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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여행기 2 : 델피(델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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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째...우리가 묵었던 아크폴리스 근처 숙소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리스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다음으로 가장 인기있는 고고학 유적지인 델피(Delphi), 고대 그리이스어로 델포이 관광을 서둘렀다. 델피는 아테네에서 180km 떨어져 있으며, 델피의 성역(sanctuary)은 그리스 경치 중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인 포키스(Phokis)협곡에위치해 있다. 델피의 고대 유적은 고대에는 얌페이아(Yampeia), 그리고 나우플리아(Nauplia)로 알려진 거대한 파이드리아드(Phaidriad) 바위 아래 파르나소스(Parnassos)산의 남쪽 경사면 위에 펼쳐져 있다. 델피는 코린트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계곡에는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가 가득차 있다. 델피에는 아테네의 보물창고, 아폴로 신전, 신탁장소, 옴파로스, 원형극장, 경기장인 스테디움이 있고 고대 그리이스시대에는 전쟁이나 큰 행사를 하기전에 여기 신탁장소에 와서 미리 예언을 듣고 참고하였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버스로 쉬지 않고 세시간여 걸려 도착한 델피...오는 도중 가파른 산악지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올리브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급경사위를 깎아 만든 수많은 밭들...어찌 저리 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이다. 멀리서 눈 덮인 파르나소스산을 바라보며 꼬불꼬불한 산악지대를 가는데 버스차장으로 보이는 경치가 연실 탄성과 함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이천 년 전 차도 안다녔던 이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아폴론 신의 예언을 듣고자 공물을 잔뜩 실은 마차를 끌고 올라 다녔을 것 상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갈 정도이다. 파르나소스산의 비탈에 지어진 타운과 고대 유적지는 3,0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경이로운 곳이다.
델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2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게 했더니, 2마리의 독수리가 델피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지점은 돌멩이로 표시되어 있고 그리스인들은 그 돌을 옴팔로스(세계의 중앙)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 델피는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 신에 대한 숭배의 센터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아폴로와 관련짓기 이전부터 지구의 여신 게(Ge), 테미스(Themis), 데메터(Demeter) 그리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등과 같은 신들을 숭배하는 성역이었다. 미케네 시대의 말엽에 아폴로가 이러한 신들을 대신하였으며 신탁(Oracle)의 수호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설에 따르면 델피에 있는 이 신탁소는 원래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것이었고, 거대한 뱀인 가이아의 아들 피톤이 이곳을 지켰으나 나중에 아폴론이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탁소를 세웠다고 한다. 발굴 결과 델피에는 미케네 문명 말기(BC 14세기)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델피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BC 6세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BC 590년경 제1차 신성전쟁이 일어나 델피 순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고 있던 델피 근처의 크리사시를 파괴하고, 자유롭게 델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델피는 인보동맹(隣保同盟)에 가담해 중심역할을 했고, BC 582년부터 재개된 범국가적 제전 피티아 경기를 4년마다 개최했다. 이무렵 델피 신탁소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사사로운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델피 신탁소의 조언을 청했으며, 이 신탁이 국가정책을 바꾼 경우도 많았다. 델피 신탁의 명성이 자자하여 성역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공물을 갖다 바치는 국제적인 센터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지역이 부가 성장함에 따라 델피는 독립 국가로 발전하게 되어 귀족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 본토에서 해외로 식민단을 내보낼 때에도 반드시 델피의 신탁을 들었는데, 이곳의 명성은 그리스어권 지역 전체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BC 356~346년에는 포키스인들이 강제로 이곳을 점령하고 신전의 보물을 빼앗았다가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에게 쫓겨났다. 그뒤 로마 시대 초기에도 종종 약탈당했는데 네로 황제가 델피 근처에서 조상(彫像) 500개를 빼앗아갔다는 말도 있다.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이 유서 깊은 이교의 성지 델피는 쇠락했다. AD 4세기 중엽 그리스도교를 반대한 황제 배교자 율리아누스가 델피 신전을 복구하려 했지만 델피의 신탁은 황제의 열성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사라져버린 옛 영광을 한탄할 뿐이었다.
