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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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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우는 밤
육학년 초 내가초등학교의 정든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도시 중학교로 진학하는 길이 원천봉쇄 되어있는 상황에
구지 아버지랑 학교사택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공부한답시고
고생하며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전에 다녔던
양도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가기 전 반 친구들에게 한마디 하라는데 일 년간
정이 듬뿍 든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친구들아, 잘 있어!”하고 눈가를 훔치며 교실 문을
열고 교문을 향해 달렸다. 몇몇 여학생들이 “친구야, 잘 가!”
하며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거기에는 분명 댕기머리 소녀, 입술 위 조그만 점박이 친구, 정문 앞에
살던 까무잡잡한 매력의 여자 친구 목소리임에 틀림없 것만
나의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차마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었다.
어린마음에도 정든 친구들과의 작별이 정말 싫었던 것이다.
박골 고개를 오르니 정든 교정이 내가저수지와 함께 성냥갑처럼
한눈에 들어와 잠시 숨을 고루며 지난 일을 그려보았다.
전학 초 텃세를 부리던 친구들, 일명 “놓고 치기”를 하려다
제대로 싸움한번 못하고 담임선생님에게 종아리만 맞던 일,
운동장에서 공만 찼다하면 바로 넘어 저수지로 풍덩 빠져 그 공을
건지려고 애 쓰던 친구들, 내가시장 치과 집 아들의 길쭉한 리도카인
주사 병을 얻어 딱총을 만들어 쏘던 일, 고비에 사는 친구는 봄이면
어른 팔뚝만한 칡뿌리를 캐 톱으로 썰어와 쓴 맛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던 일,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학교사택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양도면 고향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잃었던 아들을 찾은 양
동생이 보는 앞에서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등을 두드리며 나의 뺨에
뽀뽀를 하며 이리저리 어루만져 주셨다.
“어이구! 내 새끼야, 고생 많았지? 응?”하시며 개떡을 맛있게 쪄 주셨다.
동생의 눈치를 가만히 살피니 약간 주둥이가 나오고 쌜쭉해 있었으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어머니의 그 따스한 손길에 한없이 내 몸을
그냥 내맡겼다.
어머니 품안이 그렇게 포근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쟁기질 한 논의 맹꽁이는 아들의 귀환을 축하라도 하듯 “아드득”
합창을 하였다.
다음날 예전에 다녔던 양도초등학교 육학년 교실에 들어서니
낯익은 지난 친구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담임선생님은 키가 크시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이셨는데 학생들에게
늘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어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하셨고 정직을 제일
덕목으로 삼으셨다.
악기를 잘 다루시어 시골의 조그만 학교에 밴드부를 키워 놓아 운동회 때에
달리기 결승선을 통과할 때면 팡파레를 울려 흥을 한껏 북돋우어 주셨다.
특히 수업 중 궁금증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들을 예쁘게 보시고 아주 좋아
하셨으며 당신이 해군사관학교에 가지 못한 것을 한이 서려하시는 분으로
우리들에게 늘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셨다.
봄날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는데 남산에서 멍청한 우리반애 둘을 잊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을 파고다 공원에 가두어 놓고 그 애들을
찾으러 나가시는 바람에 아이들은 저녁을 쫄쫄이 굶어도 불 꺼진
파고다 공원에서 숨바꼭질로 시간가는 줄 모르며 통행금지시간이
거의 다 되기까지 무엇이 그리 좋은 지 철부지들처럼 깔깔대며 놀기만 하였다.
밤 한시쯤 공덕동 파출소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이끌려온 두 친구의 눈은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어 콧물과 범벅이니 정말 가관이었다.
“앵벌이로 팔려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이놈들아!” 하시는 선생님의 일침에
얼굴도 못 든 채 부운 눈만 껌벅 거리고 있었다.
등교 길 벌판 보리밭에 문둥이가 아이들을 잡아 생간을 꺼내 먹는다는 소문에
아주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도 잠시 보리깜부기 대를 잘라 삐이익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면 종달새도 꼬리를 쫑긋쫑긋 흔들며 즐거워하였다.
여름의 기나긴 장마로 초가지붕에 이름 모를 버섯이 하얗게 피어나고 며칠 전부터
흔들거리던 동생의 이빨을 어머니가 실로 동여매 이마를 탁 치면 쑥하고 잘도 빠져나와
그걸 동생이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줄게 새 이빨 다오!”하고 소리치며 지붕위로 힘껏
던지면 엉덩이에 아직 어린 조그만 박을 달고 있던 박꽃이 환하게 웃어 주었다.
