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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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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먹고
“어머이! 어머이! 저 왔어요.”
인천중학교에 다니던 형은 봄 방학이 끝나고 인천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연일 계속되는 한일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시위로 도심의
중고등학교들이 휴업에 들어가니 숭의동에서 자취를 하던
형은 가방을 들고 등잔불이 꺼진 초가집 대문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울어 대던 뒷산의 소쩍새는 그 소리에 놀라
울음을 멈추었고 멀리 양지깨 갈아엎은 논에서 개구리들의
노래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아이고, 큰 아이 목소리 일시다. 여보!”
어머니는 곤히 주무시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시고
부리나케 일어나 등잔의 심지에 성냥불을 그어 붙이시더니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달려 나가 반갑게 대문을 여셨다.
“이게 웬일이냐? 저녁은 먹었냐?” 어머니께서 묻자 형은
“아뇨, 안 먹었어요.”
이제부터 흙바닥의 부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솔가지를 꺾어 불을 때 밥을 새로 짓고 해묵은 김치를 썰어 김치 국을
끓여 고소한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형 앞에 콩장과 함께 놓으니
게눈 감듯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웠다.
그러나 콩장반찬은 먹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하숙집과 자취방을
전전하며 콩장을 염소 똥이라고 부르며 지겹도록 먹어 보기도 싫다는 것이다.
말 재주꾼인 형은 도심에서의 일어난 데모이야기로 신이 나
있었다.
어느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은 진압경찰에 밀려 쫒기다 넘어져
나무 그루터기에 항문을 찔려 병원으로 실려 갔고 또 누구는 시위대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피가 철철 흘렀고 자기는 최루가스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죽는 줄 알았다는 등의 이야기로 입에 게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한마디 거드셨다.
“넌 선생 네 애니까 선두에 서서 날뛰지 마라라. 그나마 있는 내
밥줄이 끊어지면 공부고 뭐고 없다.“ 라며 단언을 하셨다.
멀쑥해진 형은 화제를 돌려 지난 번 인천으로 올라가다 차안에서
일어난 일을 털어놓았다.
강화읍에서 인천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탔는데 할머니와 인천여중에
다니는 손녀딸이 먹을 경월소주 됫병에 가득담은 간장을 형이 모르고
발로 차 넘어뜨려 깨지는 바람에 차안은 온통 간장냄새로 진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할머니는 당황하여 “아이고 애야 이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기름장에 밥 비벼 먹고 학교에 다녀야 하는 디 어쩐다냐? “
혀를 끌끌 차시며 “아니 멀쩡하게 생긴 학상이 왜 남의 간장병을
다 깨고 난리야!“
잠시 후 운전기사가 차에 오르더니 "아니 이 무슨 발고린 냄새야 응?
할머니 왜 간장병을 다 깨고 난리법석 이시니까? 아휴! 고약한 냄새로
미치겠시다!“
승객들도 코를 연신 틀어막고 몹시 괴로워하였으며 어여쁜 여학생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듣다못해 어머니께서는 “넌 어려서부터 아버지 장화를 신고나가 찢어
오질 않나 변소 간에 빠지질 않나 그 뒤틈발이 버릇이 어딜가겠냐? “
하시며 핀잔을 주었다.
다음날 앞마당 복숭아나무에는 형이 인천에서 내려온 것을 축하라도 하듯
복사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형이 학기 중 집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으며 초등학교 저 학년인
나는 데모가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놀아줄 형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는 친구들에게 우리 형이 인천에서 공부하다 최루탄 가스를 맡고
눈물 흘리다 집에 왔노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였다.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놀아 줄 형이 있는 집으로 한숨에 달려왔다.
형은 감나무 그늘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심심한 나는 감나무에 오르니 형은 위험하다며 자꾸 내려오라 일렀으나
오기가 발동한 나는 끝까지 말을 안 듣고 버티었다.
그러다 그만 삭은 나뭇가지를 잘못 잡아 쿵하고 등짝으로 떨어졌다.
