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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 여행기 1 :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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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우리는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짐을 싼 후 호텔에서 챙겨주는 아침도시락을 가지고 8시에 출발하는 그리이스 아테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서둘러 이스탄불공항으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1시간반 걸려 도착한 그리이스 과거의 영광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아테네..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났더니 우선 아침식사가 허술하니 그리이스 전통식당을 찾아 식사를 한 후 아테네투어에 들어가자고 한다. Svejka라는 식당에서 수블라키라는 그리이스전통음식을 시켰는데 오이, 토마토, 올리브 치즈, 양파 등의 야채샐러드와 빵, 돼지고기볶음, 양꼬치구이, 감자튀김이 어울려 우리 입맛에 맞는 것 같았다. 식사하고 나오는데 주인이 나보고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물어본다. 자기는 슬로바키아사람이라 하며 고풍스런 장식과 오래된 옛 물건들, 그리고 식당안에 걸린 사진들을 보여준다. 나도 몇 년 전에 체코 프라하에 갔었던 얘기를 했더니 참 반가워하였다. 그리이스는 그나라의 역사와 모든 흥망성쇠가 모두 신화로 이루어진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아테네는 그리이스의 수도이며 2500년전 고대 그리이스 도시국가의 맹주로서 번영을 누린 도시이다. 아테네라는 이름은 수호신의 여신 아테네 또는 아타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아테네의 곳곳에 보이는 당시의 유적은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명상과 평온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유적들이다. 메인스트리트인 파네피스미우 거리에는 근대적인 고층 고층빌딩이 줄지어 서있다. 그런가하면 시내 곳곳에는 중세의 비잔틴 건물도 남아있어 고대와 중세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가이드 말이 실제로 아테네 도시전체 땅 속 곳곳에선 고대 유적들로 깔려있다고 한다. 지하철이나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보다 보면 고대 유적이 나오는 일이 즐비하다고 한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치하에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아테네를 떠났다가 독립 후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건물을 짓다보니 제대로 발굴할 겨를도 없이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 유적이 땅 밑에 묻혀 버렸다한다.
우리가 아테네에서 처음 찾은 곳은 아크로폴리스이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언덕 위의 도시"라는 뜻으로 고대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는 성역이자 폴리스(도시국가)방위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 같은 수많은 폴리스(도시국가)의 집합체였다고 한다. 왜 그리스가 폴리스의 형태로 발전했는지는 전역을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스엔 정말 산이 많기에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려면 몇개의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다. 교통과 도로가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 시절엔 이 산 하나가 자연스럽게 넘기 힘든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 산과 산사이의 평지엔 국가 하나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으리라 판단된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높은 언덕을 중심으로 두고 발전했다고 한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아 늘 방어의 개념을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높은 언덕이 바로 폴리스이다. 그러다 폴리스가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도시국가내의 언덕엔 아크로(높은이라는 뜻의 형용사)가 붙어 아크로폴리스가 되었다고 한다. 즉, 이 말은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에만 있던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각 도시국가들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이곳에 방어를 위한 요새를 구축하고 그들이 모시는 가장 중요한 신전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지금의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것만을 뜻한다. 우리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에 가기 전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올랐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선 특히 아크로폴리스의 전경이 아주 멋지게 보인다. 정말 요새처럼 지어진 아크로폴리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레오파고스 언덕이다. 바위(석회암)로 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니 좌측으로는 헤파이스투스 신전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고대 아고라 안의 건축물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우측 바로 아래에는 바울(Paul)을 위한 작은 교회가 아주 정겨웠으며, 시내 전역을 조망할 수 있었다. 로마에도 여러 언덕이 있듯이, 아테네에도 이 언덕 이외에 아크로폴리스, 페닉스(Phyx), 필로파푸스, 니카바토스언덕 등 언덕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이곳에서 토론도 하고 때로는 대법원 대법정(소크라테스가 이곳에서 사형 받음)이 되기도 하였다한다 . 밑에 사진 오른쪽으론 이를 기념하는 현판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곳은 기독교인들에겐 사도 바울이 그리스 철학자들과 논쟁하며 복음을 전파한 곳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언덕에 올랐는지 잘못 디디면 미끄러질 정도로 계단이 정말 거울처럼 반들반들하다.
