습니다. 무조건 안으로 굽을 팔이 밖으로 굽혀지는 것 어찌 할 수 없던 때도 간혹 발생하더군요. 효도 합시다.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지금 강남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출장 다녀와 成님 말대로 대박을 예감하였지만 별 소득이 없네요..ㅠㅠ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오늘 내가 바삐 글을 올리고 출장간사이 동열형이 여기에 맞는 음악 올릴 줄 알았는데...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멸공~!! 슬픈 우리의 세상 이야기입니다.
울 부모님도 원적이 평북이신 데...이젠 두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오..
앞으로 남은 효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되네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이런 찡한 글에 불효자님들은 유구무언이라 꼴을 달 수가 없답니다. 대박이 날 수가 없지요.꼬리 안 다신 분들 전부 불효자로 보면 맞지유? 아마 아침되면 줄줄이 사탕일거예요.
신명철님의 댓글
이런좋은글 낭독시간이 있었구나...늦게가서 밥만먹고 왔는데... 저는 어렸을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효도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친구부모님 칠순,팔순잔치 할땐 되도록이면 1부式 끝나고 2부 여흥시간쯤 참석한답니다...흨흨흨..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태진아의 사모곡..내 기술자면 벌써 올렸는데..
차안수님의 댓글
동열이 형님이 야구땜에 바쁘신것 같습니다. 내일쯤이면 사모곡이 올려질것 같은데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내가 이 글 낭독할 때 어머님 눈가에 한없이 눈물이...ㅠㅠ
윤인문님의 댓글
<EMBED style="inset" src="http://lovesay.com/~music/ko-music/k0760.asx" autostart="true" loop="true" hidden="true" volume="-0"> <BR>동열형이 안올려줘 내가 올리고 말았네요..ㅎㅎ..태진아의 사모곡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암만 글이 좋아도 成님의 인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네요...그래서 할 수 없이 자살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