가을소풍을 석모도 보문사로 갔는데 그날 저녁 약주를 좋아하시는 담임선생님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해병대 상사출신과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선생님이
매를 맞고 계시다기에 선생님을 구하고자 반장과 나는 의협심 하나로 어린 것들이
돼지우리의 말뚝을 뽑아들고 달려갔더니 상황은 이미 끝나버려 머쓱한 얼굴을 한 채
담임선생님만 간신히 부축하여 모시고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다른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꼭 붙들고 있으라는 지침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
번번이 일어나시려는 선생님을 착각한 학생 여럿이 내리눌러 그만 선생님은 바지에
실례를 하시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의 한쪽 눈가는 말벌에 쏘인 듯 시퍼렇게 퉁퉁 부어 있었다.
졸업식 날,
떠나보내는 제자들 앞날의 장도를 축하하고 격려해 주시던 그 꿋꿋한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엄격하셨어도 마음은 늘 따듯하셨던 것이다.
언제나 존경했던 선생님이 수년전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하시더니
다른 쪽 눈까지 실명위기에 놓이자 신병을 비관하시다가 결국 시골집
우물에 몸을 던지셨다는 비보에 나는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불행도 이겨 내라고 늘 종례시간에 말씀하셨던 선생님, 막상
당신의 불행에 대해서는 아주 마음이 약해지셨던 것이다.
우리 삼남 일여 모두를 맡아 가르치셨던 선생님의 영전 앞에서 나의 형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날 밤 고향의 뒷산 소쩍새도 아주 구슬프게 따라 울었다.
선생님의 무덤가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할미꽃이 피었으리라.
사랑하는 선생님, 하늘에서나 편히 쉬십시오.
제자 올림.
댓글목록 0
박남호(87)님의 댓글
은사님에 대한 기억......, 전 얼마전 은사님의 어머님의 장례식에서 작아진 키와 늘어난 주름, 머리카락의 숫자도 셀만하며 영정의 사진속에서 왠지 세월의 뒷전에 흐르던 따금한 손의 매서움을 새삼 또한번 느끼고 싶어 잡은 손은 도저히 때릴 힘이 안남은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은사님! 등산 오래오래 같이가요
전재수(75회)님의 댓글
우리가 이렇게 사는것은 은사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당신의 불행에 대해서는 아주 마음이 약해지셨던 것이다==> 그것이 인생인가봅니다..이제 집도착..간밤에 시말서 궁리했는데..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인사동주제歌 오리지널이 소쩍새..나갑니다..빤츠구하러..
김태희(101)님의 댓글
<embed style src=http://mediafile.paran.com/MEDIA_5245621/BLOG/200508/1122942437_다음카페oldiespop.wmv Width=450 height=350 volume=0 hidden="false" showstatusbar="1" loop="-1"><br>Saved By The Bell - Robin Gibb (Bee Gees.1969)<br>
김태희(101)님의 댓글
선생님의 슬픈운명..ㅜ.ㅜ<br>
가고싶던 해사관학교 못간 컴플렉스로 월남전 참전 해병대상사와 멋있게 붙을 정도로<br>
깡다귀 강한 선생님이 실명을 비관해 우물에 몸을 던지시다니....<br>
나이들어 건강 잃는 것이 그토록 무섭다고 합니다. 모두들 건강할때 건강관리 하세요.<br>
우물보다 편안한 방법은 없었을까.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지금 창원에서 2박3일간 부부동반 교장연수동기 모임을 마치고 올라왔습니다. 어제저녁 창원아트센터에서 본 라트라 비아타(춘희) 오페라 공연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별의 아픔과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르는 주옥같은 아리아들이 용혁후배와 글과 함께 다시 귓가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 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재학후배님,남호후배님, 할머니와 은사님의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계시군요.
환성형님, 전재수 선배님,은사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희들이 존재할 수 없겠죠.
김태희님, 늘 고맙습니다. 비지스의 잔잔한 음악을 비내리는 아침에 들으니 더 없이 좋군요. 저만의 애칭, 큣하신분. 인문형님,춘희 공연을 형수님과 함께
윤용혁님의 댓글
멋진 시간을 가지셨군요. 형님을 뵐때마다 은사님들의 고마움과 솔선하는 교육자상을
알게 됩니다. 멋진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