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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 철새 탐조여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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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탐조여행에 대한 이해와 준비부족으로 꽃나들이 여행 떠나듯 카메라 하나 들고 떠났더니 철새들은 늘 안전거리 밖에서 가물가물~~ 많이 아쉬웠고 우둔한 자신을 탓해본다.
전문가용은 아니라도 과학교재상에서 파는 광학 망원경쯤은 지참해야 할것이며 카메라도 렌즈 교체형으로 망원렌즈를 착용하고 삼각대등을 사용하면 더 좋을것이다. 물론 아무곳이나 내려서 개별행동을 하거나 사진 찍기가 수월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그나마 돌아보면서 만난 독수리와 두루미... 덤으로 고라니까지~ 흡족하게 돌아본 셈이다.
철새를 만나러 간 철원여행... 주변 몇곳을 간김에 둘러 보았다.
■ 삼부연 폭포와 직탕 폭포
철원에 가면 삼부연 폭포와 직탕 폭포가 있다. 삼부연 폭포는 철원군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찾기 쉬우며 20m 높이에서 물이 세번 꺽여 떨어지기에 3층으로 보이고 떨어진 물이 모이는 소(沼)가 솥(釜)처럼 생겼다해서 삼부연 폭포라고 한다. 우리가 찾아갔을때는 사방이 온통 얼음빙벽이었으나 얼음안으로는 계속해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폭포주변은 고즈넉하리만치 아무 시설이 없어서 외롭기까지 하였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폭포 앞의 사찰에서 갑자기 확성기를 크게 틀더니 불경을 외치는 통에 대화조차 힘들어서 서둘러 돌아나왔다.
<삼부연 폭포....빙벽>
앞쪽은 콘크리트로 그럴듯하나 뒷쪽은 굴처럼 생겼으며 2차선이 좁아져서 교행이 곤란하다. 즉, 고석정보다 2Km정도 상류에 있는 셈인데 높이 3m, 폭 80m라고는 하나 눈으로 보면 한탄강을 길게 가로질러 막은 보(堡)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폭포라고 부르기에는 어쩐지 주저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당당히 직탕폭포라는 이름은 물론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어엿한 폭포이다.
<직탕 폭포>
철원은 수복지역이다. 즉, 해방이후 38선 이북의 북한지역이었다가 6.25이후 남한이 회복한 땅이다. 이런 지역에는 그 건설에도 드라마틱(?)한 얘깃거리가 깃든 다리들이 가끔 나오는데 고석정 바로 윗쪽 한탄대교의 옛 다리인 승일대교 또한 그러하다.
1948년 8월 공산치하에서 철원, 김화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군사도로로 활용하기 위한 다리의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6·25 발발로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954년 수복 이후 국군은 임시 가교인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했으나, 그 후 정부에서 북한 공법과는 다른공법으로 현재의 콘크리트 다리로 1958년 12월 3일 준공하였다.
원래는 한탄교 라는 이름으로 공사를 하였으나 사람들은 남북 합작의 공사과정을 기념하기 위해서 당시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의 `승` 자와 북한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승일교....지금은 차량통행 금지~ 옆에 아치형 철교는 새로 세운 한탄대교이다>
■ 고석정 (孤石亭)
철원 안보관광지 접수창구인 '철의삼각전적관' 바로 옆에 위치한 고석정은 안보관광이나 철새탐조를 신청, 접수해놓고 출발시간 전까지 둘러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고석정(孤石亭)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지방기념물 제 8호) 한탄강 한복판에 10여m 높이의 기암이 치솟아 있고, 신라 진평왕 때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건립하여 고석정이라 명명했다 하며 이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하는데,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이 누각은 6.25 동란 때 소실되었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96년 수해로 유실되었고 1997년에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고석정이 더욱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명종때 임꺽정(林巨正, ?-1562)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한탄강 복판에 우뚝 솟은 기암....>
<하류에서 바라다 본 풍광>
<정자> 그밖에도 전에는 민통선지역이었다가 이제는 출입이 자유로워진 '도피안사'나 철원군 노동당사 건물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참고로 철원팔경을 소개하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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