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3일째...우리는 영국 런던의 이틀 여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우리가 첫날 도착했던 히드로공항에서 체코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 3시간만에 프라하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국내 드라마와 CF로 많이 알려진 곳이라 기대가 컸다.
보헤미아의
왕국 프라하, 동유럽의 파리, 북쪽의 로마라고 불리우는 이 유서깊은 도시는 ‘수백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 차창밖으로 비추어지는 도시 곳곳은 오랜 건물들로 들어서 있었다. 고건축뿐만 아니라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보여줌으로써 프라하는 가히 건축의 박물관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도시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될 정도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동유럽의 꽃과 같은 도시다. 프라하 구시가를 관광하다보면 흔히들 타임머신을 타고 4-5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세기 유럽에 왔다는 느낌을
주는 게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프라하가 아닐까. 다양한 양식의 중세 건축물과 빨간 뾰족 지붕 일색인 독특한 거리, 창문 틈새마다
꽃으로 장식된 거리 곳곳에서 악사들이 빚어내는 경쾌한 음악과 감미로운 재즈 선율, 프라하 성과 어우러진 블타바 강의 환상적인 야경과 전망 좋은
노천 카페들. 프라하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SBS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배경이 됐던 이 도시에 오면 없던 사랑도 마술처럼 생겨날 것 같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환경이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을 로맨티스트로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우리에게 “프라하의 봄”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바츨라프 광장이다.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이다. 이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같은 모습으로 길이는 750m, 폭은 60m이다. 광장 양편으로 상점, 레스토랑,
호텔이 줄지어 있는 번화하고 호화로운 쇼핑거리이다.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인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광장의 위쪽 국립 박물관 앞에서 광장의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광장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마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체코 역사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1989년 반공산주의를 외치던 민주투사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1968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구체제의 억압에 맞서 과감한 개혁정책을 표방한 두브체크 정권과 체코시민들의 자유화 운동은 분신자살한 얀 팔라흐의 죽음에서
보듯 비록 소련군의 무자비한 탱크진압으로 실패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세계인들에게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는 강렬한 것이었다. 시민혁명이
성공한 뒤, 하벨은 여기 바츨라프 광장에서 가진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어낸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혁명이다"라고 말한 데에서 비롯하여 이와 같은 무혈혁명을 벨벳혁명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그
다음 나는 학생들을 인솔하고 광장에서 멀리 않은 자동차, 건축, 디자인 계통의 체코직업학교를 찾았다. 그곳 학생들의 자유분망함과 열심히 기초에
충실한 지도를 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1시간여의 학교 방문을 마치고 프라하성을 가기 위해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를 지났다. 1357년 건설된 이 다리의 길이는 520m. 다리 난간마다 조각상이 있어 전시회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각상마다
거미줄이 많지만 그대로 둔 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1683년 순교한 성 요한 네포무크 신부의 조각상이다.
조각상 밑의 손바닥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 덕분에 그 부분은 반질반질하다. 다리 위 풍경은 더욱 낭만적이다. 다리에는
젊은 예술가들과 악사, 포옹하는 연인들로 넘쳐 난다.
우리는
카를교를 지나 10분 정도 걸어 프라하성에 도착했다. 프라하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며 최고의 명소이며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한다. 이 성은 여러 개의 건물이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 대통령 관저로
쓰이는 구왕궁과 옛 왕들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된 르네상스양식의 벨베데르 궁전, 왕실정원, 성 비투스 성당 등 수많은 건물이 펼쳐져 있어 제대로
보려면 반나절은 걸린다 한다. 프라하 성의 하이라이트는 성 비투스 성당. 525년에 시작해 1000년 동안 만들어진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 창문은 모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다.
프라하성
입구 정문이 화려한데 위병은 현대식 제복을 입었다. 1618년 왕궁의 브라티슬라바 대형홀에서 2명의 관리가 창밖으로 내던져지면서 "30년
종교전쟁" 이 시작되었다는 데 개방을 하지 않아 볼 수 없는 게 유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 비투스 성당 뒤편의 프라하에서 가장 예쁘고 작은 거리로 이름난 곳인 황금소로을 찾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20여 채의
앙증맞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머물렀던 작업실도 있다. 16세기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으로 지어진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좁은 길이다. 동화에 나올법한,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 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벌써
5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세기 옛날 모습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이제는 서점, 레코드 가게,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프라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얼까? 프라하의 야경이 프라하에서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매력거리라 한다. 아무래도 프라하 성에서의 가장 멋진건 아마
성위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 도시의 야경이 아닐까 싶다. 프라하성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남기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호텔옆 빨간 식탁보가 깔린
체코의 전통적인 레스토랑에서 비프스테이크 저녁식사를 즐겼다. 식사중에 우리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악사들로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우리의 “아리랑”을 감명깊게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사진1
: 바출라프광장 국립박물관을 배경으로/ 사진2 : 바츨라프광장 거리
사진3
: 카를교/ 사진4 : 프라하성 입구 근위병/사진5 : 대통령 관저/
사진6
: 성 비투스 성당/ 사진7 : 구왕궁/사진8 : 황금소로 앞에서/
사진9
: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야경/ 사진10 : 카를교에서 본 프라하성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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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67님의 댓글
프라하 구경 잘하구 갑니다, 윤인문 후배님, 감사! 유럽에 가게되면 꼭 가보고 싶은곳 1순위!
崔秉秀(69回)님의 댓글
정말로 구경할 만한 곳 프라하입니다... 프라하에 봄은 이미 왔고, 저 만 가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