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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펌] 인육만두 & 중국의 인육문화 (심신 허약자 열람금지]
작성자 : 김태희
작성일 : 2006.12.09 19:43
조회수 : 2,167
본문
형섭님의 글을 읽다가 중국의 인육만두를 소재로 한 영화 장면들이
생각나 피식 웃었습니다.
주막 여주인이 남자 손님을 2층으로 유혹해 옷 벗는 척 하면서 발로 뭘 밟으면
마루 뚜껑이 열리고 손님은 주방으로 추락,
정육용 칼을 들고 '고기'를 기다리던 종업원
" 주인님이 오늘은 물건을 제대로 골랐네, 살집이 좋아~ " (신용문객잔였나?)
인육만두의 진수를 보인 만두전문 엽기영화를 비됴로 본 적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 검색을 하다가 중국의 인육문화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기에 퍼왔습니다.
많이 엽기적이니 비위 약하신 분은 그냥 가십시오.
==================================================
해부학적으로 본다면, 돼지의 배를 가르거나 사람의 배를
가르거나 별반 차이없는 행위일지 모른다.
또한 미각의 관점으로 본다해도 돼지고기나 사람고기나 씹는 맛에 큰 차이는 없으리라.
물론 어디까지나 이런 관점은 극단적인 유물론자의 생각일 뿐 일반인들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끔찍한 상상이다.
(사진: 팔선반점 인육만두의 한장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당연시하고 직접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모골이 송연할 일일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팔선반점의 인육만두(八仙飯店之人肉叉燒飽; Untold Story, 1993)'
라는 영화는 바로 그러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너무나도 살벌한 영상 때문에 미국에서도 X등급을 받아
제대로 상영조차 되지 않은 이 영화는, 그 주인공들로 인해
오히려 우리에게 거부감이 덜 하다.
첩혈쌍웅(牒血雙雄, 1989)에서 주윤발과 함께 권총질을 해대던 이수현(Danny Lee)이
코믹한 형사로 나오고, 무간도(無間道, 2002)에서 형사 반장역을 맡은
황추생(黃秋生)이 살인마 왕씨로 등장하기 때문.
왕씨는 중국 본토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마카오로 불법 전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의 살인 본능은 다시 발휘되기 시작,
급기야는 자신이 취직해 일하던 식당(팔선반점)의 사장과 부인 그리고
애들까지 모조리 난도질해 죽여 버린다.
그렇게 해서 식당을 차지하게 된 왕씨는 종업원을 두고 주인인체 행세하게 되는데,
결국 남녀 종업원들마져 왕씨의 눈에 거슬리게 되자 사지를 절단하여 죽이고는,
내장으로 곰국을 끓이고 뼈에서 살을 발라 만두를 만들어 팔게 된다.
맛있다고 소문난 이 집의 만두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
수사를 하던 형사들까지 왕씨의 만두맛에 푹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예기치 못한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이 영화의 모든 살인 장면들이 극악무도하고 잔인하지만,
X등급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잔혹한 살인 장면 때문이었다.
1년에도 B급 호러 영화를 포함해서 무수한 공포 영화들이 제작되는 헐리우드지만
이처럼 끔찍하게 어린 아이들을 죽여 만두로 만드는 영화는 제작되지 않는다.
만들어봤자 극장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은 그것을 해 냈고,
이 영화로 인해 주인공 황추생은 홍콩 영화제(금상장)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되었으니,
중화권 문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속 오컬트 분석]
어린 시절 떠 돌던 괴담에 대한 추억 한가지.
"어느 어느 중국집은 자장면이 맛있는데, 사람 고기를 넣어 만들어서 맛있다더라"
아마 한 두 번씩은 익히 들어봤던 친숙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소문을 퍼뜨린 이가 누구인지, 또 그런 소문으로
그 중국집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끔찍한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장면에 대한 식욕은 전혀 감퇴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전혀 얼토당토한 얘기는 아니다.
기록에 보면 중국사 곳곳에는 식인과 관련한 여러 사료들이 차고도 넘칠만큼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권율 장군이나 김덕룡 장군 같은 분은
왜구의 배를 갈라 생간을 씹어 드셨다는 얘기도 있고,
조난을 당한 사람들이 죽은 동료의 고기로 연명하며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절박한 스토리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해외 토픽 중 하나이다.
하지만 권율 장군께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삼시 세끼 밥상에 췌장 조림이나 심장 볶음을 계속 드시지는 않았을 터이고,
생사의 기로에서 구조된 사람이 그후에도 인육맛을 잊지 못해
정기적으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일회성에 근거한 이벤트였다는 소리다.
(사진: 영화 '팔선반점 인육만두'의 한 장면)
중국은 이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를 통해 식인 문화가 전승되어 왔다.
