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쫑, 안녕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7.10.08 09:21
조회수 : 1,370
본문
두 살 터울의 동생을 전쟁놀이에서 부대장이나 적군 대장으로 꼭 시켜 주어야만 했다. 안 그러면 개구쟁이에다 욕심이 많아 삐지거나 또래 다른 아이를 때려 울려 놀이판이 엉망이 될 수 있어 별 수 없이 그렇게 임명했다. 언젠가 울며 떼를 쓰다 이마로 쿵쿵 봉당마루를 찧다 누가 먹고 버린 대추씨가 이마에 콕 박혀 어머니가 놀라 달려가 뽑으니 이마에 선혈이 낭자한 이후로 혼쭐이나 그 버릇은 사라졌다. 그 대신 ‘대톨이’라는 별명하나는 얻었다. 가을 양지께 산에 올라 두 편으로 나눠 막대기를 꺾어 총 삼고 입으로 “따따따, 피웅, 쾅!” 소리를 내며 전쟁놀이에 돌입했다. “땅!” 하면 “으악!” 소리를 내며 멋진 연기로 쓰러져야 하는데 한 꼬마 녀석이 막무가내로 안 죽었다고 우기자 동생은 달려가 한 대 줘 박아 꼭 울리고야 말았다. 꼬마의 울음소리는 “으아!” 하며 산 계곡 아래로 메아리 칠 때 어디선가 푸드덕하며 장끼 한 마리가 날아 저 산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면 일행은 전쟁놀이를 마치고 도토리도 줍고 산 보리수 열매를 한 움큼 따 입에 물면 새콤한 맛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손들은 모두 산 보리수나무에 걸려있다. 서산에 해가 턱을 괘고 저녁노을을 붉게 물들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어서 내려오라 손짓을 하였다. 집에 가 보니 아버지가 학교에서 퇴근하시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오셨다. 동생은 너무 신이나 들떠 있었고 '쫑'이라는 이름을 지어 이미 자기 차지로 만들었다. 입에다 뽀뽀를 하며 강아지 입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 아까부터 호들갑이다. 밤에 이불속에 데리고 자려니 아버지의 따끔한 한 마디에 봉당 한 구석에 수건을 깔고 자기가 입던 옷을 덮어 줬는데 이 녀석이 밤새 낑낑거려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나무상자로 뚝딱 개집을 만들어 주셨다. 그러면 동생은 크레용을 가지고 서툰 글씨로 거기에다 누가 봐도 다 아는데 개집이라고 코를 훌쩍이며 그려 넣었다. 대문짝에는 아직 강아지인데도 개조심이라고 크게 적었다. 학교가 끝나면 무섭게 달려가 강아지에게 입맞춤을 하고 그 놈을 끌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개 자랑을 늘어놓았다. 옆집 시갑이가 물으면 한사코 진돗개라고 눈을 부라리며 우겼다. 시간이 흘러 이제 강아지는 아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꼬리도 말린 것이 제법 컹컹거리며 집도 잘 지키고 밥도 한 사발씩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동생은 어머니가 쓰시던 참빗을 가져와 곱게 빗어주고 쫑이 대견한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아고, 우리 쫑! 우리 쫑!”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개를 무척 싫어 하셨다. 쥐약을 먹으면 죽는다는 핑계로 개장 옆에 말뚝을 박고 묶어 두셨는데 실제 이유는 개가 아무데나 용변을 보는 것이 눈에 거슬려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는 개의 자유를 박탈하고 늘 붙들어 매 놓다가 급기야 헐값을 주고 별밭 신 서방네 인삼밭 지키는 곳으로 팔아 넘기셨다. 그 소식을 들은 동생은 저녁도 안 먹고 밤새 훌쩍였다. 아침에 동생의 얼굴을 보니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제 그토록 동생이 아끼고 사랑하던 쫑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동생은 저녁을 굶어 배고플 텐데도 아침 흰 쌀밥을 남겨 미역국에 말아 개밥 그릇에 정성스레 넣어 주었다. 쫑은 영문도 모르고 쪼그려 슬픔에 잠겨있는 동생의 뺨을 핥더니 동생이 준 밥을 맛있게 다 먹어 치웠다. 밭 귀퉁이 저 만치 개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건 분명 신 서방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귀를 쫑긋 세운 쫑도 눈치를 챈 것 같다.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멍멍!” 