아크로폴리스 들어서면 아래로 두개의 극장이 보인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과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것이다. 이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161년에 건축되었다한다. 지금은 거대한 음악당의 앞 쪽 벽면만 남아 있다. 이 음악당은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여름엔 자주 오페라와 콘서트, 연극 등이 열리는 데 음악당 전체로 울려 퍼지는 사운드가 일품이어서 당시의 설계가 굉장한 수준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엔 6천석 규모의 청중석이 마련되어 있는 데 좌석은 공연을 위해 근래 새로 만든 것입니다. 요즘에도 현대적인 공연이 열리곤 한다. 그 유명한 Yanni의 <아크로폴리스공연>이 이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에서 열렸고 성악가 조수미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 반원형의 음악당은 그리스 아테네에 실존했던 학문, 예술의 수호자인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사람은 아주 부자였는데 죽은 아내를 기리며 이 음악당을 기증했다고 한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동쪽의 벼랑 밑에 펼쳐진 디오니소스극장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B.C.6세기에 만들어진 이 극장은 당시에 1만 7000여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최고의 것으로, 관람객 수용 인원은 1만 4000명에 이른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애스킬루스와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의 비극들과 아리스 토파네스의 희극들이 처음으로 공연된 유서 깊은 극장이다. 현재 조금씩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극장 이름은 술과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에서 따온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는 인도까지 가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그 당시에 이미 인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아크로폴리스의 핵심인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보려고 이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지나게 되는 건물인 프로필레아(정문)중앙을 통과하여야한다. 왼쪽편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문이 있다. 여기를 통과하여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처음 마주치게 되는 것이 내가 다니던 중,고 시절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무수히 봐왔던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최정상에 있는 도리아식의 이 신전은 기원전 447년부터 432년 15년에 걸쳐 페리클레스에 시대 천재조각가로 불렸던 피아디아스가 감독, 조각품을 만들었고 건축가 익티노스와 깔리크라데스가 설계해 완성했다. 현재 UNESCO 고적 1호...기둥이 46개이며 도리아양식으로 지어진 세계적인 건물로 힘과 무게를 지닌 원주는 고전 형태 최고의 완성미를 자랑하며, 거의 2,500년 동안이나 서구 건축(시민정신, 종교, 개인주의)의 모델이자 원형이 되고 있다. 고대 아테네가 몰락한 이후로 파르테논은 처음에 아테네의 여신에게 바쳐졌다가 많은 변모를 거치게 된다. 기원 450년에는 기독교에 의해 교회로 봉납되었다가 1458년에는 터키에 의해 모스크(파르테논 안쪽 첨탑의 원형 계단에서 지금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볼 수 없다)로 전환되기도 했다. 1687년 에는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를 침략해 터키가 장악하고 있던 화약저장소를 파괴하였으며, 1820년에는 이곳에서 그리스와 터키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아크로폴리스 주변의 많은 신전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파르테논'은 기둥이 46개로 완벽한 조형미와 석주 하나하나, 지붕과 모서리조차 기하학적인 곡선 예술로 승화되어 있다. 이곳은 수호신 '아테나'를 모신 신전으로 '처녀의 집'이라고 불리지만 다소 남성적이며 중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처녀의 집이라는 의미로 천정 상단에 헤라클레스의 용맹스러운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사각 모서리 기둥에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샤를 정복하고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다. 가로 30.88m, 세로 69.5m, 기둥의 높이 10.43m, 기둥의 직경은 아래부터 1.90m, 머리 부분은 1.45m다. 눈의 착각을 수정하기 위해 안쪽으로 기운 듯이 건축되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래에서 위로 넓어지는 듯이 보였을 동쪽 경사면은 제우스의 머리 위로 아테네가 탄생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서쪽에는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아테카의 소유에 관해 논쟁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모두 아테네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큰 싸움을 우려한 제우스는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두 신에게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다 더 유익한 선물을 하는 쪽이 아테네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주무기인 삼지창을 땅에 찔러 샘물이 솟게 했고, 이를 본 아테나는 그 옆에 올리브 나무를 심어 열매를 자라게 했다. 