때로는 형벌로, 때로는 복수로 또 어떤때는
굶주림에 대한 자구책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4대 성인이신 공자님도 평소에 인육으로 만든 젓갈을 즐겨 드셨는데,
자신이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 고기가 젓갈로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듣자
그 뒤부터는 인육 젓갈을 드시지 않았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삼국지의 유비도 유안이란 사람이
자신의 부인 엉덩이 살로 요리를 해주어 맛나게 먹고는 지친 몸을 추스린 적이 있다.
수호지(水滸傳)에도 사람고기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수, 당 시대에는 아예 사람고기만 전문적으로 내다파는 인육 시장이 존재했었으며,
그 폐단이 늘어나자 송나라 때에는 인육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원나라 때에도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실려있기도 하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인육은 쌀값보다 싸고 개고기의 1/5 정도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인육 시장은 청나라를 거쳐, 불과 몇십년전인 문화혁명 시대에도
존속했었는데,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중국의 식인 풍습을 거론하며 몇천년 동안이나 사람을 먹어온 자국의 역사를 한탄하고 있다.
루쉰은 '중국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오랜기간의 식인풍습으로 인해 중국 사회에서 신의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고 분개한다.
중국인들이 인의예지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덕목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중국인들이
신의를 거론하는 때는 그들이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라는 것이다.
이러한 식인 풍습은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전쟁이나 기근으로 식량이 모자라게 되면,
유괴하기 쉬운 어린이를 시작으로 타지 여행자나,
독신자 및 여성과 노인 등
주로 사회의 약자 위주로 식용할 인간의 종류와 순서가 정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왜 중화권에서 인육을 소재로 한,
그것도 어린 아이를 죽여 만두로 먹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수상까지 하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갔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한가지 끔찍한 상상 하나를 덪붙이자면,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를 전후하여 유례없이 인육이 넘쳐나서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며,
그 유민 수백만명이 중국으로 끌려 간 직후였다.
후손 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한 우리네 조상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 중의 많은 수는 중국인의 식탁에 올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음이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중국의 식인문화, 황문웅, 교문사, 1992
중국의 에로스 문화, 찐원쉐, 우석, 1998
한국인과 개고기, 안용근, 효일, 2000
1만년 동안의 화두, 이용범, 들녘, 2000
세계명작산책9, 이문열, 살림, 2003
아Q정전-광인일기, 루쉰, 혜원출판사, 1998
생각나 피식 웃었습니다.
주막 여주인이 남자 손님을 2층으로 유혹해 옷 벗는 척 하면서 발로 뭘 밟으면
마루 뚜껑이 열리고 손님은 주방으로 추락,
정육용 칼을 들고 '고기'를 기다리던 종업원
" 주인님이 오늘은 물건을 제대로 골랐네, 살집이 좋아~ " (신용문객잔였나?)
인육만두의 진수를 보인 만두전문 엽기영화를 비됴로 본 적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 검색을 하다가 중국의 인육문화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기에 퍼왔습니다.
많이 엽기적이니 비위 약하신 분은 그냥 가십시오.
==================================================
해부학적으로 본다면, 돼지의 배를 가르거나 사람의 배를
가르거나 별반 차이없는 행위일지 모른다.
또한 미각의 관점으로 본다해도 돼지고기나 사람고기나 씹는 맛에 큰 차이는 없으리라.
물론 어디까지나 이런 관점은 극단적인 유물론자의 생각일 뿐 일반인들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끔찍한 상상이다.
(사진: 팔선반점 인육만두의 한장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당연시하고 직접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모골이 송연할 일일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팔선반점의 인육만두(八仙飯店之人肉叉燒飽; Untold Story, 1993)'
라는 영화는 바로 그러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너무나도 살벌한 영상 때문에 미국에서도 X등급을 받아
제대로 상영조차 되지 않은 이 영화는, 그 주인공들로 인해
오히려 우리에게 거부감이 덜 하다.
첩혈쌍웅(牒血雙雄, 1989)에서 주윤발과 함께 권총질을 해대던 이수현(Danny Lee)이
코믹한 형사로 나오고, 무간도(無間道, 2002)에서 형사 반장역을 맡은
황추생(黃秋生)이 살인마 왕씨로 등장하기 때문.
왕씨는 중국 본토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마카오로 불법 전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의 살인 본능은 다시 발휘되기 시작,
급기야는 자신이 취직해 일하던 식당(팔선반점)의 사장과 부인 그리고
애들까지 모조리 난도질해 죽여 버린다.
그렇게 해서 식당을 차지하게 된 왕씨는 종업원을 두고 주인인체 행세하게 되는데,
결국 남녀 종업원들마져 왕씨의 눈에 거슬리게 되자 사지를 절단하여 죽이고는,
내장으로 곰국을 끓이고 뼈에서 살을 발라 만두를 만들어 팔게 된다.
