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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우연한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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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우연한 데이트
지난 일요일 교회에 다녀와서 외출 준비를 하려는데 집 사람이 어딜 가냐고 묻는다. 사실 며칠 전 자주 가는 사이버 카페에 ‘공간’이란 회원이 미술전시회를 문예회관에서 열고 있다는 소식이 떠있어 댓글로 “들르면 아는 체 해주세요.”라는 글을 남겨 놓았었다. 그게 문득 생각나 혼자 가려는 참에 집사람이 따라 나서겠다는 것이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닌 생면부지라 더군다나 여성인 터에 아내와 같이 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함께 전시장을 나선 것이다.
일요일인 그날의 날씨는 따뜻하였다. 중앙공원에는 철쭉과 자목련이 만발하여 맑은 하늘만큼이나 대지도 싱그러워서 가는 봄이 진정 아쉽기만 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오른편 전시실에는 인천예고 선생님들이 마침 전시회를 열고 있어 우선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림이나 노래나 시나, 보고 느낀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것인데 어떤 것은 선 듯 다가오지만, 어떤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오는 것들도 있다.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마다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교육과 환경이 다르니 그럴 것이다. 또 초보자들은 간단한 지식조차 없으니 높은 수준의 표현을 작가와 함께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단숨에 다가오는 것도 있으니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시를 읽을 때에 같은 느낌으로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것이다 .
나는 예고 선생님들의 작품을 둘러본 후 예의 ‘공간’님 작품이 전시된 곳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여성 두 분이 우리를 맞이한다. 모자를 쓰신 분이 자초지종을 묻기에 전후사정을 알렸다. 그녀는 자신이 ‘공간’이라며 악수를 청하고 방명록에 서명을 구하였다. 내 이름을 적고 한두 마디 나누는 사이 노신사 한분이 내 이름 옆에 멋들어지게 사인을 하고 있었다. 한번 잡아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모습은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필 놓은 것을 보고 “명필이십니다.” 하였더니 “잘 쓴 것 갔소?”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말 잘 쓰십니다.”라고 진정 부러운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그는 웃으며 “내 글 써 온지가 80년이 되우.”하신다. 금방 서예가임을 직감하는데 이어서 누가누가 자신의 제자임을 알려준다. 서예가라면 추사나 한석봉의 글씨도 구별 못하는 판에 지금 활동하는 서예가 이름을 들려준다고 특별히 알아지는 것도 아닌데.
대화를 마친 후 사면에 전시된 그림을 둘러본다. 아까 보았던 것보다 몇 배나 큰 그림들은 가까이서 보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금은 떨어져서 보아야만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가까이서 보면 모두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이 멀리 떨어져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듯이, 가까이 있어 느끼지 못한 것들도 멀리서 지긋이 바라보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바퀴 둘러 예의 공간님의 작품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름을 잘 지으면 연속극은 시청자가 많고 책도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책이나 그림에서도 이름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제였으니 아직 완성하지 못하여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으리라 지레 짐작하였다. 벽면 위로 한 송이 꽃잎을 그려 넣고 좌측엔 와이字 나무를 잘 손질하여 붙이고, 우측에는 검은 나무껍질을 놓은 것을 보며 미술에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오는 길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녀는 관람자와 함께 하기위하여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하였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이 그림에 제목을 붙여볼 권리가 있다는 것일까.
단단한 물체에서 연약한 꽃이 솟아나 피어있으니 생명의 신비랄까 경이랄까, 강인한 힘 같은 것이 내 가슴에 꽂혀서 무한한 생명이라거나 무궁한 생명이라는 이름을 주고 싶지만 상투적인 말 같아서 그냥 ‘무한’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오는 길에 도록(圖錄)을 사려고 값을 물었다. 작가는 그냥 가지고 가라며 손에 쥐어준다. 몇 번을 사양하며 돈을 내밀어도 막무가내여서 미안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미안한 마음은 어느새 감사한 마음으로 바뀐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온 시각은 오후 네 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중앙공원의 온통 붉어진 철쭉을 보며 잠시 시청 쪽으로 걷다가 우연히 CGV 간판이 눈에 띠었다. 영화 본지도 어지간한듯하고 시간도 넉넉하여 아내에게 영화 관람이나 하자고 청하였다. 아내는 좋아하였고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오히려 내가 더 좋았다. 예전엔 신문에 영화프로도 선전하고 길거리엔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상영하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대충 알 수가 있었으나, 그런 것들이 자취를 감춰 버린 요즈음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통 알 수 가 없다. 영화관에 도착하여 둘이는 무조건 상영시간이 빠른 프로를 찾았다. 한 시간 후에 상영되는 것, 두 시간 후의 것, 어떤 건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 볼 수 있는 프로도 있었다. 마침 반시간 후면 볼 수 있는 영화가 있어 우리는 그것을 보기로 했다. 바로 상영되는 영화의 좌석표가 중앙에 알맞게 위치한 것을 보면 인기가 없다든가, 종영을 얼마 안 남긴 프로일 것이라 생각하며 극장으로 들어섰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눈이 감긴다. 특별히 마음먹고 들어선 것도 아닌 다음에 어두운 극장은 잠을 자기에 알맞은 장소가 되었다. 도입부의 지루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며칠간의 나의 행적은 잠을 자야만 했을 것이다. 밤늦도록 술 마신 날이 몇 날이던가. 더군다나 강화고려산에 오른 날이 바로 전날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날에 본 영화제목으로 스캔들이란 이름만 기억하다가 며칠 후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이라 하였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제목에 있는 그대로 왕의 애정행각이다. 6명의 왕비가 있었다는데 여기에 나오는 왕비는 2번째인 앤과의 이야기. 정비인 캐서린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편승하여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두 딸을 시녀로 보내어 왕의 눈에 들도록 은밀히 추진하는 아버지와 외삼촌, 가문이 원하는 것에 더하여 왕비를 축출시켜 기어이 자신이 왕비가 되는 농익은 애욕의 솜씨, 한 여자를 얻기 위하여 국교(國敎)까지도 바꾸는 헨리8세, 뱃속의 아이가 사산하자 곧 남동생을 불러들여 근친상간까지 도모하며 왕자의 탄생을 기도하지만 발각되어 단두되는 앤 왕비, 가문의 영광이랄까 권세를 위하여 자식들을 희생시키는 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두 시간 여 영화는 나를 긴장시켰다. 성공한 반역은 혁명으로 종종 승화되던데 앤 왕비의 천륜에 반한 행위가 성사되었더라면 엘리자베스 여왕시대는 없었을 터이고 헨리의 이름으로 어떻게 역사가 전개되었을까 잠시 상상하며 극장을 나온 시각은 채 일곱 시가 안 되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봄 역시 중앙공원의 꽃잎처럼 하나 둘 흩어지는 그날의 초저녁, 우연히 맞이한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 발길을 옮길 때마다 열 발,아홉 발, 여덟 발, 우리의 데이트도 불타는 촛대처럼 점점 짧아져서 작은 불빛은 바람 없는 거리에서도 깜박깜박 꺼질듯 말듯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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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윤제형님! 새로운 모여인(?)를 만나 테이트했나해서 기대하며 글을 읽었더니 아니군요..실망과 함께 형수님과의 멋진 테이트가 부러워집니다. *^^*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국교(國敎)까지도 바꾸는 헨리8세==>우리 나라에도 포교된 바로 성공회 聖公會의 유래로 외할아버지, 아버지, 형 그리고 매형이 신부, 누이는 수녀인 우리 집 안 종교 내력을 남 부끄러워한 한 때도 있었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李桓成님의 댓글
잘나가는사이버 카페==> 담엔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