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옷 타령
본문
옷 타령
아버지의 박봉에 삼형제가 대학을 같이 다니니 월급봉투를 통째로 털어놓고 힘없이 강화에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용돈이나 옷 타령은 사치에 불과했다. 명색이 대학생으로서 사귀고픈 여학생도 있고 한데 매일 후줄 그래 한 옷을 입고 강의를 들으러 학교 갈 때는 그래도 신경이 많이 써졌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영등포시장에서 분홍색 양복상의를 삼천 원에 사가지고 들어왔다. 좀 날라리들이 입는 옷처럼 화려하였으나 형이 입으니 그런대로 어울렸다. 그런데 형이 며칠 입고 다니다 웬일인지 벗어놓고 입지를 않았다. 잽싸게 아침에 먼저 그 옷을 형의 베이지색 바지에 바쳐 입고 형의 스타일대로 하고 학교에 가니 여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보다 못한 친한 친구가 “야! 너 분홍색 마이 밤무대 가수들이 입는 반짝이 옷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밤무대 가수들이 입는 옷이라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평소 마음을 두고 있던 여학생 앞에서 얼쩡거렸으니 그 여학생이 뭐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상기되고 창피한 마음으로 진종일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날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형의 면전에 옷을 내 팽겨 치며 어떻게 이따위 옷을 사서 날 그렇게 망신을 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누가 너보고 입고 가래?”하며 오히려 되물었다. 형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옷을 안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귀 뜸을 해주지 않은 형의 무심함에 야속하기만 하였다. 하긴 형이 벗어놓은 옷을 몰래 먼저 입고 학교에 간 나의 잘못이 더 컸으니 혼자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요령껏 형은 그 옷을 대구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같은 과 형 친구에게 삼천 원에 되팔았다. 형의 친구는 품이 맞지 않자 급기야 수선 집에서 오천 원을 주고 고쳐 입었는데 고치는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러나 그 형 역시 친구들의 놀림으로 형에게 반환을 요구하니 형은 멀쩡한 옷에 손을 댔기에 안 된다고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정말 웃지 못 할 일들이 옷 때문에 일어나고 있었다.
옷에 한이 서린 형은 하교 길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회사 재고 정리라고 헐값에 티셔츠 열 벌을 준 다기에 현혹되어 사가지고 집에 들어와 신나게 나눠 입어보니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 팔의 길이가 서로 맞지 않는 것, 몸통에 반만 걸리는 것 등 전부 품바타령에서나 입을 불량품의 옷을 모르고 사 사기를 당했으니 어처구니가 없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마음을 곱게 써야한다고 며칠 전 형 친구에게 팔아넘긴 그 옷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아침에 용돈과 옷 문제로 형과 다투고도 정경대 건물이 나의 약대 건물 옆에 위치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니 어색하게 잔디밭에 앉아 우리형제끼리 이러지 말자고 하며 화해를 청하면서 형의 용돈을 털어 150원짜리 라면을 사줄 때면 아침에 미움도 어느새 사라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왜 우리 삼형제는 어렵게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가 반문하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분필가루를 먹어가며 고생하시는 아버지와 오늘도 땡볕에서 얼굴을 그을리며 논밭에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푼이 새로울세라 일꾼을 안 사시고 그 너른 논에 혼자 농약을 치시는 어머니, 쌀은 팔아야겠기에 필수품은 콩과 팥 등을 주고 사셨으며 아버지의 머리도 손수 당신의 재주꾼 손으로 깎아 주셨다. 가물어 논에 물을 대려면 밤잠을 설치며 남정네들과 삽을 가지고 씨름을 벌여야 겨우 논에 물을 축일 수 있었다.