맛있다고 소문난 이 집의 만두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
수사를 하던 형사들까지 왕씨의 만두맛에 푹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예기치 못한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이 영화의 모든 살인 장면들이 극악무도하고 잔인하지만,
X등급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잔혹한 살인 장면 때문이었다.
1년에도 B급 호러 영화를 포함해서 무수한 공포 영화들이 제작되는 헐리우드지만
이처럼 끔찍하게 어린 아이들을 죽여 만두로 만드는 영화는 제작되지 않는다.
만들어봤자 극장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은 그것을 해 냈고,
이 영화로 인해 주인공 황추생은 홍콩 영화제(금상장)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되었으니,
중화권 문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속 오컬트 분석]
어린 시절 떠 돌던 괴담에 대한 추억 한가지.
"어느 어느 중국집은 자장면이 맛있는데, 사람 고기를 넣어 만들어서 맛있다더라"
아마 한 두 번씩은 익히 들어봤던 친숙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소문을 퍼뜨린 이가 누구인지, 또 그런 소문으로
그 중국집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끔찍한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장면에 대한 식욕은 전혀 감퇴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전혀 얼토당토한 얘기는 아니다.
기록에 보면 중국사 곳곳에는 식인과 관련한 여러 사료들이 차고도 넘칠만큼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권율 장군이나 김덕룡 장군 같은 분은
왜구의 배를 갈라 생간을 씹어 드셨다는 얘기도 있고,
조난을 당한 사람들이 죽은 동료의 고기로 연명하며 구조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절박한 스토리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해외 토픽 중 하나이다.
하지만 권율 장군께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삼시 세끼 밥상에 췌장 조림이나 심장 볶음을 계속 드시지는 않았을 터이고,
생사의 기로에서 구조된 사람이 그후에도 인육맛을 잊지 못해
정기적으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일회성에 근거한 이벤트였다는 소리다.
(사진: 영화 '팔선반점 인육만두'의 한 장면)
중국은 이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를 통해 식인 문화가 전승되어 왔다.
때로는 형벌로, 때로는 복수로 또 어떤때는
굶주림에 대한 자구책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4대 성인이신 공자님도 평소에 인육으로 만든 젓갈을 즐겨 드셨는데,
자신이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 고기가 젓갈로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듣자
그 뒤부터는 인육 젓갈을 드시지 않았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삼국지의 유비도 유안이란 사람이
자신의 부인 엉덩이 살로 요리를 해주어 맛나게 먹고는 지친 몸을 추스린 적이 있다.
수호지(水滸傳)에도 사람고기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수, 당 시대에는 아예 사람고기만 전문적으로 내다파는 인육 시장이 존재했었으며,
그 폐단이 늘어나자 송나라 때에는 인육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원나라 때에도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실려있기도 하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인육은 쌀값보다 싸고 개고기의 1/5 정도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인육 시장은 청나라를 거쳐, 불과 몇십년전인 문화혁명 시대에도
존속했었는데,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중국의 식인 풍습을 거론하며 몇천년 동안이나 사람을 먹어온 자국의 역사를 한탄하고 있다.
루쉰은 '중국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오랜기간의 식인풍습으로 인해 중국 사회에서 신의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고 분개한다.
중국인들이 인의예지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덕목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중국인들이
신의를 거론하는 때는 그들이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라는 것이다.
이러한 식인 풍습은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전쟁이나 기근으로 식량이 모자라게 되면,
유괴하기 쉬운 어린이를 시작으로 타지 여행자나,
독신자 및 여성과 노인 등
주로 사회의 약자 위주로 식용할 인간의 종류와 순서가 정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왜 중화권에서 인육을 소재로 한,
그것도 어린 아이를 죽여 만두로 먹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수상까지 하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갔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한가지 끔찍한 상상 하나를 덪붙이자면,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를 전후하여 유례없이 인육이 넘쳐나서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며,
그 유민 수백만명이 중국으로 끌려 간 직후였다.
후손 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한 우리네 조상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 중의 많은 수는 중국인의 식탁에 올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음이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중국의 식인문화, 황문웅, 교문사, 1992
중국의 에로스 문화, 찐원쉐, 우석, 1998
한국인과 개고기, 안용근, 효일, 2000
1만년 동안의 화두, 이용범, 들녘, 2000
세계명작산책9, 이문열, 살림, 2003
아Q정전-광인일기, 루쉰, 혜원출판사, 1998
댓글목록 0
劉載준 67回님의 댓글
글 구성 구색 마무리 만점의 글 입니다 감사 합니다
이상동님의 댓글
에효....무셔라.....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너무 살벌해요..글이 태희님 스타일에 너무 맞지 않은 듯..ㅋ
조상규87님의 댓글
비게가 많은 저는 살떨리는 글이네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인문님!! 저런 글 딱 제 스타일이에요. ㅎㅎ 웬만큼 엽기적이지 않으면 싱거워요. ㅋㅋ 상규님..ㅎㅎ
한상철님의 댓글
음 할말이 없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