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폼페이,나폴리,소렌토에 타잔이 가다.
본문
“내일은 가장 더운 도시인 남부의 폼페이와 나폴리, 소렌토를 갑니다. 옷 중에 가장 멋지고 칼러풀한 복장으로 나오세요? 알았죠? 보겠어요? 내일 아침. 재삼 부탁합니다.” 가이드가 무슨 일인지 복장에 관심이 많다. 아침에 산악자전거용 화려한 티셔츠를 꺼내드니 딸애는 아연실색하며 영국으로 돌아가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거기에 흰 테니스 반바지를 걸치니 “아이고 뒷머리야!” 한다. 딸애가 영국 물 좀 먹더니 아주 보수적으로 변했다. “아빠는 늘 이 웃옷을 입고 자전거로 출근하는데 왜 그래?” “아빠, 제발 그 옷만은...” 기능성의 옷을 포기할리 없다. 호텔 조식 후 237키로 세 시간을 달려 폼페이로 향한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현지 가이드가 아주 친절하게 우릴 맞는다. 흰 모자에 백구두, 길게 줄쳐진 상의의 깃을 세우고 이태리인 특유의 제스처를 쓰며 안내한다. 이태리는 관광지마다 고용의 일환인지 현지 가이드를 내 세운다. 내 옷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뭐라고 말을 한다. 사진을 찍자하니 쾌히 응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유 아 챔피온!” 한다. 몇 번이고. 폼페이. 이 고대도시는 AD.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 분화에 의해 화산재로 매몰되어 있다가 1748년 사람들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기까지 땅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직도 상당부분이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채 여기저기 유물이 묻혀있다. 현재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형이다. 작은 박물관, 법원등 공공의 광장, 바실리카, 베티가(家), 스타비아네 욕탕, 원형극장, 신전 등을 둘러보면서 폐허를 거닐다보면 거의 2000년 전에 존재했던 고대도시가 얼마나 발달된 문명생활을 영위하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다. 신전에는 노예와 짐승, 여자는 출입금지다. 이를 알리는 표지석이 길 끝단에 서 있다. 마차가 다녔고 세 개의 평평한 돌을 깔아 횡단보도도 만들고 백색 돌로 가파른 언덕의 위험표지판을 나타냈으며 좌, 우회전 표시도 두 개의 돌로 알려준다. 낮은 돌 한 개는 일방통행을 말하고 두 개는 마차 길,세 개는 횡단보도다. 제일 먼저 사창가를 둘러본다. 동물의 피를 섞어 벽 칠을 붉게 하였는데 이곳 세계에 자주 오면 파멸한다는 경고의 표시란다. 주색잡기에 능하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이제나 저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마차가 얼마나 자주 들락거렸는지 돌바닥에 홈이 깊게 파져있다. 유곽을 알리는 남근이 실물크기로 2층 담벼락에 양각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에게 쾌락을 드립니다.” 물론 우리말이 아니다. 1층에는 젊은 여인들이 몸을 팔았고 2층은 나이든 창녀들의 영업장소다. 암 늑대의 거리다. 화대는 짝수의 포도주잔을 가지고 몇 잔을 살 수 있느냐로 계산을 하였단다. 방의 침대를 보았는데 아주 작다. 그 당시 사람들이 작았나 보다. 2층 벽에 붉게 그려진 낯간지러운 음화로 얼굴을 들 수 없다. 성병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했는데 돼지나 양등 동물의 내장을 사용했다한다. 말이 쉬는 마구간도 있고 여관도 눈에 들어온다. 이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하고... 공중목욕탕은 정말 과학적으로 화려하게 잘 지어져 있다. 대리석 욕조와 모자이크 바닥이 아름답다. 제 1실은 탈의실로 냉탕이 갖춰 있고 제 2실은 청동으로 된 미온탕으로 숯불로 덥혔단다. 제 3실은 사우나탕으로 채광창이 네개나 된다. 벽에 물방울이 생기지 않도록 잘 설계되어있다. 귀족들의 집 출입구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개조심 표시가 되어있다. 예나 제나 개조심이다. 상수도 시설까지 잘 갖춰 있는데 대부분 배수관이 납으로 되어 납중독으로 평균수명이 아주 짧았다한다. 