신들과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결국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의 차지가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아테네가 되었고,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나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해 모시게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매력은 육중한 기둥에 있다. 총 46개의 기둥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데 각각 높이가 10m에 기둥 둘레가 2m나 된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38년에 완성되었으며, 이 육중한 기둥이 2500여년의 세월을 떠받쳐온 것이다. 하지만 2500년을 견뎌오는 동안 많이 부식되어 이곳저곳 끝도 없는 보수 공사로 유지되고 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보수 공사는 파르테논 신전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월과 역사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6명의 소녀가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볼 수 있다. 이오니아양식의 작은 신전으로 아테네가 올리브를 싹트게 하자 신들이 아테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그 장소이라고 한다. 규모는 작지만 참 기품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소녀상은 모조품이다. 진품은 아크로폴리스내의 박물관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파르테논신전과 에레크테이온신전을 뒤로 하고 아크로폴리스 남쪽언덕에 서면 아테네 시내전경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리카비토스 언덕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는데 특히 이곳에서 보는 아테네 야경이 볼만하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에는 빨간 지붕 건물들이 밀집한 플라카 지구가 있다. 대부분은 19세기에 지어진 집들이다. 하지만 플라카 지구를 경계로 나머지 부분의 아테네는 모두 현대 건물들이다. 그것도 공원 하나 없이 건물들로만 빽빽하게 차 있다. 바로 이런 모습에 고풍스런 고대도시를 연상하고 온 여행자들은 아테네에 대해 실망하지만 볼거리들은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여기서 제우스 신전도 멀리 내려다보인다.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515년에 착공되었지만 실제로 완공된 건 2세기의 로마 시대 때이라고 한다. 원래는 최고의 신을 모시는 신전답게 104개의 육중한 코린트식 기둥이 떠받치는 거대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15개만이 남아 있다.
여기 아크로폴리스에서의 아쉬움을 벗어버리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가이드가 길 한편의 작은 숲속으로 안내하는데 여기가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기 직전 있었던 감옥이라한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후 이곳에 억류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 감옥이 있는데 실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리스 정부 또한 오랫동안 근거 없는 설이라고 부정해 오다 최근 들어서야 이곳에 "소크라테스 감옥"이라는 안내 팻말을 붙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로 당시 '신에 대하여 불경건하며 청년을 타락시킨다' 라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재판 받을 때 배심원이 500명중에 280명이 유죄 판결을 내리고 변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내가 아고라에서 교육을 했는데 나에게 이럴 수 가 있느냐며 ‘죄가 없다’고 버티다가, 추방해도 될 문제를 본인의 고집으로 인하여 360명이 사형을 찬성해서 감옥으로 갔답니다. 사실 탈출하여 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런 기회들을 모두 거절하였고, 특히 소크라테스의 가장 걸출한 제자 '플라톤'이 돈으로 소크라테스를 구할 수 있었으나 소크라테스는 '내가 평생 아테네 시민으로써 아테네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잘 살았는데 나한테 불리하다고해서 이를 어기고 탈출하면 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이를 거절하고 끝내 독배를 마셨다고 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며, 여기에서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해가 지기 전에 일찍 사약을 받아먹고는 혈액 순환이 빨리 되도록 감옥에서 이리 저리 걸어 다니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를 불러 아스크리피스(의술의신) 에게 닭 한 마리 빚졌는데 갚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가운데 방이 소크라테스가 갇혀있는 방이라고 하며,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를 받을 때 감옥으로 이용 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 관광을 마친 우리는 아테네시내를 돌면서 근대올림픽경기장으로 향했다. 