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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바위...그 때...그 시절(작년 인고교지 미추홀에 게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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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바위... 그 때...그 시절...
우리 인천고 74회, 올해로 졸업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고 동문 어느 기수보다도 특출한 인물도 많고 똘똘 뭉친다는 평을 자주 듣곤 한다.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 유난히 우리 동창들은 불운을 많이 겪었던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첫 번째의 불운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달렸던 시험지옥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입학할 때 입학시험,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우리부터 시작된 동일계열 고교 진학(인천고 73회 선배까지는 상인천중에서 인천고로 바로 진학 할 수 있었다)이 아닌 자유경쟁 시험, 그리고 정작 어렵사리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인천고에 입학하고 나니 또다시 대입 예비고사와 대학본고사 준비로 우리는 친구들과 꿈과 인생을 논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입시지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의 입시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다져진 정신적 고초가 지금까지 버티어온 나이 50 인생의 밑거름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보내고 사회 각 계층에서 자리를 잡아갈 즈음 IMF로 시름을 앓았던 우리 인천고 74회 동창들...그래도 모이기만 하면 재미있던 학창시절을 그리며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우리 동기들이 인천고에 입학한 해는 지난 72년. 배다리(중구 율목동)에 있는 현재의 인천정보산업고 자리에서 석바위로 이사 한 바로 다음 해였다. 지금은 학교주변에 번듯한 아스팔트와 많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그때는 허허벌판에 학교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황량한 환경이었다. 학교앞에서 석바위사거리까지는 온통 진흙탕길이어서 비만 오면 장화를 신고 다닐 형편이었고, 겨울에는 쌩쌩부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등하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에게 피곤함을 더 안겨주었던 것은 통학할 때 메워 터질 듯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던 만원버스이었다. 지금도 버스안내양의 ‘오라이∼탕탕’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도는 듯 하다.
지금도 동창생들이 만나기만 하면 빼놓지 않는 단골메뉴가 야간 자율학습때 학교근처 포도밭 서리를 하다 들켜 혼났던 이야기하며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그때는 학교 근처에 포도,배 밭이 널려 있어 친구들과 저녁 디저트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슬그머니 학교 담을 넘곤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박박머리 고등학교 친구들...올 가을에 있을 졸업 30주년 행사에 고등학교 재학 당시 가르침을 주셨던 모든 은사님을 초청하여 행사 치를 준비를 하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재학 당시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았다. 내가 교직을 선택한 이유도 그 선생님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80년도 인천기계공고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연수원 연구사, 시교육청 장학사,인천기계공고 교감, 현재 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관에 이르기 까지 한결같이 충고와 격려로 이끌어 주셨다. 나뿐만아니라 인고 74회 모든 제자에게 애정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셔서 사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국내경기를 총괄하는 경기운영본부장(Tournament Director)을 지낸 대한축구협회 가삼현 국제 국장, '갯벌은 살아있다' '황사'라는 작품으로 2번 방송대상을 수상한 MBC 명 PD 장덕수, 인천에서 2003 코리아 오픈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개최한 인천배드민턴 협회장 한범진, 2001 인천상공대상을 수상한 승일제관(주) 현창수 대표이사 등이 있으며, 해외에서도 미국LA 총영사 구본충, UCRIVERSIDE대학 인류학 교수 장태한, LA의 현대병투병연구소장 백상진 등 많은 동기들이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무척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동안 우리 인고 74회 동창회는 모교의 발전과 동문간의 친목도모, 장학사업 등을 통하여 다른 기수보다도 단단한 결속력과 동문의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들의 결속력이 다져지는건, 아마도 학창시절그때 그리움이 가슴에 더욱 사무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댓글목록 0
윤인문님의 댓글
우측 옆 마진이 안맞어 짤리는 것 빨리 해결 좀 해봐요...정말 짜증나네요..이리 저리 해봐도 잘 안됩니다. 편집기 상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상동님의 댓글
구럼 도로포장 하는디 도당췌 몇년이 걸린거예요....저두 시뻘건 황토흙 밝고 댕였거든요...ㅋㅋㅋㅋ
이동열님의 댓글
이젠 안짤리구 나오네여^^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졸업 30주년 행사===> 인사동과 함께하면 대박 예감...그중심엔 언제나 性님...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제 아무리 구슬이 많어도 꿔메야 보배...
이종인님의 댓글
배다리에서 6년을 배웠는데 이제는 나무 몇그루만 알아 볼 수 있더군요
장재학님의 댓글
선배님 시리즈로 가셔요...^^
윤용혁님의 댓글
선배님 제가 일학년 때 삼학년 이셨죠? 비오는 등교길 진흙뻘은 늘 바지 아랫단을 괴롭혓지요. 일학년 하룻강아지들 형님들 봄날 1층 교실밖 양지의 햇살을 즐기실 때 버릇없이 친구들과 주전자로 4층에서 물 부은것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고백합니다.
그 때 범인들은 다 도망가고 애꿎은 친구하나 걸려 혼났지요.죄송해요.
윤인문님의 댓글
成님!!! 이 글은 작년에 쓴 것이라 졸업 30주년 행사===> 인사동과 함께하면 대박 예감..물건너 갔시유..74회 졸업 30주년 행사는 작년 11월 영종도에있는 인천연수원(구 새마을 연수원)에서 1박2일로 치뤘답니다. 동기 114명, 외이프 동반,은사 18명, 다른 기수 선후배 등 200여명이 함께 했지유..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공소시효===>소멸시효 ㅋㅋ 작년에 쓴것도
윤인문님의 댓글
9/1 시교육청으로 가기전까지 마무리해야할 것도 많고 인수인계 등으로 바쁘다보니 교단일기 시리즈는 잠시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는 중간에 맛뵈기로 작년에 쓴걸 좀 올려봤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교단일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