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보리타작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7.10.26 09:33
조회수 :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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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으로 낙엽들이 힘을 다해 버티다 하나 둘 지고 있어요.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제 마음은 동심이랍니다. 이맘때면 고향의 농심은 더욱 바빠지고 도시생활의 저는 이곳저곳 가야할 곳이 많군요. 고교졸업 30주년 행사가 턱 앞에 다가왔어요. 시 낭송 할 일이 역시 부담되는군요. 시낭송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고 쑥스럽기도 하며 아마 남들한테 잘 보이려는 맘 때문에 더욱 그런 가 봅니다. 제 회상 시 혼 분식 표어사건의 전말은 이래요. 고3시절 저는 문과 반 이었지요. 담임선생님은 국어선생님으로 몸집이 크시고 늘 소화불량으로 끌꺽거리시며 되새김질을 잘하셨어요. 아주 불쾌했지요. 그러나 담임선생님인데 어쩌겠어요. 어느 날 교내에서 응모하는 혼 분식에 관한 표어를 적어 내라는 거예요. 70년대 유신 정권은 쌀 수급이 어렵 자 혼 분식을 하도록 연일 독려하고 각 학교에 지침을 내려 보냈나 봅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혼 분식이 제대로 됐나 검사를 맡았고 안 됐으면 어김없이 몽둥이찜질을 당해야만했죠. 약삭빠른 친구는 검사용 도시락을 따로 가지고 다녔어요. 쉰내가 풀풀 나는 친구의 그 깡 보리밥이 그날따라 왜 그리 부러운지요. 보리밥알을 빌려 제 도시락에 심어 놓은 적도 있고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우느라 아침부터 시끌벅적 어수선했죠. 대학입시를 앞둔 시점에 기분이 영 안 좋더군요. 애들도 아니고 그리고 자칭 명문고란 학교에서 도대체 아침부터 이게 뭐란 말입니까? 담임선생님에게 도시락 검사를 당할 때면 자존심도 무지 상했고요. 그런 가운데 표어를 지어내라니 기분들이 어디 나겠어요? 마침 한 짓궂은 친구가 계속해서 떠들었어요. “야! 이거 어떠냐? 도시락 뚜껑 열 때마다 문정선 노랫소리.“ 그리고는 당시 유행가를 빗대어 큰 소리로 뒤에서 또 외치더군요. "혼식하세! 혼식하세! 혼식하는 마음보단 더 좋은걸 없을 걸." 당시 통기타 가수의 "사랑하는 마음보단 더 좋은걸 없을 걸" 대목을 개작하여 친구들한테 불러 주었는데 상당수의 친구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적어 제출한 거예요. 저도 머리 써 지어내기 귀찮아 그렇게 할까하다 나름대로 표어를 지어 적어냈죠. 천우신조라 할까요? 얼마나 천만다행이었는지요. 드디어 종례 시간, 일이 크게 터졌어요. 복도에서 질질 끌리는 몽둥이 소리가 나더니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자 "명색이 담임이 국어선생인데 니들이 감히 날 놀려!" 혼식하세! 혼식하세! 혼식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걸 없을 걸? 누구야! 나와! 도시락 뚜껑 열 때마다 문정선 노랫소리? 이건 또 어떤 미친놈이야!!! 앞으로 다 나와!" 그날 반 60명중 약 삼분의 일이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보리타작을 당했죠. 그러나 정작 주범인 깜상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는 표어를 잘 지어 오히려 입상하였고 그 친구로 인해 피해를 본 친구들은 어디다 하소연도 못한 채 삼십년이 감쪽같이 흘러 졸업30주년 행사에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다녀와서 경과보고를 드릴게요. 다른 선물과 함께 제가 그날 참석하시는 26명의 은사님에게 영양제 하나씩을 드리는데 어떤 친구는 속 좁게 국어선생님이셨던 그 분의 선물 하나만큼은 보류하자네요. ㅎㅎㅎ 아직도 삼십년 전 뼈아픈 통증이 앙금으로 남은 친구인가 봅니다. 그래서 헌시에 삽입한 거랍니다. 선생님도 참석하시는데 기억이나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 선생님이 글쎄 수년전에 제 집사람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며 집사람의 업무처리에 칭찬을 많이 하던 교장선생님이셨다니 참 세상은 아이로니칼하게 돌아갑니다. 저도 당시 선생님한테 "혼 분식이 뭐 길래 고 3수험생인 우리가 아침부터 면학분위기를 해쳐야겠습니까?" 하고 항의하다 주먹으로 호되게 맞은 기억이 나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도 이번에 만나 뵙게 되면 정중히 인사 올리고 약주라도 공손히 올려 드려야겠지요.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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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74회)님의 댓글
보리타작..참 오랜간만에 듣는 얘기군요..위의 통지표는 용혁후배거 맞남? 초등학교때 성적통지표 같은디..너무 공부 잘했네 그려..책임감(?) 빼곤 행동발달상황도 좋네 그려..혹시 개구장이? ㅎㅎㅎ
윤인문(74회)님의 댓글
몸이 항상 깨끗함..ㅎㅎ..주위에 얼마나 지저분한 얘들이 많았길래..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ㅎㅎㅎㅎㅎㅎ
인문형님, 주위에 이가 득실거리는 애, 누런코가 연신 들락거리는 코방구리 여자들이
포진하고 있었어요. 성적표 제것 맞습니다. 지난 번에 부모님 모시고 고향집을 들렀다가
다 회수하여 가져 왔지요. 형님의 냉철한 관찰력 대단하십니다. 참 , 형님 내일 저녁 6시의 졸업 30주년에 오시죠. 제가 모실께요
윤휘철님의 댓글
30주년 행사 잘치르고 시낭독도 잘하고 尹家 막내가 수고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