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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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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시나요?
약국 앞을 꼬마 소녀가 지나가면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가방을 어깨에 가로 멘 모습이 귀여워 손짓하여 불러 비타민 C 두 알을 건넸습니다. 그 모습에서 옛날 책을 보자기에 싸 남자들은 어깨에 메고 여자들은 곤쟁이 장사라고 허리에다 두르고 출렁이며 학교 늦을까봐 뛰어 가던 친구들이 연상되어 가슴이 뭉클거립니다. 그 애 책가방은 최신형이었습니다.
당시 보자기 책가방과 도시락으로 싸준 반찬 국물이 만나 책이 부풀어 두께가 두꺼워진 사연은 다 아시겠지요?
봄볕이 따스해지면 도시락 아니 그땐 변토라고 불린 두꺼운 그걸 들고 학교 뒤편 산소 갓에서 짓궂은 친구의 "테구시리 " 하며 무당의 우스꽝스런 몸짓과 함께 밥 한 숟가락을 산소 봉분에 올리고 반찬은 김치 또는 고추장 또는 새우젓 혹은 억 김치 무침 하나라도 있으면 무지 맛있었지요.
모내기 할쯤 논두렁 삘기 순 빼먹기 , 진강산 덕정산 자락으로 버찌 따 먹는다고 빈 주전자 들고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오기가 부끄러워 몇 개 안 되는 버찌를 먹지도 못하고 입술에 시퍼렇게 발라 마치 많이 따먹은 양 친구들에게 으스대던 그 일을 이제와 고백합니다.
여름 방학 숙제에 빠지지 않는 곤충채집, 식물채집 , 일기쓰기는 왜 그리 부담스러운지요. 방학 내내 펀펀히 놀다가 일기를 몰아 쓰려니 제일 고민스러운 문제가 그날의 날씨랍니다. 일기내용은 대부분 이렇게 썼지요.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를 닦고 밥 먹었다 . 12시에 점심 먹고 놀다 저녁 먹고 잤다 "를 반복해서 썼다가 아버지한테 무슨 일기가 그러냐고 되게 혼났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시라면 그날의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정해 놓고 써라 일러주지 않으시고 무조건 혼만 내는 것이 못내 아쉽고 미웠습니다.
여름날 뒷밭 오이는 쑥쑥 자라 그중 한 개를 따 동생이랑 나눌 때 오이 꼭지 부분을 윗부분보다 크게 잘라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이지요. 이겨도 어느 부분을 먹을까 고민 많이 했지요. 꼭지 부분은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는 무척 쓰니까요.
여름밤 떼 숨길락 한다고 달리기에 약한 여자애들을 미리 나무 동이로 지질러 숨겨 놓고 “찾으러간다!” 큰소리 외치고 우린 그냥 집으로 들어가 버려 한참이나 숨 막히는 나무동이 밑에서 땀을 빼며 노심초사 들킬까봐 나오지도 못한 여자애들의 다음날 강력한 항의에 많이 미안해했지요.
학교 가는 길에 무성히 자란 풀을 군데군데 매어 놓고 달려오던 애들 넘어지면 좋아 하던 일과, 옆집 아저씨 저희 집에 와서 일하실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막걸리 한 되를 주전자에 사오다가 홀짝 홀짝 마시다보니 양이 많이 줄어들어 혼날까봐 개울물 채워다 드린 것을 이제와 용서를 구하렵니다.
개울물 돌로 물막이하고 멱 감던 여자애들 옷을 감춰 다음날 선생님한테 불려가 야단맞던 일, 60년대 군사 정권시절 보건소 누나들이 나와 주사기 한대로 수십 명씩 콜레라 장티푸스 전염병 예방 주사를 놔줄 때 가급적 늦게 맞으려고 애쓰며 아프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고 단체로 선생님 앞에서 회충약을 물주전자 앞에 갖다 놓고 한 움큼씩 먹던 그때가 있었습니다. 먹고 나면 하늘이 왜 노래지는지요. 가장 하기 싫은 채변 봉투와 쥐꼬리 잘라 가져가기가 아주 부담스러웠지요. 가끔 친구 것을 사정해 빌리기도 했답니다.
전염병 예방을 한다고 주사기 하나로 여럿이 맞다 보니 혹시 우리나라에 간염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아닌지 나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할 때 출발 전 왜 그리 화장실이 자주 가고 싶고 차렷하는 구령소리와 함께 딱총소리는 얼마나 요란스러운지요.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문제의 고무줄 검정 팬티를 입고 뒤도 안돌아 보고 달려 나가 입상하여 부상으로 받은 공책 몇 권을 응원오신 어머니에게 갖다드리면 동네 아주머니들 부러워하시며 "아주머니 좋겠시다! 애들이 어쩜 달리기를 잘할꺄? " 우리 애 새끼들은 공책구경 한번 못했시다 "하셨습니다.
