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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작 - 부부싸움(1) - 윤용혁 님의 '부부 이야기'에 답하며
작성자 : 진우곤(74)
작성일 : 2007.01.20 12:07
조회수 : 2,285
본문
부부처럼 아름다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서로가 안정과 화합을
이루는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세상은 어찌된 것인지 이기
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흐름에 편승하여 공공연하게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
거나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겠
지만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능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거늘 어쩌자고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목청을 높이는지 모르
겠습니다.
별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최소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부부
싸움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없다고 봅니다. 때때로 건전한(?)
부부싸움 - 이를테면 사랑의 확인과 같은 -도 필요할 테지만 상호 신뢰와 존경,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짧은 인생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지......
장수의 비결은 좀 아쉽다 할 때 수저를 놓는 것에 있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부부싸움(1)
진 우 곤
어둑어둑해질 무렵, 인근의 천변에 나가 바람을 쐴 양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갈 때였다. 한 아주머니가 악에 바쳐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
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녀는 중키의 한 사내를 삿대질까지 해대며 사정없이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광경에 나처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하
지만 그 아주머니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옆에서는 여러 명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데도 말이다.
“몇 번이고 전화를 했는데 뭣 땜에 휴대폰을 꺼놓고 안 받았어?”
“당신, 그 시간 동안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어?”
“왜 나한테 전화하지 않은 거냐고?”
“어서, 말해 봐. 뭘 하고 있었느냐고?”
행색을 보니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부부로 짐작이 갔다. 사내는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녀의 집요한 추궁에 한마디 변명조차 제대로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죄인 취급을 당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이 거북살스러운지 계속 얼굴
을 떨군 채 묵묵부답이었다.
“아이고, 답답해. 어서 말 좀 해보라니까.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휴대폰은
왜 꺼놓았어? 왜, 말 못해, 뭐 켕기는 게 있지?”
사내의 일관된 태도에 그녀는 더욱 격분하여 급기야 낯이 뜨거울 정도로 듣기
거북한 욕설까지 쏟아내며 멱살까지 잡으려 들었다. 결국 사내는 더 이상 창피
해서 못 견디겠는지 내가 가려는 천변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
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욕설을 섞어가며, 계집년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지랄방정을 떤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뒤에서 어딜 가느냐고 고함을 치며 몇
발짝 따라오던 그의 아내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이제부터 집 구석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더니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었다.
그 이후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흡사 법정에서 싸우듯 공개적
으로 부부싸움으로 끌고 간 것은 좀 심했지 않나 싶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버젓이 욕설까지 섞어가며 말이다. 좀더 지혜로웠다면
어디 한적한 곳을 택하던가 혹은 다른 적절한 방법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 사내가 자신의 아내에게 무슨 의심 받을 만한 짓을 하다 들통이
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까짓 휴대폰을 장시간 꺼놓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임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만일 떳떳하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지만 말고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보자고 맞받아
쳤을 것이 아닌가.
문득 올해 추석 마지막 날에 접했던 광경도 떠오른다. 식구들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물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한 40대 부부가 중학
교 3학년이나 됨직한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더니 우리가 앉은 바로 건너편 테
이블에 앉았다.
부인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음식을 시키자마자 대뜸, 당신이 뭐 떵떵
거리고 사는 재벌이라도 되느냐, 왜 쓸데없는 일에 돈을 퍽퍽 써대느냐고 자신
과 마주보고 앉은 남편에게 앙앙거렸다. 굳이 당신이 돈을 쓰지 않아도 될 일
인데 뭐 중뿔나게 나섰느냐 등등 연신 타박을 안기는 게 아닌가. 부부간에 뭔
가 맺히고 뒤엉킨 일이 있는 모양 같았다.