그러나 아버지의 “쫑! 가만히 있지 못해!” 호령에 꼬리를 내리고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가 개 줄을 풀어 신 서방에게 넘겨주니 쫑은 앞 다리로 버티고 서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 광경에 동생은 자지러지게 목을 놓아 울었다. 쫑의 눈에서도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메마른 땅을 적시는 것 같다. 동생은 또다시 나뒹굴었다. 할 수없이 개 주인은 동생을 달래 쫑과 같이 가 하룻밤을 자기로 하고 동생도 데리고 갔다. 그때서야 쫑도 마음이 놓였는지 꼬리를 흔들며 정든 산골 집을 떠나갔다. 멀리 영각의 울음소리도 서럽다. 용산역에는 해병대 입대 장병들로 떠들썩하다. 아버지의 박봉으로 형들과 대학을 같이 다닐 수 없는 동생은 휴학을 하고 해병대에 지원입대 하였다. 드디어 입대 날, “형, 나 이제 갈게.” 하며 돌아서는 동생의 어깨가 들썩인다. 키가 장대 같고 그렇게 꿋꿋하던 동생이 약한 모습을 보이니 어릴 적 애견 쫑과 헤어지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슴이 미어졌다. 구내에 들어서자마자 “이것밖에 못하겠습니까? 앉아! 일어 서! 여러분은 이제부터 사제의 때를 벗고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알았습니까? 대답이 시원찮다. 알았나? 네가 뭡니까? 이제부터 모든 대답은 악이다. 악!!!“ 빡빡 깎은 동생을 실은 입영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만 갔다. 백내장이 낀 듯 뿌여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 졌다. "쫑, 안녕." |
타메쪼 나리타의 "해변의 노래"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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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74회)님의 댓글
쫑과의 이별이 결국 군대가는 동생과의 이별로 교차되는군요..이제 용혁후배가 바빠지겠군..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그간 만강하옵신지요? 편집은 환성형님이 잘 하실꺼구요. 저는 미력이나마
조금 찬조하며 마음으로 응원하렵니다. 환절기라 정말 시간이 없군요. 약사회 편집장을
맡아 없는 시간 쪼개 살려니 죽을 맛이군요. 우리의 희망 환성형님께 잘 말씀드려주세요.
늘 절 배려해 주시는 윤브라더즈의 큣하신 둘째형님.
오윤제님의 댓글
어릴 때 개들의 이름이 쫑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쫑을 키우고 팔고 키우고 팔기를 수번 나는 그래서 개를 안 기르고 있습니다. 동생의 성격 꺽을 수 없는 고집. 우리 아들 세살 때 세발 자전거 태우며 놀다가 들어 가잤더니 더 다니자기에 내 맘대로 끌고 왔더니 갑자기 벽에다 이마를 밖는거 있지요.
오윤제님의 댓글
겁이나서 그놈에게 지금도 싫은 소리를 못해요.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 아드님의 성격이 한 성격하는군요. 선배님도 쫑이라는 개를 키우셨군요.
추억을 공유해 주신 선배님, 즐거운 날 되세요.
최병수님의 댓글
쫑은 영어로 존(John)의 명칭이 변해서~~~ 제 어렸을 적 큰 놈인 데...동네 사람들 꼼짝도 못하게 한 놈 제가 등에 올라 타곤 했지요.. 이름이 `마루`였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병수형님, 카리스마가 있는 마루라는 애견을 키우셨군요. 형님이 등에 타실 정도면
아주 듬직한 종이었군요. 저도 샌드버나드처럼 투실투실한 놈에 머리베개하고 풀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그리고 싶군요.
李聖鉉님의 댓글
금일 출근 길에 방송에서 낭독하는 것을 또 들었습니다.윤후배님 자랑스러운 인고인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성현형님, 여성시대를 들으셨군요? 저는 글만 올리고 못들었습니다.
후배를 극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송배형님, 그간 안녕하셨죠? 형님에게 약주라도 올려드려야 하는데요.
테니스는 지금도 즐겨 치시는지요? 멋지신 형님.
산보리수는 가을철 강화 고향산에 열리는 빨간 조그만 열매예요.새큼하지요.
사업 번창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