그 시절 가을 운동회는 동네 축제였지요. 막걸리 술에 취해 흥겨우신 동네 할아버지들이 운동장 한 가운데로 나가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잡고 막춤을 추시던 모습이 새삼 그립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저학년들의 오재미로 바구니 터뜨리기는 무척 신이 났지요. 청군 백군으로 나눠 올라가는 종합 성적이 운동장 한편 커다란 칠판에 크게 쓰여 질 때마다 무척 궁금해 했지요.
한 달에 한번 치루는 일제고사 성적에 따라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나와 공부 안 해도 그저 들판에 나가 소에 배불리 풀만 잘 먹이면 되고 저녁에 한가로이 소잔등에 올라타고 들어오는 친구가 무척 부러워 어느 날 되새김질 하며 앉아있는 소잔등에 올라탔다가 소가 놀래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거꾸로 떨어져 소똥에 얼굴을 처박혀 황당했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소풍 때 그 누구하나 담임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해온 학생이 없어 밥을 선생님과 나눠도 문제 될일 없는 반장과 선생님 자녀들을 불러 모아서 내 도시락을 열었더니 김밥은커녕 그냥 밥에 찐 망둥이 두 마리가 달랑 나와 선생님이 허탈해 하시던 모습이 더없이 민망하였습니다.
겨울에 난로 피울 때 왜 그리 곰을 잡는지요. 조개탄 화력은 대단 했지요. 3교시쯤 도시락을 층층이 올려놓으면 맨 밑에 도시락은 타들어가 김치 찐 냄새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고 잔치 때 감춰 놓은 때 묻은 골무떡을 연통에 찌익 눌러 먹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걸 잽싸게 가로채 먹는 친구도 있었지요. 누가 씹다가 책상에 붙여 논 껌을 얼마나 먹고 싶기에 몰래 떼어 내어 새것인양 질겅질겅 씹어본 적이 있답니다. 지금 애들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지금 소프트볼의 변형인 찐뽕 놀이, 당시 유명한 김일 역도산 프로 레슬링 흉내 낸다고 풀밭에서의 고생잡기, 야밤에 랜턴으로 초가지붕 속의 새잡는다고 남의 집 돌담벼락 허물어 버리고 도망친 일, 남들이 멀쩡한 길을 놔두고 지름길인 우리 밭고랑으로 다니는 것이 싫어 땅을 파 인분 묻고 살짝 덮어 사람들 골려 준일, 형에게서 배운 개구리 잡아 기절 시켜 화형식 한다고 십자가모형에 매달고 엉덩이에 성냥 꽂아 불 붙이 던일, 새끼로 꼰 축구공놀이 ,비석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진돌이, 쥐불놀이, 사랑방에서 뻥치기, 군불에 나일론 양말 구워먹어 어머니에게 혼난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십년이 되어 온다니 세월이 유수와 같군요. 아 ! 그리운 옛날이여 ! 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옛날로 한번 돌아가지 않을래요? |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신변잡기방을===>신명(철:74)잡기방으로 해얄듯..여린시절 쓸거리 추억 많으신 용혁님 부러워요..난 추억이없네...city출신이라..ㅋ
장재학님의 댓글
요즘 젊은 직원들은 도시락을 몰라요...ㅡㅡ,
윤인문님의 댓글
그 추억의 찐뽕, 비석치기,자치기,딱지치기 등등 하루가 가는줄 모르고 놀던시절..저도 그립습니다. 지금 얘들은 이런 놀이문화를 이해못할겨..그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해있으니..그것이 바다이야기로 이어진 건 아닐까..용혁후배 그시절을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소.
안남헌(82회)님의 댓글
친구의 보자기책가방이 부러워서 한번 하고 갔다가 하교길에 풀어져서 애먹은적 있습니다. ㅎㅎ
한상철님의 댓글
혹 선배님 사람이 그리운건 아닌지요 그때 그놀이 문화보다...
유재준 67회님의 댓글
소재가 다양한 필자가 매우 지극히 부럽습니다 환경에 따라 소유케 되는 글 소재라 생각 되는 바 이환성 아우님의 습작 소재 또한 버금간다 하겠습니다 용혁님=>직유법, 환성님=>은유법 장르라 구별 할 수는 없으나 두 분이 거두 이심은 명명백백 합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지민구님의 댓글
골목길이 흙에서 시멘트, 아스팔트로 바뀌면서 망까기, 빠이, 자치기 등 많은 놀이문화가 없어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