그녀의 남편에게선 어떤 대거리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구거나 이따금 멋
쩍게 천정에 시선을 둘 뿐이었다. 이에 부인은 더욱 약이 오르고 화가 치미는
지 제집 안방에서 하듯 계속 큰소리로 남편을 닦아세웠다. 흡사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소크라테스를 향해 욕설과 함께 구정물을 끼얹는
그의 아내 즉, 역사상 유래 없는 악처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는 ‘크산티페’
(과연 그녀가 악처인지 여부는 자세히 규명해볼 일이지만)를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엔간하면 그만해 두기를 바라는 뜻으로 그들 테이블 쪽으로
서너 차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런 눈치 따위는 상관이 없는지 그녀의 드
센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냥 남편에게 향한 고추 먹는 소리를
질기게 해댔다. 다른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하
지만 그것뿐이었다. 누가 선뜻 나서서 그만하라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어떤 곤욕을 치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있자, 부인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벌레를 씹은 것 같은 떨
떠름함이 얼굴에 역력히 어른거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간 측은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미주알고주알 캐고 들며 많
은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팍팍 깎아 내리는 아내의 고약한 말버릇과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진저리가 났을 테고, 게다가 심상치 않은 주변의 공기에
자신의 앉은 자리가 마치 바늘방석 같아 숨이 막히기도 했을 게다. 이에 차라
리 자리를 비우는 게 상책이라고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음식이 나온 후에도 그녀는 종업원을
서너 차례 오라, 가라 하며 김치 맛이 짜다, 국물의 간이 안 맞는다, 3인분을
시켰는데 반찬을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주느냐는 둥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종업원들은 그들이 나갈 때까지 엄한 상전을 모시
듯 연신 굽실거리며 쩔쩔매다시피 했다.
밖에 나간 그녀의 남편은 오래도록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어린 아들을 상대로 계속 남편의 흉을 보고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말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그의 아들. 이런 정도라면 평소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는 여인이 아닌가 하고
헤아려졌다.
결국 두 모자는 남편의 몫까지 싹싹 비우고는 어디엔가 휴대폰으로 전화
를 거는가 싶더니 밖으로 부리나케 나갔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에게 연락이
닿은 것 같았다. 실내는 한바탕 소나기가 쏴 하고 훑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종업원이나 손님들도 숨통이 트이고 한시름 놓이는 듯
한 표정들을 지었다.
어찌 사람 사는 모습이 저리도 야박하고 매몰찬가. 먹는 데는 개도 건드리
지 않는다고 했다.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으면 조용히 먹을 것이지 눈치 코
치도 없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안하무인 격의 무례를 범할 수 있는가. 자
신의 남편은 시장기를 메우지 못한 채 밖에서 속이 상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서도 제 먹을 것을 싹싹 비우고 나가는 저 오만한 모습. 한마디로 말
해서 군던지러운 여인의 한 다면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가 이것저것 내뱉은 말을 종합해보건대 대충 이런 정도가 아
닐까 싶다. 즉, 추석이라 시댁에 갔을 때 돈을 내는 일에 남편이 상의도 없
이 다른 형제들 앞에서 호기를 부린답시고 선뜻 거금을 내놓는 선심을 쓴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것을 여인이 고깝게 여기고 있다가 시댁을 떠나자마
자 오징어를 씹듯 운전하는 남편을 향하여 내내 쫑알거리며 불만을 털어놓
았거나 화풀이를 해댔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도 모자라 그 불쾌한 감정을 음식점에까지 끌고 들어와서 귀거친 소리
를 함부로 해대며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게 뭐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했듯이 음식점이 어디 제 안방이라도
된단 말인가. 당사자들끼리 조용한 데 가서 능히 해결해도 될 일을 가지고
말이다. 해도 너무한 연인의 처사에 입맛이 사뭇 썼다.
나는 흡사 비싼 값을 치르고 점심을 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음식점을 나왔
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대뜸 아까의 모습이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아내도 그
여자의 가정 교육이 의심스럽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에 나는, 정말이지 얼마
나 추하던가, 당신도 이번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아내는 눈을 살짝 흘기며, 나에겐 오로지 당신밖에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하고 팔짱을 껴왔다.
문득 결혼식 때 주례사로부터 들었던 백년가약이나 백년해로라는 말이 새
삼스럽게 가슴을 울린다. 진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보자는 의욕이
더욱 되살아난다. 부부란 무엇인가. 잘났든 못났든 서로 짝을 이루었다면
오순도순 사는 게 근본이다. 물론 살다 보면 지지고 볶으며 사생결단을 내자
는 듯이 싸우는 일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아침의 미운 감정을 저녁까지 끌
고 가지 말라고 했듯이 싸우더라도 좀 슬기롭고 지혜롭게 싸우는 방법을 모색
하는 것이 훨씬 더 품위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사는가. 고작해야 100년 안짝이다. 만일 부부로서 인연
을 맺어 함께 한날 한시에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백년해로한다면 부부로
서의 인연은 70 ~ 80년 남짓 된다. 물론 지금의 세상은 결혼적령기가 사뭇
늦추어지거나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따라서
부부의 인연이란 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에 있다 아니할 수 없다.