그리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닌데도 충격으로 숨이 막혀
쩔쩔 매고 있는데 형은 일으켜 줄 생각은 안하고 고무신짝을 벗어 나의
어깨 죽지를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형의 어릴 적, 말을 안 들어 어머니께 맞던 방식대로 나를 때렸던 것이다.
얼떨결에 어쩔 수 없이 한 대 얻어맞은 나는 형을 골려 주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때마침 형이 아버지의 바둑판에 바둑알을 군대의 사열을 하듯 잔뜩 줄지어
늘여놓고 자기가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마냥 놀이에 빠져 있을 때
방 빗자루로 그 바둑알을 잽싸게 쓸어버리고 도망치니 달리기에 소질이 없는
형은 나의 빠른 발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멋지게 형을 골려주니 고무신짝으로 맞은 분이 조금은 풀렸다.
오후가 되어 형과 나는 뒷산에 올라 활짝 핀 진달래 꽃잎을 한 움큼 따
입에 물었다.
새콤하면서도 달보드레한 맛이 향과 함께 입안에 골고루 퍼졌다.
덜 자란 싱아도 꺾고 너무 시어 먹을 수 없으면 땅을 파고 솔잎과
짚을 싸 불을 붙여 흙을 덮어 싱아 찜도 해 먹었다.
형과의 보낸 시간도 잠시,
학교가 정상을 찾아 형이 인천으로 올라가기 바로 전날,
뜰 안 닭장 속에서는 암탉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간 모이를 주며 키우던 씨암탉이 형을 위해 제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닭을 앙팡지게 참 잘 잡으셨다.
형의 입안에는 어느덧 쫄깃한 육질의 닭고기가 우기 적
거리고 있어 동생과 나는 한 점을 얻어먹으려고 애를 쓰니
어머니께서는 “니들은 집에 있으니 언제든 먹을 수 있지 않니?”
하시며 눈총을 주었다.
“아니 언제든 닭고기를 먹을 수 있다니요?” 라고 어머니께
반문하고픈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꾹 참았다.
턱을 쳐들고 형의 먹는 모습을 줄기차게 바라보니 형은
퍽퍽하고 맛없는 가슴살 한 조각을 떼 내어 주었다.
그것도 감지덕지 동생과 나누어 먹으니 간에 기별도 안 갔다.
그날 저녁 학교에서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푸주간의
돼지고기 한 근이 들려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솥뚜껑을 엎어 돼지고기에 고추장을 바른 후 화구에
불을 때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내니 그 냄새는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 차지였으니 동생과 나는 여간 불만이 아니었으나
어머니의 위세에 눌려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삶은 계란까지 먹던 형은 너무 먹어 소화불량으로 꺽꺽거리더니
급기야 설사로 변소 간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형의 그런 모습을 더욱 안타까워 하셨으나 우리는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형만 편애하는 것 같아 고소하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형의 가방에는 책은 별로 없는데 가운데 부분이 크게 불러 있었다.
자취하던 주인집에 보낼 백설기가 네모 반듯이 누런 양회포대 종이에
뜨끈뜨끈하게 싸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떡을 꾸려 보내면서부터 한때 전교 9등까지 하던
형의 성적이 해마다 떨어져 밑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떡으로 인해 형의 명석하던 머리가 떡이 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구심이 들었어도 어머니께서는 매번 정성스레 떡을
꾸려 보내셨다.
그게 바로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한결같은 사랑인가 보다.
