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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형좀 말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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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형 좀 말려주세요.
다섯 살 터울인 형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연과 삶의 전환기에 충고자로서 이끌기도 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형은 웅변을 잘했고 나는 달리기를 잘했다.
형은 시골초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고 나는 1등을 했으나
형은 인천의 명문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나는 정부 방침 상 도시로
갈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다 쓰러져 가는 시골의 사립중학교로 가
삼년 내내 자갈을 깨트려 학교만 새로 짓다 나왔다.
형의 인천중학교시절,
방학이 되어 크리스마스전날 인천에서 강화고향집에 내려오다
읍에서 집으로 나오는 막차를 놓쳐 강화읍 성당에서 청년들과
성탄전야를 보내게 되었다.
거기에는 예쁜 여학생도 있어 인중 모자를 눌러쓰고 잘난 척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목자들이 들에 있어~” 노래가 중단되었다.
평소에 잘 부르던 노래였는데 가사를 까먹고 있었다.
다시 “목자들이 들에 있어~”
몇 번이고 형의 성가는 한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진땀을 빼며 끙끙거리니 옆에 있던 분이 듣다못해 한마디 거들었다.
“도대체 목자가 들에 있어 어쩠다는 거냐? 답답해서 미치겠다.”
형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고 성당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실제가사는 “목자들이 깊은 밤에 양을 지키는데~” 라고 불러야 하는데
남 앞에서 잘 부르려다 그만 노래의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이었다.
성가대 활동을 하던 형은 음량은 아주 풍부한데 음정과 박자를
기분 내키는 대로 무시하고 불러 너무 튀니 결국 지휘자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너무 감성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다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제 작년 여름 형이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통일을 기원하는 노래
자랑대회에 나가게 됐노라고 형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벌써 며칠 전부터 저녁이면 노래연습을 위해 숱하게 돈을 갖다 바치며
노래방에서 살고 있다는 푸념과 함께 한번 올라와 객관적인 심사평을
해달라기에 음악선생인 집사람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출전할 노래는 “덕수궁 돌담길”이였다.
노래는 잘하는데 너무 평범한 노래인 것 같아 따로 준비한 노래가
없는지 물었더니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목청 것 불렀다.
좀 힘들어도 입상하려면 그 정도의 노래가 좋겠다고 강력 추천한 다음
집으로 내려왔다.
드디어 일요일 노래자랑 대회 날,
날계란을 먹어가며 전날 몇 시간씩이나 연습한 후 머리를 깎고
목욕재계를 한 형은 옷도 잘 차려입고 무대 앞에 일찍 나와 응원 차 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형의 처제도 갓난아기에 젖병을 물려 나와 있는 걸로 보아
귀찮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응원요청을 한 것 같았다.
한 이십 명이 출전을 하였는데 형은 열 번째였다.
아파트주민 노래자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첫 번째
출전한 아주머니는 상당한 실력의 노래솜씨를 뽐냈다.
드디어 형이 노래할 차례,
쓸데없는 인사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그만 첫 박자를 놓쳐
반주 따로 형 따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급기야 고음에서 꺽꺽거리더니 계면쩍어 낄낄대며 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그러더니 대회규정을 어기고 혼자만 이절을 부르겠다고 졸라대
사회자로부터 핀잔과 간신히 허락을 받고 제법 음량을 높여 부르다
또 박자를 놓치니 나는 숨죽여 웃었다.
차라리 타령이라면 몰라도 아주 놀고 있었다.
형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노래를 가까스로 마치고 내 다시는
이 대회에 나오지 않겠노라 굳게 맹세하고 단을 내려왔다.
집사람의 눈치를 가만히 살피니 아주 민망한 표정이었다.
내가 성당에서 성가를 혹 오버하여 부르면 옆구리를 쿡 찌르던
사람인데 시 아주버니의 노래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휴일 날 집에서 편히 쉴 사람들을 불러 놓고 뭐하는 짓인가
하는 눈빛이었다.
형의 처제는 아이의 젖병을 일찌감치 거두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집에 가자고 하니 형은 그래도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혹시나 형이 통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입상을 시켜줄까 기다리는지 자리를 애써 뜨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는 불을 보듯 탈락이었고 형은 나와 집사람 앞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창피한 마음을 감추려는지 더욱 크게 웃었다.
애고 그날 우리 형은 떡 됐다.
형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 나 자신도 혹시나 과대포장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았다.
성경낭독을 할 때면 유난히 버벅거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형과 함께 그 다음 주 성당미사에 참석했더니 성가 곡
제목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구렁텅이에서 크게 웁니다.” 이었다.
하느님은 어찌 아시고 이런 제목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형은 웃었지만 노래자랑대회에 나갔다가 구렁텅이에서
크게 울었던 것이다.
댓글목록 0
오윤제님의 댓글
형제는 용감하였다 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형님은 할려고 하는 노력이 지극한데 아우님의 모습은 안 보이네요. 그래서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죠. ㅎㅎ 나도 실은 장남이니까요.
이진호님의 댓글
형님의 의지와...가족 사랑이 느껴짐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사랑이 메아리칠 때”그땐 우리 하나됩니다...꼬리도 마찮가지...주말아침 청량산 올라가 지난한주 돌이켜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오 선배님, 선배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형의 장점만 벤치마킹 하려 했지요.
환성형, 주말에 올라 오셨군요? 청량산의 청량한 기를 마시세요.
진호후배님, 고맙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윤브라더즈 조만간 노래방에서 한번 만납시다! 용혁후배!!난 주로 pop song 이 주제가라 듣는데 부담감 주지 않을까? 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윤 브라더즈의 둘째 형님,
화 목요일 중 언제나 불러 주십시오.(월 수 금은 배드민턴 레슨)
맏형님 모시고 인문 형님께 소주잔을 올리렵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ㅋㅋ 형님이 명물이세요. 자신 없는 분야에 도전하는 모습은 아릅답네요. 보통은 포기하는데..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형님의 헤프닝 덕분에 엔돌핀이 돌아 즐겁게 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그동안의 과로로..온종일 잠들었습니다..산도 못오르고..좀전 아웃렛매장 갔는데..암것도 못건지고..런닝화하나 장만했습니다..이젠 외롬을 향해 달려봐야지..ㅋㅋ
윤인문(74회)님의 댓글
成님은 집에 와도 외롭다하시니 누구랑 같이 있어야 외롭지 않나요? 저와의 번개가 그리우신가요? ㅋㅋ
김태희(101)님의 댓글
저녁시간에 달리기 핑계로 신변방 멀리하기 작전?... 그러다 런닝화 도둑 맞지요. ㅋ
이성현70님의 댓글
오늘 아침 여성시대에서 이 글 읽어주데요.강석우가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대기만성...드뎌 조회수 100돌파...한턱쏘시겨..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