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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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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이야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진강산 넘어 있어 우회하여 세 고개를
거쳐야 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막은 대미고 둘째가 노랑 새
세 번째가 하오고개였다.
학교에 가려면 십리 길을 걸어 매일 친구들과 그 곳을 지나야만
했다.
중학교 삼학년 시절 방과 후 축구연습이 늦어 혼자 밤에
세 고개를 넘는 일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막은 대미 고개에는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었고 하오고개에는
얼마 전 짐을 실고 내려가던 소가 꾀를 부리고 버티자 한
아저씨가 수레를 미련하게도 끌고 내려가다 바퀴에 치어
즉사하여 혈흔 등 흔적이 남아 있는 평소에도 험지였다.
친구들과 등교 길에 사고현장을 매일 짓궂게 자세히 살펴 본
것이 아주 후회되었다.
혼자 노래를 고래고래 지르며 넘다보면 막은 대미 고개가
나타났다. 여기서 갈등은 또 시작되니 지름길로 가면
내가 사는 산골 마을이 바로 나타나서 좋긴 한데 그러면
음산한 공동묘지를 헤집고 다니는 여우와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진땀을 흘려야 했고 아니면 좀 더 멀더라도 우회하여
신작로 길을 택하느냐이다.
뒤도 안돌아 보고 뛰면 귀신이 더 빨리 쫒아와 뒷덜미를
낚아 챌 것 같았다.
노래 소리는 더욱 커지고 어느새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불빛이 보여 안도에 한 숨을 내 쉬곤 하였다.
특히 형이 여름방학이면 인천에서 내려와 들려주던 산삼을
캔 아저씨가 밤이면 귀신이 나타나 “내 다리 내 놔라 내 다리
내놔라!”하며 갑자기 천장에서 넓적다리가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늘 머릿속에 남아 밤길을 더욱 괴롭혔다.
수차골 아카시아 덤불이 무성한곳에 폐허가 된 기와집이
있었는데 밤이면 그 집에서 여인네들의 설거지 하는 소리,
싸우거나 우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낮에 가보면 문마다 판자로 못질되어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전혀 없는 흉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동네에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 아저씨가
밀거적에 앉아 있다가 막걸리 한말로 담력내기를 하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밤 우리는 담장 밖에서 숨죽여
기다리고 그 아저씨 호기를 부리며 큰소리치며 그 집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앞마당에 웅크리고 앉았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대문이 쾅하고 닫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도 놀랬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아저씨 너무 놀라 한길의
담장을 허둥지둥 뛰어 넘어 집으로 내달렸다.
우리도 덩달아 달렸다. 그 분이 무언가를 보긴 보았나 보다.
한 삼일 몸살을 앓고 일어난 아저씨 하시는 말씀이 자기 앞에 까만
물체가 휙 나타나 길을 가로막더란다.
말할 수 없는 힘에 눌려 술이고 뭐고 죽기 살기로 내달렸다 한다.
육이오 전란 중에 바닥빨갱이에게 무참히 살해된 그 집
주인을 아들들이 수습하여 집 뒤뜰 아카시아 덤불에 매장을
하였는데 나중에 그 집안사람들이 묘를 이장하려 파 보니 시신은
썩지 않은 채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아카시아 뿌리가 칭칭 감고
있었다한다.
그래서 그 집안의 자손들이 망해 흉가가 되었다고 말들이 많았다.
풍수지리를 전적으로 믿지 않지만 명당은 아니더라도 동네 수차골
냉수가 흐르는 냉혈 터에 그리고 아카시아덤불에 묘를 쓴 것이
화근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무더운 여름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황순원님의 글 같네요...더위가 쏵~
최병수(69回)님의 댓글
낮에도 쓰왁~인데.. 밤엔 기절하겠네...`혁의 이야기` 잼 있네요.
윤인문님의 댓글
여름은 다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누나 싶은데 웬 "전설의 고향" 막바지 늦더위.. 용혁후배의 납량물이 더위를 한층 식혀주네요 ..ㅎㅎ
차안수님의 댓글
읽는동안 등골이 오싹하였습니다.
장재학님의 댓글
무서워요,..... ...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