환경위생화학을 공부한 제약과 친구들의 도움이 당시로써는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내리쬐는 남부의 태양이 머리 위를 이글거려 뜨겁다. 파평 윤문가의 체통을 버리고 흰색 반바지를 입길 아주 잘했다. 그늘을 따라 걷는다. 발굴 전시관에 유물들이 널려있다. 당시 물을 담던 밑둥이 뾰족한 암포라라는 물통과 용기, 가재 등 생활용품이 가득하다.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죽은 폼페이 인들이 애처롭다. 산모는 코를 막고 엎드려 고통 속에 최후를 맞았다. 마부는 웅크린 채로. 모두가 화석이 되었다. 태양을 등지고 딸애와 판박이 증명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다보니 가이드를 잃었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어느새 현지 가이드 나폴레옹이 나타나 우리말로 “빨리빨리!”를 외친다. “빨리빨리”는 이제 세계 공용어다. 점심을 스파게티와 돼지고기로 때운다. 오후에는 세계 삼대 미항 중에 하나인 나폴리로 이동한다. ‘나폴리를 보고 죽자.’라는 말의 탄생은 일상의 표현이나 제스처에 있어 과장하기 좋아하는 이태리 사람들의 나폴리를 추켜세워 말한 것이지만 나폴리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화산 폭발로 수백 미터가 내려앉았다지만 베수비오 산의 위용과 웅대한 경관 안에 자연스레 펼쳐지는 올리브 숲,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들, 찬란한 태양, 짙푸른 잔잔한 바다, 구름발치의 흰 돛단배 그리고 뭉게구름... 남유럽 특유의 피서지가 그려진다. 북 이탈리아가 알프스에 가깝고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선진국과 가까운 밀라노 등은 아주 잘 사나 가난한 남이탈리아로 불리는 이곳은 반도의 우리처럼 그리스, 비잔틴, 노르만, 프랑스 등에 차례로 지배를 받는 굴욕의 역사를 가지니 안타깝다. 과거 그리스의 지배를 받아 그 문화가 밴 풍속과 습관이 잔영처럼 남아있다. 다른 이태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혼자 있을 때 가만 놔두면 직무유기인 것처럼 여기는 호방한 남자들... 여기도 소매치기 범이 설치는 곳... 가난으로 아파트 유리창이 깨져도 그대로 방치하고 차 유리문이 파손하면 비닐을 덧대고 차문이 고장 나면 차 뚜껑을 개폐식으로 잘라 만들어 열고 나와 열쇠로 잠근다. 참 신기하다. 좀 시끄럽지만 유쾌하고 사교적인 모습에 따스한 우리네 정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래도 지금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으뜸가는 관광지다. 베수비오 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눈앞에 펼쳐진 산타루치아 항...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리라. 베수비오 화산을 끼고 소렌토로 향한다. 노래에도 있듯이 돌아오라 소렌토. 멋진 항구가 있고 고급휴양지에 위치한 국제적인 해수욕장이 애머랄드 빛 잔잔한 파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야자수 나무가 이채롭다. 산언덕 아래 파랗게 펼쳐진 소렌토를 바라보며 가사를 잊고 콧노래를 부른다. 정말 아쉬움이 남는다. 아나카프리 섬을 110유로 주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여건상 갈 수 없단다. 하얀 석회석 동굴과 수심 깊은 곳이 환히 들여다보인다는 천연의 아름다운 그곳을 못내 아쉬워하며 리무진은 로마로 다시 가는 중이다. 222키로 두 시간 반을 달리는 내내 내일 로마 관광을 끝으로 딸애와 헤어져야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찹찹하다. 이어폰을 끼고 명상에 잠긴 딸애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내일 바티칸 시티를 보고나면... |
댓글목록 0
李桓成님의 댓글
폼페李,나폴李,타잔李 ==> 李家가 친근감갑니다..
난 언제나 가보려나..
윤인문님의 댓글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이 밀려옵니다. 아름다운 미항.. 정말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그러고 보니 모두가 오얏이이군요. 조만간 시간 내시어 다녀오세요.인문형님의 마이웨이를 이어 돌아오라 소렌토를 듣고 싶답니다.얼마나 노래가 구성지신지요... 멋진 내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