형과 나는 어머니마음 십 분에 일 아니 백분에 일이라도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장손이라면 두 팔을 걷어 부치던 어머니도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이제 정든 고향을 뒤로 남겨두고 이달에 누님 댁 바로 옆 동으로
동생이 조그만 아파트를 사드려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오신다.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께서 어려운 큰 결단을 내리셨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시나 이제 누가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병들어 쇠약하고 지친 몸이 되신 어머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은 대부분 해소천식의 기침으로
마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형과 나의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바람은 그 소리라도 오래오래
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늘도 안쓰러워 가슴으로 울음을 삼킨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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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74회)님의 댓글
다음부터 인사동 부회장 용혁후배를 만날 때는 1차는 숯불고기구이집에서 2차는 치킨집에서 만나야겠구먼..잘하시겠지만 부모님 생존해 계실때 잘해 드리게,,나도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했습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jk133.X-Y.net/link/p.wma
" loop=-1 width=70 height=25 enablecontextmenu="0">♪ playground in my mind / Clint Holmes<br>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rc="http://jk133.X-Y.net/link/p.wma" loop=-1 width=70 height=25>♪ playground in my mind / Clint Holmes<br>음악이 안 나오고 반항을 해서 다시 올립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어느 가정이든 1자녀만 잘해도 화목이 유지되던데,,,용혁님이 바로 그 역을 적절히 하시나봅니다.딸같은 아들...(울 아들은 돌)<br> 치킨집에서 용혁님 만날때 가슴살은 필히 인문님이 드세요.ㅋㅋ
이환성(70회)님의 댓글
1차는 숯불고기구이집에서 2차는 치킨집에서 ===>2차는 도망가야지..난 닭못먹어유..매번 女高출신들이 많이도 좋아할글을 올리시네요..ㅋㅋ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우리 집에 치킨 한마리 배달시키면 식구들 각자 먹는 부위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눌은 퍽퍽한 가슴살, 나는 닭날개, 아들은 닭다리, 딸은 골고루..태희님 저 가슴살 안좋아하는데 용혁후배랑 먹을때는 할 수 없이 가슴살을..ㅋㅋ
이진호님의 댓글
가족을 사랑하고 형을 존경하는..선배님의 마음이 묻어납니다..늘~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감동을 주시네요..선배님하고 치킨 먹으러가면 가슴살은 낵아 먹을게요 ㅎㅎ 저도 장남이라 차별대우??? 쪼메 찔리네요..울 동생에게 잘해줘야겠네 ㅋㅋㅋ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 살아 생전 잘 모셔야 하는데 당번이 되어 고향집에 가는 날에는 제가 배드민턴
운동을 포기하려니 조금은 부담이 되었으나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 닭죽이라도 사드리면
맛있게 그릇을 비우시는 모습에 부질없던 생각을 떨쳐 버린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김태희님, 늘 감사해요. 언제나 마음을 공유해 주시고 정확히 심리상태를
분석해 헤아려 주시니 쿨하고 큣한 분이심을 금방 알지요.
이용복씨가 부르던 원곡이 넘 좋군요. 감사드립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그 맛있는 닭을 못드시는군요? ㅎㅎㅎ
닭백숙,닭볶음탕, 닭죽 넘 맛있어요. 닭 날개를 선배님께 드려 일용한 양식이 되시게
형님만의 로맨스를 기대해 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이진호 후배님,
후배님도 장손이군요. 듬직한 큰 아드님이라 믿네요. 동생들을 잘 보살피며
즐겁게 지내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날 되세요. 후배님.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옛날올린 닭이벤트 있고..우리홈 활성화교육용으로 올리려는데..어디있는지 모름..못찾겠다꾀꼬리가 아니고 꼬끼오네...ㅋㅋ
토끼님의 댓글
인문 선배님 날개 드시면 바람 나셔요... ㅋ
오윤제님의 댓글
닭고기는 고사하고 달걀만 도시락에 가져왔다면 요즘 말로 짱인 세상 지금은 지천이라 않먹는 것인가. 소님 와서 씨암닭 잡은 날 꼴각꼴각 침 넘기기는 것은 시골어디나 같은가 봅니다.
김태희(101)님의 댓글
저두 닭 날개 좋아하는데 도통 바람이 안 나서 속상해요 ㅎㅎ ..성현님 감투 내놓으시고 오리무중...너무 하시는 거 아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