버스로 시내를 통과하면서 특이하게 가로수가 우리나라와 달리 뽕나무,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들로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좁은 도로에 승용차, 전차, 버스와 그리고 사람들로 붐비는 교통지옥 같은 모습 그대로였으며, 옛문명과 현대문명이 함께 어울러진 거리의 모습이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1896년 제1회 국제올림픽경기가 열렸던 경기장... 신타그마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원래는 일리소스(Ilissos)강을 끼고 아그라(Agra)계곡과 아르데토스(Ardettos)계곡 사이에 자연스런 홈이 나 있어 이것을 스타디움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BC330~329년에 리코우르고스(Lykourgos)에 의해 '위대한 판 아테나 축제(Great Panathinaea Festivities)'의 운동 경기를 위한 스타디움으로 변형되었다. 그후 AD140~144년 사이에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에 의해 스타디움이 복원되었는데, 이것이 1870년에 발굴된 현재의 모습이다. 즉 길이 204.07m, 넓이 33.35m의 말발굽모양 구조이다. 약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스타디움이 투기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는 19세기 말엽에 애버로프(G.Averof)에 의해 스타디움이 복원되었는데, 1896년에 부활된 최초의 올림픽게임이 여기에서 개최되었다. 1896년 올림픽대회에서는 첫번째 마라톤대회가 거행되었다. BC 490년 적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페이디피데스가 달렸던 그 길을 선수들이 다시 달리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그리스의 목동 스피로스 루이스가 우승했는데 그는 이 우승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경기장 안에는 역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도시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역대 올림픽위원회의 위원장 이름이 적힌 비석이 있다. 경기장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동상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근데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의 동상인줄 알았는데 이 경기장복원하는데 많은 기증을 한 그리이스 부호 애버로프 동상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인증샷정도로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곳을 나와 그리이스 국회의사당, 무명용사의 묘와 의사당 근위대의 모습을 보려고 이동하는데 차가 막혀 움직이질 못한다. 이유를 알아본즉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데모가 일어나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다행히 길이 열려 의사당 앞에서 내리지 못하고 잠시 버스 차창 밖에서 보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덕에 피켓들고 데모하는 그리이스 군중을 볼 수도 있었지만...사실 여기 그리이스 오기 전에 뉴스로 의회에서 경제적 파탄을 모면하려 IMF구제금융 요청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과격한 시위를 본적이 있어 여기 오기전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죽기 살기로 데모하는 모습과는 달리 질서정연하게 경찰의 호위를 받아 평화적인 시위하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파업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내일 여객선으로 터키로 다시 가기로 하였으나 선원들의 파업으로 비행기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국회의사당은 1800년대 중반 도리아식의 대리석 기둥을 세워 고전적인 양식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초대 그리스 국왕이었던 오트의 왕궁이었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벽면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400여년이나 그리스를 지배해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독립전쟁과 그후 몇차례의 전쟁에서 숨진 무명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찾는 이유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이라고 한다. 우리는 군중데모로 볼 수 없었지만 매시 정각에 위병 교대식이 벌어지고, 일요일 11시에는 대규모 의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근위병 걸음걸이가 마치 장난감 병정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이스 첫날 관광을 마치고 그리이스 현지 한국식당인 VIP(귀빈)식당에서 모처럼의 한국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 근처에 예약된 호텔로 이동하여 숙소 베란다에서 다시한번 아크로폴리스 야경을 보며 그 모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테네에선 밤에 보는 아크로폴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늦은 시간까지 이처럼 환하게 조명을 비추는 데 낮과는 깊이가 다른 역사의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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