우리는 델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이 델피박물관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전에 델피의 역사를 먼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곳으로, 이곳의 귀중품은 규모 면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귀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로마시대 까지 델피에서 출토된 모든 유물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 못지않게 중요한 전시물이 많다고한다. 규모는 작지만 청동제품, 동상, 수많은 조각, 시시안과 아테네의 보고에 새겨져 있던 메토프(Metope;지붕 아래의 사각 벽면 조각), 안티노우스의 대리석 동상 등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나타내는 훌륭한 유물들이 많다.
가장 유명하고 인상 깊은 전시품은 실물 크기의 「전차 모는 사람」으로 알려진 청동 조각상으로 중앙 복도 맨 끝에 자리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머리에 승자의 머리띠를 매고, 그의 눈은 에나멜과 색깔 있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BC 475년 시칠리아의 황태자 폴리제로스가 파티아 경기에서의 유명한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상은 1896년 발굴 당시 출토되었다. 실물 크기의 이 동상은 머리가 너무 크지만, 이는 조각가가 작품의 균형을 고려하여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동상은 원래 전차 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밑에서 올려다 봐야 했기 때문이다.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갔을 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우뚝솟은 콧날과 두툼한 입술, 뒤얽힌 고삐를 잡고 있는 팔과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눈동자는 경주자의 긴장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작품은 나시안 스핑크스(Sphinx of the Naxians)이다. 낙소스 섬에서 만들어져 델피 성역에 바쳐진 나시안 스핑크스는 12.10m의 이오니아식 기단 위에, 스핑크스 자체의 크기는 2.32m에 달한다. 스핑크스의 얼굴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가슴과 날개는 새, 몸체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전시품은 「세 무희」로 알려진 조각품으로 파티아가 예언을 하기 위해 앉던 삼각대의 받침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지구의 배꼽으로 알려진 옴파로스(Omphalos)라 불리는 원추형 대리석, 아폴로 신전 아래쪽에서 수습된 낙소스의 스핑크스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델피 박물관엔 각 지역에서 신탁을 받으러 오면서 바친 봉물로 가득하다. 에게해의 낙소스 섬에서 바친 스핑크스 상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한 도시였던 아르고스에서 바친 쿠로스 상이다. 쿠로스는 청년나체입상을 말한다. 그당시 신탁을 받는 무녀를 피티아라고 하는데 당연히 높은 지위와 부를 누렸다. 피티아들이 걸쳤을 금으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들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전성기 시절의 델피 모습을 복원한 상상도를 볼 수 있는데 하나의 신전일 뿐인데도 거의 도시 규모에 버금갈 정도이니 당대의 명성과 부유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델피 유적지에는 19세기말까지 카스트리라는 근대적인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마을이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델피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1892년에 시작한 발굴로 고대 성지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2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의해 각 폐허들이 어떤 건축물의 유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한다.
박물관에서 나와 우리 일행은 신전터로 걸어 올라갔다. 신전 올라가는 길에는 제법 넓은 참배로가 되어 있었고, 신전이 있는 성소는 거의 장방형에 가까운 넓은 공터로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신성한 길이 성소를 구불구불 돌아 아폴론 신전까지 뻗어 있으며 길 양 옆에는 각 도시국가들이 신탁의 대가로 헌상한 봉납기념비와 보물창고들이 들어서 있었다. 기념비들은 아폴론 신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국가나 개인이 세운 봉헌물이었다. 델피에는 몇 개의 보물창고가 있다. 사진은 아테네가 마라톤 전쟁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한 후 이에 감사하며 아폴론 신에게 바친 보물을 모아둔 창고이다. 여기서 지구의 중심을 표현한 옴파로스를 볼 수 있다. 옴파로스(배꼽Omphalos)는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있었던 부조 네트워크가 조각된 대리석 원추체(圓錐體)이다. 고대의 델피는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되었으며, 천국과 지상이 만나는 곳으로 생각되어졌다. 옴파로스가 이 중심을 나타내 주는 조각물이다. 이곳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한다.