퇴근 길, 어느 집 앞을 지날 때였다. 부부간에 고성이 오고 가길래 잠시 걸
음을 멈추고 듣자니 귀에 영 거슬리는 욕설이 난무하는 게 아닌가. 여인이
악을 쓰며 엉엉 우는 소리까지도 들려왔다. 나는 제발 그것이 당사자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며 쉬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 자리를 떠
났다.
바로 그때 출근하는 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며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
어주던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리석고 못난 남편인 나를 믿고
의지하며 이제껏 부지런히 살아온 아내다.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은 현관문
을 열고 들어서며 그에게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낼까. 이런 저런 말을 떠올리
다 나도 모르게 풀썩 웃음이 나왔다. 새삼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을
굳이 생각하는 내가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상시대로 별일 없었느냐
고 물으면 그만인 것을. 부부 사이에 애써 꾸미려 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
여주는 게 오히려 더 편한 게 아닐까.
(2006년 10월)
이루는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세상은 어찌된 것인지 이기
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흐름에 편승하여 공공연하게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
거나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겠
지만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능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거늘 어쩌자고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목청을 높이는지 모르
겠습니다.
별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최소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부부
싸움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없다고 봅니다. 때때로 건전한(?)
부부싸움 - 이를테면 사랑의 확인과 같은 -도 필요할 테지만 상호 신뢰와 존경,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짧은 인생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지......
장수의 비결은 좀 아쉽다 할 때 수저를 놓는 것에 있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부부싸움(1)
진 우 곤
어둑어둑해질 무렵, 인근의 천변에 나가 바람을 쐴 양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갈 때였다. 한 아주머니가 악에 바쳐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
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녀는 중키의 한 사내를 삿대질까지 해대며 사정없이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광경에 나처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하
지만 그 아주머니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옆에서는 여러 명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데도 말이다.
“몇 번이고 전화를 했는데 뭣 땜에 휴대폰을 꺼놓고 안 받았어?”
“당신, 그 시간 동안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어?”
“왜 나한테 전화하지 않은 거냐고?”
“어서, 말해 봐. 뭘 하고 있었느냐고?”
행색을 보니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부부로 짐작이 갔다. 사내는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녀의 집요한 추궁에 한마디 변명조차 제대로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죄인 취급을 당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이 거북살스러운지 계속 얼굴
을 떨군 채 묵묵부답이었다.
“아이고, 답답해. 어서 말 좀 해보라니까.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휴대폰은
왜 꺼놓았어? 왜, 말 못해, 뭐 켕기는 게 있지?”
사내의 일관된 태도에 그녀는 더욱 격분하여 급기야 낯이 뜨거울 정도로 듣기
거북한 욕설까지 쏟아내며 멱살까지 잡으려 들었다. 결국 사내는 더 이상 창피
해서 못 견디겠는지 내가 가려는 천변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
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욕설을 섞어가며, 계집년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지랄방정을 떤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뒤에서 어딜 가느냐고 고함을 치며 몇
발짝 따라오던 그의 아내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이제부터 집 구석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더니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었다.
그 이후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흡사 법정에서 싸우듯 공개적
으로 부부싸움으로 끌고 간 것은 좀 심했지 않나 싶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버젓이 욕설까지 섞어가며 말이다. 좀더 지혜로웠다면
어디 한적한 곳을 택하던가 혹은 다른 적절한 방법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 사내가 자신의 아내에게 무슨 의심 받을 만한 짓을 하다 들통이
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까짓 휴대폰을 장시간 꺼놓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임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만일 떳떳하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지만 말고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보자고 맞받아
쳤을 것이 아닌가.
문득 올해 추석 마지막 날에 접했던 광경도 떠오른다. 식구들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물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한 40대 부부가 중학
교 3학년이나 됨직한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더니 우리가 앉은 바로 건너편 테
이블에 앉았다.
