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설과 어머니
본문
설을 며칠 앞둔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바쁘셨다.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에게 설빔으로 나와 동생의 바지를 콩 됫박을 퍼주고 사셨다. 동생과 나는 신이나 몇 번을 입어보고 어서 설날이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며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강냉이 엿을 고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동생과 나는 지게와 도끼를 들고 산에 올랐다. 발로 툭 차도 쓰러지는 삭은 나무 등걸을 한 짐 채워 내려오면 어머니는 엿밥을 짜내기 위해 양은 다라에 삼발이를 걸치고 자루를 붙들라 하셨다. 그 뜨겁고 끈적끈적한 열기가 얼굴을 덮쳐도 두 손과 자루 한 끝을 입에 물고 있으면 어머니는 큰 바가지로 끓인 엿 밥을 자루에 부우시고는 주물럭주물럭 짜내어 살짝 조려 달콤한 조청을 만드셨다. 밤잠을 설치시며 그 조청을 다시 조리면 시커먼 된 엿이 되어 힘들게 떼어내어 콩고물도 무치고 쌀 강냉이를 붙여 둥그렇게 만들어 상에 올려놓으셨다. 딱딱하게 굳은 그 놈을 쪼개어 먹으려면 상당한 인내와 용기가 필요했는데 다듬이 방망이를 요령껏 휘둘러야 엿의 파편이 온 방안으로 튀지 않았으며 입 안에 쩍 달라 붙으면 턱과 이가 빠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었다. 맷돌에 불린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실 때도 큰 가마솥에 자루에서 짜낸 물을 주걱으로 휘휘 저으며 거기에 소금에서 우러나온 간수를 살짝 부우면 부얼부얼 엉기는 순두부를 건져내어 기름간장을 간하여 주셨으니 그 구수한 맛과 내음은 잊을 수가 없었고 방앗간에서 갈래 떡을 방금 해 왔을 때 그 뜨끈한 것에 조청을 찍어 한 입 물면 먹을거리가 별로 없던 그 시절 입안이 매우 행복해져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장독대에서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던 시루를 어머니는 꺼내 헹구신 다음 안방 위목에 가져다 놓은 것을 설빔으로 새로 사 주신 바지가 너무 좋아 다시 입고 날뛰다 그만 거기에 폭삭 주저앉아 그 시루는 시루떡을 한 번도 쪄 보지 못한 채 뻐그러져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어머니는 나의 철없는 행동에 기가 차 할 말을 잊고 계셨다. 그 해 시루떡은 구경도 못했다. 깜깜한 섣달 그믐밤 어머니는 찐 찹쌀을 절구통에 넣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물을 칠해가며 절구질을 하셔서 인절미를 만드셨다. 그 따끈따끈한 인절미에 고소한 콩가루를 무쳐 잘게 썰어 내신 다음 그릇에 담아 수차골 작은 할머니 댁에 갖다 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작은할머니 댁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집이 있어 너무 무섭고 싫었다. 그 집은 옛날 조상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호서랑 귀신을 뒤뜰에 모시는 집이라 달빛도 없는 밤에 그 집을 지나치려면 등골이 오싹하였다. 동생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결국 져 떡 그릇을 들고 작은 할머니 댁에 가야만 했다. 너무 무서워 뒤도 안돌아 보고 뛰면 귀신이 더 빨리 쫒아와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았다. 설 전날 밤, 한해의 묵은 때를 벗겨야하니 고무 함지박에 어머니가 데워준 목욕물에 아버지가 제일 먼저 때를 벗기고 나면 그물에 누나 그리고 나, 동생 순이었다. 동생은 그게 싫어 몸을 비비 틀며 목욕을 하기 싫어했다. 어머니한테 찰싹하고 복창을 한 대 맞고서야 동생은 그 물에 들어갔다. 설날 아침, 그래도 개운한 몸에 새로 산 설빔 옷을 입고 제일 먼저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남자가 제일먼저 집에 들어와야 한해 재수가 좋다고 하시며 대문 단속을 잘 하라 하셨다. 그 이유를 이해못했지만 옆집 여자애가 떡을 가져왔기에 황급히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그 떡을 받았다. 아버지의 지침을 성공리에 마치는 순간이었다. 일학년인 동생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동네 어른께 먼저 세배를 가 세배 돈도 챙기고 맛있는 제사상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학교를 가야하니 무척 속상해 하였다. 결국 여자담임선생님에게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속여 가까스로 조퇴를 한 후 집에 먼저와 세배를 드려 수확물을 챙기니 주머니 속에는 끈끈한 오강사탕과 돈 몇 푼이 들어 있었다. 동생을 포함 사촌동생들과 나는 방과 후 그래도 둘째 할머니 댁에 세배를 갔다. 이미 경험에 의해 둘째 할머니 댁에는 제사를 드리시기 때문에 먹을 음식이 많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동생들과 넙죽 절하고 나면 둘째 할머니께서는 벽장에서 제사상에 올려져있던 형형색색의 사탕과 다식 그리고 생율을 한 접시 내 오셨다.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 덕담을 듣지만 우리 모두는 접시의 음식에 관심이 쏠려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공략하여 먼저 많이 그 음식을 주머니에 챙겨 넣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뜨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드니 접시가 나뒹굴며 음식이 튀고 한바탕 방안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정말 가관 이었다. 할머니께서 약식과 수정과를 들고 들어와서야 겨우 그 소란은 진정되었다. 눈치를 채신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우리는 약식과 수정과에는 관심을 안 보이고 다음 집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설날은 그렇게 매해 다가와 떡국과 함께 무수한 나이를 어머니와 나에게 먹였다. |
댓글목록 0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wishing you and specially your daughter in U.K for a happy lunar new year
안남헌(82회)님의 댓글
안방에 빨간함지박을 놓고 돌아가며 닦던모습 아련하네요... 우리는 두명에 한번씩은 물을 갈았던거 같은데...ㅎㅎㅎ
이동열님의 댓글
어릴쩍 엄니가 만들어주시던 밥풀떼기엿 먹구파요^^
崔秉秀(69回)님의 댓글
너무 무서워 뒤도 안돌아 보고 뛰면 귀신이 더 빨리 쫓아와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았다...ㅋㅋ...
설날 전에 죄를 다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떡국, 엿, 인절미, 사탕, 약식, 수정과를 맛있게 먹을 수가 있지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설날 "다음 집의 전리품" 을 챙기려 다녔다면 설날만 되면 전쟁터 였구먼..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재준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사업번창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남헌후배,하점면 창후리의 옛 설 풍경이 상상되오네. 우린 가마솥이 작아서 물을...ㅎㅎㅎ 잘 지내시게.
윤용혁님의 댓글
동열형님,잘 다녀오셨어요? 어머니가 해 주시던 엿밥 참 정겹지요.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하세요.멋지신 형님.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홈피와 함께 형님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