소쩍새가 우는 밤, 개골개골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피곤과 졸음에 겨우신 어머니는 연신 하품을 하시다가 그대로 쓰러져 주무셨을 것이다. 늘 논밭으로 헤매시어 손등은 두꺼비 잔등처럼 거칠던 가엾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서넛 모아 영수과목을 가르쳐 제법 용돈이 쏠쏠하던 차 이것마저도 정부에서 못 하게 하니 아쉬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결국 병원 영안실의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알아보았으나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옛날부터 수학이 싫어 문과 쪽을 택한 형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목이 있었는데 미적분학이라고 대학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형은 졸업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형은 F학점을 받아 이번 졸업반 여름방학동안 계절 학기에 강의를 들어야만 하였다. 아무리 들어도 미적분의 인테그랄은 징그러운 지렁이라고 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형의 간곡한 요청으로 중간고사를 대신 봐주기로 하였다. 형과 나는 학생수첩의 사진을 바꿔 붙이고 계절학기 강의실에 들어가 대리 시험을 치르다 교수님에게 발각 되었으나 교수님은 형의 처지를 이해 하셔서 그런지 앞으로의 강의 출석을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교학과에 데리고 가 확인하면 금방 탄로가 날 일이었는데도 적당히 봐 주신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나는 꼼짝없이 형으로 둔갑하여 더운 여름날 형의 계절 학기를 수강하게 되었다. 전생에 형과 나는 무슨 인연인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가끔 강의 중 형의 이름을 불러도 “네~!” 하고 대답하며 형 노릇을 하려니 형 친구들도 있는 가운데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반팔 티셔츠면 다 여름옷인지 알고 털로 짠 반팔 옷을 입고 강의를 들으니 목에 땀띠가 다 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어쩌랴! 형을 졸업 시켜야겠고 삼복중에도 열심히 나가 형 행세를 하면서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 형과 같은 입장의 형 친구들이 내 뒤로 줄줄이 앉아 나의 정답을 기다려 학점을 따게 되니 나 또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팔털옷과 땀띠라. 얼마나 옷을 살 돈이 궁하기로 반팔이면 다 여름옷인줄 착각한 나, 어릴 적 무릎이 쑥 나오는 고리땡바지가 싫어 영국 신부님이 선물로 주신 오버코트 팔에 발을 집어넣어 이런 식의 옷을 사달라고 어머니에게 조르다 발이 빠져 나오지 않아 가위로 멀쩡한 옷을 자르게 되니 얼마나 어머니에게 혼났는지 지금도 그놈의 옷 하면 치가 떨린다.
지금 내가 근무하며 입은 옷은 배드민턴의 기능성이 좋은 편안 옷에 가운만 걸친 상태다. 세월이 그 만큼 좋아졌다. 옷이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헐벗고 사는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면 이 또한 호사스런 사치가 아니겠는가? |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어제는 소쩌꿍,쏘쩍꿍으로 시작되어 비가오니 개골개골로 끝나겠다고 생각했다..오늘글에 그대로 반추..尹家형의 회장 무혈입性을 축하드립니다..ㅋㅋ
이진호님의 댓글
선배님의 일용할양식은 형님에게서 부터 시작되네요 형님과의 우정이 보기 좋습니다...
박남호(87)님의 댓글
마지막 내용이 저를 성하게 합니다 보육원에 제가 맏고 있는 아이 몇이 있는데 담주에는 옷한벌 사주러 가야겠읍니다 그아이들 보고프다 규옥,규미,규철,그리고 이미 성인이된 소라!!!!!!!!!!!!!
김정회님의 댓글
그당시는 초라했지요.초등학교때는 미군부대 배식(꿀꿀이죽,우유가루)이주류였고 대학때는 군복바지 물드려 입는 정도이니까!!!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윤인문..나도 내이름대로 인문계에 적성이 맞는 넘이 공대 기계과가서 듣기싫은 미적분 강의 듣느라 힘들었다네..근데 실업계에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점점 그게 적성에 맞아가나 보이.ㅎㅎ
이환성(70회)님의 댓글
A/S가 부실해서...매상안오르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