부인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음식을 시키자마자 대뜸, 당신이 뭐 떵떵
거리고 사는 재벌이라도 되느냐, 왜 쓸데없는 일에 돈을 퍽퍽 써대느냐고 자신
과 마주보고 앉은 남편에게 앙앙거렸다. 굳이 당신이 돈을 쓰지 않아도 될 일
인데 뭐 중뿔나게 나섰느냐 등등 연신 타박을 안기는 게 아닌가. 부부간에 뭔
가 맺히고 뒤엉킨 일이 있는 모양 같았다.
그녀의 남편에게선 어떤 대거리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구거나 이따금 멋
쩍게 천정에 시선을 둘 뿐이었다. 이에 부인은 더욱 약이 오르고 화가 치미는
지 제집 안방에서 하듯 계속 큰소리로 남편을 닦아세웠다. 흡사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소크라테스를 향해 욕설과 함께 구정물을 끼얹는
그의 아내 즉, 역사상 유래 없는 악처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는 ‘크산티페’
(과연 그녀가 악처인지 여부는 자세히 규명해볼 일이지만)를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엔간하면 그만해 두기를 바라는 뜻으로 그들 테이블 쪽으로
서너 차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런 눈치 따위는 상관이 없는지 그녀의 드
센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냥 남편에게 향한 고추 먹는 소리를
질기게 해댔다. 다른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하
지만 그것뿐이었다. 누가 선뜻 나서서 그만하라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어떤 곤욕을 치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있자, 부인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벌레를 씹은 것 같은 떨
떠름함이 얼굴에 역력히 어른거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간 측은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미주알고주알 캐고 들며 많
은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팍팍 깎아 내리는 아내의 고약한 말버릇과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진저리가 났을 테고, 게다가 심상치 않은 주변의 공기에
자신의 앉은 자리가 마치 바늘방석 같아 숨이 막히기도 했을 게다. 이에 차라
리 자리를 비우는 게 상책이라고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음식이 나온 후에도 그녀는 종업원을
서너 차례 오라, 가라 하며 김치 맛이 짜다, 국물의 간이 안 맞는다, 3인분을
시켰는데 반찬을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주느냐는 둥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종업원들은 그들이 나갈 때까지 엄한 상전을 모시
듯 연신 굽실거리며 쩔쩔매다시피 했다.
밖에 나간 그녀의 남편은 오래도록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어린 아들을 상대로 계속 남편의 흉을 보고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말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그의 아들. 이런 정도라면 평소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는 여인이 아닌가 하고
헤아려졌다.
결국 두 모자는 남편의 몫까지 싹싹 비우고는 어디엔가 휴대폰으로 전화
를 거는가 싶더니 밖으로 부리나케 나갔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에게 연락이
닿은 것 같았다. 실내는 한바탕 소나기가 쏴 하고 훑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종업원이나 손님들도 숨통이 트이고 한시름 놓이는 듯
한 표정들을 지었다.
어찌 사람 사는 모습이 저리도 야박하고 매몰찬가. 먹는 데는 개도 건드리
지 않는다고 했다.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으면 조용히 먹을 것이지 눈치 코
치도 없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안하무인 격의 무례를 범할 수 있는가. 자
신의 남편은 시장기를 메우지 못한 채 밖에서 속이 상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서도 제 먹을 것을 싹싹 비우고 나가는 저 오만한 모습. 한마디로 말
해서 군던지러운 여인의 한 다면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가 이것저것 내뱉은 말을 종합해보건대 대충 이런 정도가 아
닐까 싶다. 즉, 추석이라 시댁에 갔을 때 돈을 내는 일에 남편이 상의도 없
이 다른 형제들 앞에서 호기를 부린답시고 선뜻 거금을 내놓는 선심을 쓴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것을 여인이 고깝게 여기고 있다가 시댁을 떠나자마
자 오징어를 씹듯 운전하는 남편을 향하여 내내 쫑알거리며 불만을 털어놓
았거나 화풀이를 해댔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것도 모자라 그 불쾌한 감정을 음식점에까지 끌고 들어와서 귀거친 소리
를 함부로 해대며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게 뭐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했듯이 음식점이 어디 제 안방이라도
된단 말인가. 당사자들끼리 조용한 데 가서 능히 해결해도 될 일을 가지고
말이다. 해도 너무한 연인의 처사에 입맛이 사뭇 썼다.
