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중학생일기
본문
중학생 일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정책상 도시로
나가는 길이 원천 봉쇄되는 바람에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진강산 너머 남녀공학의 시골 사립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차석으로 합격하였다고 등록금 면제와 학교 측으로부터
모자와 교복을 선물로 받았는데 모자가 너무 커 안에 신문지를
둘둘 말아 삼년간 쓰고 다녔다.
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이면 여지없이 벗겨져 신문지가 빠져
나뒹구니 창피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학생간부로 있는 사나운 누나가 삼학년에 떡 버티고 있어
다른 애들이 감히 날 우습게 여길 수가 없었고 의기양양하여
하오고개를 넘어 십리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녔다.
어쩌다 운 좋게 화물차라도 얻어 타면 마냥 즐거워
그 차를 타고 그대로 달려 서울구경이라도 가고 싶었다.
어느 날은 위험천만한 불도저를 실어 나르는 시커먼 큰 바퀴가
노출되어 무섭게 돌아가는 그런 차를 얻어 타고 집에 와도 신이 났다.
유일한 문구점 하나가 학교 앞에 있었는데 빵과 라면도 팔았다.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 들어가 가게주인 아주머니의 정신을 빼 놓은
사이 친구 서넛은 잽싸게 크림빵을 책가방에 몰래 챙겨 양지바른
산소 갓에서 그 빵을 같이 뜯어 먹을 때면 어머니께서 쪄 주시던
개떡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달고 맛있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전 강화 체육대회에 육상선수 대표로 출전하고
싶어 선발전을 치르는데 다른 애들에 비해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
근소한 차이의 기록미달로 탈락하였다.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젖을 공급받지 못한 것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학교를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보호대도 없이 구멍 뚫린
스타킹을 신어도 마냥 어깨가 으쓱했으며 밤 열시가 다 되도록 연습하다
혼자 산길을 넘을 때면 산귀신이 덮칠까봐 늘 진땀을 흘렸고 그것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압력으로 실력을 인정받고도 대표 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주 아쉬운 대목이었다.
따스한 봄날,
전교생 음악경연대회를 숲속에서 하였는데 나는 “노래는 즐겁구나.”를
불러 당당히 일등으로 입상하였다.
그것은 내가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 대부분 트롯 풍의
성인노래인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을 가지고 나오니 음악선생님의 괘씸죄에
걸려 단지 운 좋게 그리된 것이다.
앵콜 송을 부르려는데 산 아래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한 아주머니가
호미자루를 든 채 울부짖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이 애지중지 키우는 외아들과 내가 오늘 점심시간에
주먹싸움을 하였는데 삼학년 누나의 남자친구 형들이 날 역성들어
그 친구를 때려 이 녀석이 울며 집에가 일러바쳐 화가 난 친구의 어머니가
체면불구하고 난리법석을 떠시니 선생님들은 그 어머니를 말리시느라
내 노래에는 관심도 없었고 나는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가을날,
미션스쿨이라 매주 월요일에는 채플시간으로 되어있어 학교 옆에
자리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와 친구들은 주머니에 상수리를 잔뜩 주워 넣고
교회 이층에 올라 영어 과목을 담당하시던 목사님께서 두 손을 들고
“자 기도합시다.” 하는 사이 아래층 여학생들에게 일제히 그것을
집어 던지니 상수리를 맞은 여학생들은 따가워 몸을 비비 틀었고
상수리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마루를 굴러가 그날 이층에서
예배를 보던 남학생들은 호랑이선생님에게 걸려 진땀이 다 나도록
단체기합을 받았다.
그래도 추수감사절 예배시간에 나는 감사 찬송의 4중창 일원이 되어
“넓은 들에 익은 곡식” 찬송가를 미성으로 잘 부르니 그 누구도
기도시간에 상수리를 집어 던지던 놈이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음악선생님이 다른 애들 몰래 도시로 나가시던 길에 구입한
귀한 영어참고서를 나에게 주셨다.
그 많은 학생 중에 날 기억하고 마음에 선물을 친히 주시니 이때부터
여자음악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긴 머리에 검정 옷이 잘 어울리시던 선생님을 보고 싶어 음악시간을
늘 학수고대 하였고 잘 보이기 위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다소곳 풍금에 앉아 “얼굴” 그리고 “페리카는 어진아내” 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시며 노래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몇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사 하나 까먹지 않고 있다.
구라위 바닷가로 친구들과 함께 놀라갔을 때 석양에 비친 선생님의 긴
머리가 바람에 나부낄 때면 인어아가씨가 따로 없었고 언제나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주려 노력하셨다.