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소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현존하는 유적은 BC 4세기에 세워진 길이가 60m, 폭이 23m에 38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건물을 떠받친 웅장한 신전이었다. 지금은 신전 중 일부로 주춧돌과 몇 개의 계단, 둥근 기둥들만이 남아 있다. 신전 터에 쌓인 돌들에는 아폴로 신께 바치는 글들이 헬라어로 깨알같이 새겨져 있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아폴론 신상과 옴파로스 돌이 있고, 바로 그 곳에서 무녀인 피티아에게 신탁이 전해졌다. 신탁은 지하에서 올라온 가스를 마신 몽롱한 환각상태에 빠진 무녀를 통해 말이나, 노래, 행동으로 나왔고, 이를 번역해서 신탁의뢰인에게 최종 전달하는 신관이 있었다한다. 대개는 시구 형태로 정리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신탁이 많았으나 그런대로 그 당시 사람들은 만족해 했다한다. 이천 오백년 전 당시 그리스 여러 도시의 이름난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자신의 운명을 묻고 답을 얻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미래는 신을 통해 알 수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얻는 신탁에 따라 전쟁에서 이길 수도 그리고 질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사제들이 주는 모호한 답이었지만 나중에 결과가 중요시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상상된다. 델피의 신탁이 유명세를 탄 것은 오이디푸스가 끔찍한 예언이 들어맞으면서부터이라고 한다.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낸 복채를 쌓아두는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그때의 상황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폴론 신전터의 기둥은 마치 맷돌처럼 둥근 돌을 층층히 쌓아 올려 만든 점이 매우 독특해 보였습니다. 신탁소는 신전 뒤에 있는 작은 방 안에 있었다. 그 자리에는 그보다 먼저 2개의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BC 600년경에 세워진 첫번째 아폴론 신전은 BC 548년에 불타버렸고 당시의 유적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고대 기둥머리 몇 개와 벽돌 덩어리들이다. BC 6세기말에 세워진 2번째 아폴론 신전의 유적으로는 많은 벽돌 덩어리와 페디멘트를 장식했던 조각품 몇 개가 남아 있다. 신전은 전실, 내실, 후실로 나누어 전형적인 신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전실 벽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기록 되어 있어 이미 소크라데스이전부터 당시 사람들의 생활규범으로 이 말을 인용된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보물창고들 가운데 아테네의 보물을 넣어 두던 창고는 유적에 남아 있던 건축자재로 고스란히 다시 지어졌는데, 그 벽에는 유명한 아폴론 찬가의 악보가 새겨져 있었다. 신전 위쪽으로는 역시 기원전 4세기 경에 만들어진 5,000여 명을 수용했던 원형 극장이 있는데, 지금도 여름마다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지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원형극장으로 에피다우루스에 있는 원형극장에 버금가는 그리이스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2세기 후에 로마인들이 부분적으로 보수를 하였으며, 가장 앞좌석은 사제들이 앉던 자리라고 한다. 유적지에서 가장 위쪽까지 힘들게 올라가면 4년마다 운동경기가 열린 피디아 스타디움을 볼 수 있다. 트랙 길이가 178m되는 경기장이 있다. 기원전 586년부터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인 피디아 경기가 열려 4년마다 모든 그리스 세계에서 온 운동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었다고 한다. 경기의 승자는, 피톤의 살해를 재현했던 소년이 템피 계곡의 월계수를 잘라와 그 월계관을 쓰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 옆의 카스탈리아 샘은 신전에 가기 전 신관과 무녀, 순례자들이 목욕재계를 했던 곳이다.
델피 신전에서 나와 500m 정도 길을 따라 가면 톨로스 신전이 나온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신전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톨로스는 원형신전이란 뜻이다. 사실 그리스의 대부분의 신전은 장방형 형태로 원형은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이곳은 아폴론 신 이전에 델피에서 모시던 가이아 신전터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어찌됐든 톨로스 신전은 그리스 관련 책자에 빠짐없이 사진으로 소개될 만큼 무척 아름답다. 여기서 모든 그리이스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3시간에 걸쳐 아테네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중 들른 그리이스식당...시킨 음식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생소하지만 푸짐한게 그래도 먹을만 했다. 저녁 아테네공항에서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탄후 다시 이스탄불에 도착 그저께 묶었던 호텔에서 3일째 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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