나는 흡사 비싼 값을 치르고 점심을 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음식점을 나왔
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대뜸 아까의 모습이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아내도 그
여자의 가정 교육이 의심스럽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에 나는, 정말이지 얼마
나 추하던가, 당신도 이번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아내는 눈을 살짝 흘기며, 나에겐 오로지 당신밖에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하고 팔짱을 껴왔다.
문득 결혼식 때 주례사로부터 들었던 백년가약이나 백년해로라는 말이 새
삼스럽게 가슴을 울린다. 진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보자는 의욕이
더욱 되살아난다. 부부란 무엇인가. 잘났든 못났든 서로 짝을 이루었다면
오순도순 사는 게 근본이다. 물론 살다 보면 지지고 볶으며 사생결단을 내자
는 듯이 싸우는 일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아침의 미운 감정을 저녁까지 끌
고 가지 말라고 했듯이 싸우더라도 좀 슬기롭고 지혜롭게 싸우는 방법을 모색
하는 것이 훨씬 더 품위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사는가. 고작해야 100년 안짝이다. 만일 부부로서 인연
을 맺어 함께 한날 한시에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백년해로한다면 부부로
서의 인연은 70 ~ 80년 남짓 된다. 물론 지금의 세상은 결혼적령기가 사뭇
늦추어지거나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따라서
부부의 인연이란 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에 있다 아니할 수 없다.
퇴근 길, 어느 집 앞을 지날 때였다. 부부간에 고성이 오고 가길래 잠시 걸
음을 멈추고 듣자니 귀에 영 거슬리는 욕설이 난무하는 게 아닌가. 여인이
악을 쓰며 엉엉 우는 소리까지도 들려왔다. 나는 제발 그것이 당사자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며 쉬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 자리를 떠
났다.
바로 그때 출근하는 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며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
어주던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리석고 못난 남편인 나를 믿고
의지하며 이제껏 부지런히 살아온 아내다.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은 현관문
을 열고 들어서며 그에게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낼까. 이런 저런 말을 떠올리
다 나도 모르게 풀썩 웃음이 나왔다. 새삼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을
굳이 생각하는 내가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상시대로 별일 없었느냐
고 물으면 그만인 것을. 부부 사이에 애써 꾸미려 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
여주는 게 오히려 더 편한 게 아닐까.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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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수님의 댓글
남들 앞에서 악다구리 쓰면 싸우는 부부들을 보면 우리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곤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 동문님들은 그런분 안계시겠죠?
윤용혁님의 댓글
꾸밀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코자 합니다.
싸움보다는 관심과 배려로 동행이 되렵니다.
진 선배님 글에 마음을 뺏기며 늘 건필하세요.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server.hyosung.daegu.kr/cgi-bin/board/yungwhan/upfile/don_bennechi_-_Message_of_love.mp3" loop=-1 width=70 height=25>...Don Bennechi / Message of love<br>
아내가 공격해 올땐 이 가수처럼 느끼하고 섹쉬하게 사랑노래 몇소절 불러 보세요.ㅋㅋㅋ<BR>
李聖鉉님의 댓글
엉터리 작가(?)==여기서 태동철선배님,이원규선배님 ,윤용혁 동문 등 제외입니다.--등단작가신데 큰일날뻔......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엉터리 작가(?)제외 추가==>김태희(101),李聖鉉(70회) 劉載峻 (67回) 以上 3명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언더그라운드==>신h섭/이환s/z재학..오버그라운드==>오윤j/윤i문/지m구/이상d/i동열...
이환성(70)회)님의 댓글
smc 오버그라운드추가..응급실을 자주 간다기에 안스럽네..꼴이 보약인데..
최병수님의 댓글
눈들이 밝으시네요...내 컴엔 원문이 눈꼽만큼 적게 보이네요..눈수술을 또 해야 하남요..시력[교정]좌:1.2, 우:1.5인데...ㅋㅋㅋ...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항상 글자 font가 작더군요 원문 준비 후 이 homepage로 옮겨서 paste할때 작아지는 경우 입니다
오윤제님의 댓글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지겠지요. 아이들 싸우면서 크듯이 그사람들 싸우면서 사랑하는게지요. 그 생명 다할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