그런데 그 음악선생님이 다른 남자 선생님과 사귀며 데이트하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급기야 곤혹스러워 하시던 음악선생님은 결백을 주장코자 갑자기
수업 중 물통의 물을 와락 쏟으시더니 우리들 보고 주워 담으라고 하셨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니 말은 이처럼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가
없는 것이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셨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토록 사모하던 선생님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니 헛소문을 퍼트린 학생들이 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내가 선생님을 짝사랑 할 기회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의 재정이 너무 어려운 가운데 교사를 신축하게 되어 학생들이
동원 되었다.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우리들은 건축자재를 나르고 콘크리트용 자갈을
매일 깨트렸다. 손이 부르텄고 망치가 없는 나는 장도리로 자갈을 깨트려
일정량을 채우려니 늘 늦게 귀가하였고 어떤 때는 사정하여 다른 애의
망치도 빌렸다.
지금 같으면 학부모들의 항의로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러니 영어 교과서 한 권을 제대로 뗄 수가 없었고 기초가 안 돼
지금 나의 영어발음이 본토를 떠나 고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겨울이 되면 농촌학생들의 위생관리가 엉망이었다.
시골인데다 겨우내 물이 얼어붙으니 여름과 달리 잘 씻지를 않았다.
추운 겨울 날 조회시간에 호랑이 선생님은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 놓고
갑자기 양말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다.
정말 가관들이었다. 학생들 대다수가 새까만 때로 발잔등에 굵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학생 중에 가장 예쁘고
인기가 많았던 선배누나에 발은 더욱 얼룩이 져 있어 우리들의
눈을 상당히 의심케 하였다.
겉보기와 아주 다른 실망과 안타까움을 뭇 남학생들에 던져주었다.
사나웠지만 인정 많던 누나의 중학교 졸업식 날,
집에서는 아무도 축하하러 오지 않았다.
다른 집들은 가족 친지들이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도 찍고 화환을
목에 걸어 주었는데 우리 누나에게는 그 누구도 축하와 사진 한 장 찍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교회에 숨어 있던 누나가 조용히 날 부르기에 달려갔더니 너라도 문구점에
가 화환을 사오라고 하였다.
달랑 돈 몇 푼을 쥐고 내려가 화환 값을 물으니 비싸 살 엄두도 못 냈고
둘둘 말린 색종이 몇 개를 풀어 얼기설기 대충 누나의 목에 걸어주었더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누나는 몹시 민망하고 창피한지 풀어 내동댕이쳤다.
아주 우울한 졸업식이었으며 누님은 지금도 그 때 기억을 잊고 싶어 한다.
아! 나의 중학시절,
따스한 봄볕에 스물 스물 기어 나오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몸에
이를 흔히 노루라고 불렀는데 유난히 큰 노루목장을 가졌던
친구는 장가라도 잘 갔겠지?
그리운 반타롱 교복바지 단을 펄럭이던 까까머리 친구들, 모두다
어디로 갔나?
추억 속으로 자꾸 흘러만 간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이따 집가서 읽어야지..꼴도 그때..
오윤제님의 댓글
3년 졸업할 때 까지 입으려고 소매는 왜 그리 긴 것을 사주시는지 그래도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음악 선생님 놀리는 것도 재미있고. 닭대가리 꼬끼요 하던 것 선생님 죄송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정말 재치를 겸비한 센스의 여인이시군요.
괜찮으시다면 인고 마지막 시험기수 76회 명예동창으로 인정코자 합니다.
아드님이 101회인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큣하실 줄이야, 정말 감동입니다.
오윤제 선배님, 부모님들은 교복값 아끼시느라 늘 헐렁한 교복을 사 주셔서
허리에서 빙빙 돌았죠.ㅎㅎㅎ그립군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어머니께서 쪄 주시던 개떡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달고 맛있었다. ===> 솔직담백한 표현이 맘드네..일부읽고 잊어먹을까바 미리 꼴다는것..담읽고 또 쳐야지..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상수리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 강화판 얄개전을 보는듯..용혁님 표현도 이제는 날닮어 야간 끼를 발산하는듯..아님 말고..글 길기도 하네..꼴 하나더 쳐얄듯..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영어참고서===> 오늘밤 내올리는 글 내용이 영어참고서인데 어찌 알었남? ㅋㅋ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노래가 독일합창단?..나도 신성한곡 틀어줘...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노래는 즐겁다" 노래를 독일 어린이 합창단이 불러주니
넘 좋지요. 이웃집 여인(I 8회)의 무심코 적은 영어단어에 몇날을 고민하시던
환성형님, 넘 순수해서 좋아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태희님은 독일어도 하나바..노래는 즐겁다 ㅋㅋ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용혁후배의 학창시절 추억은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는군요..난 못살고 어려웠던 초등학교 추억만..成님 글에 이런 노래를 삽입하면 영~~아닐텐데요..ㅋㅋ
윤인문(74회)님의 댓글
태희님은 내가 학생들에게 가끔 벌로 물고문하였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요?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태희님,원곡 넘 좋아요.살짝 변주하며 부르는 것도 좋구요.
태희님이 환성형님에게 실성한 곡 올리신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신성한 곡이군요.ㅎㅎㅎ 인문형님께서는 윤브라더즈의 도량 넓으신 둘째형님이시죠. 물 고문은 영어선생님이
하셨죠. 언제 형님 원어 노래 듣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