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덕바위
설악의 그 때 여름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찾아온 등산객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말이에요.
캠프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통키타에 맞춰 부르는 “꽃반지 끼고”의
여운 속에.........
흐르는 계곡 물가에 자리한 넓은 반석 위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숙명여대생인 그녀를 옆에 두고서.......
그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자수정 돌을 건네면서 말했어요.
“내가 자기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 수정 돌이 빛날 것이에요.
이 돌을 잘 간직하시고 나 본 듯이 해요.”
그녀가 애절하게 말했어요.
“우리 너무 아쉬워요. 내가 기다릴 수 있는데......”
군 입대를 앞두고 여름방학 때 설악산으로 추억여행을 떠났답니다.
대학생인 저와 고등학생인 아우와 단 둘이서........
남은 젊은 날에 가급적 추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조국의 부름에 응하게 되면 멋과 낭만도 다 부질없을 것만 같아서........
육군에 입대 날자가 연도 말 즈음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왕 군 생활을 하는 것 보다 야성적인 해병대를 자원하고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추억여행이 끝나면 8월 달 모병에 응모하기로…….
젊은 날의 멋과 낭만을 찾아서 그곳 설악에 갔던 것입니다.
법대를 고집하며 재수도 모자라 삼수를 하는 동안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 다소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인삼밭이 망해서 헐값에 넘긴 어머니를 졸라 여행비를 타냈지요.
다만 읍내 남녀 대학생들이 비지땀을 흘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마을로 봉사활동을 나와 무너진 축대를 다시 쌓느라고........
그녀와의 만남은 비룡 폭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보는 순간 금방 친해졌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많은 날을 서로 그리워한 연인처럼.......
이런 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한다지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저는 인연이란 것을 믿고 소중하게 생각한
답니다.
그녀와의 만남도 우연히 아니라 필연인 것 같았습니다.
둘이는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이랄까요?
아니면 귀족 같은 미모라고나 할까요?
그랬습니다.
그녀는 우아하고 미모가 돋보이는 귀족이었습니다.
말곁에 아버지가 동경제대 출신이라고 하데요.
그녀의 어머니도 아버지에 버금갔고요.
경성제대도 아닌 동경제대를 나온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일제 강점기 극소수의 선택된 수재들만이 갔다던데 말에요.
우리는 매일 만났습니다.
텐트는 아우보고 혼자 지키라고 했어요.
훗날 아우는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그 때를 “악몽의 여름휴가”라고
회상했더라고요.
그랬겠지요.
바람 난 형은 신이나 여행비는 혼자 다 쓰면서 돌아다녔으니…….
"그녀와 둘이서 어제는 낙산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았다."
"오늘은 비선대를 오를 것이고........."
"내일은 신흥사 오솔길을 꽃반지끼고 걸어야지......."
지루한 여름 날 텐트만 외롭게 지키면서 쉬어 터진 김치 쪽에 찬 밥만
먹고 있었을 테니 짜증도 났겠지요?
아무 곳도 가 본 곳이 없었으니.......
취미가 독서라는 그녀는 문학적 소양이 있었습니다.
교양도 풍부하였고요.
우리는 설악산 풀벌레 소리를 배경삼아 온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덱쥐베리의 “어린왕자”를 가슴 뭉클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어 황순원의 “소나기”로 화제를 돌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기도 했고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오데요.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안창호 선생도 아닌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해요."
"왜 하필이면 히틀러를 존경하세요?"
"광적인 자기신념과 초인적인 잔인성 때문이지요.
히틀러가 제 모델이에요. 한국의 히틀러가 되어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세상을 호령하고 싶어요."
당시 저도 무언가 마음이 병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희대의 살인마인 히틀러를 존경하다니…….
유태인들이 들었다면 귓싸데기 맞을 일이었습니다.
졸음에 겨워 그녀가 살포시 제 어깨에 머리를 맡겼습니다.
고교시절 국어책에 나오는 알퐁스 도오데의 “별”을 생각했습니다.
별나라 공주님이 오늘 밤 저를 의지하여 단 꿈을 꾸고 있다고…….
가만히 그녀의 섬섬옥수 같은 손을 잡고 체취를 맡아 보았어요.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장미꽃 내음이라고나 할까요?
갓 스물한 살 제 젊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내 사랑스런 여인의 숨결이 잔잔히 느껴져 왔습니다.
그 순간 순수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성(聖)스러움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별나라 공주를 지키는 씩씩한 흑기사의 순수함만이
있었을 뿐.......
사실 어려서는 화랑도를 숭상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기사도를 숭상하며 흑기사처럼 생각했고 행동해온
터였습니다.
기사 “아이반호”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숭상하고 보호하는 것은
기본으로 알았습니다.
약한 자를 보호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도 했고요.
그런 저를 제 친구들은 “돈키호테”라고도 불러 주었지요.
어떤 친구는 직설적으로 “골빈당 당수”라고도 했고요.
어쩌면 “골빈당 당수”라는 별명이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가만히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어리석음의 무질서라고나
할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답니다.
저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골빈당 당수”로 기억 할 것이니........
과거는 과거 일 뿐 남은 것은 현재와 미래 뿐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요.
남들이 저보고 "골빈당"이라고 부르던지 "골찬당"이라고 하던지
개의치 않습니다.
빗 보증하고 인감도장만 빌려 달라고 하지 않는다면 말에요.
물론 기왕에 부를 것 "골찬당"이라면 더욱 좋지만........
잠시 고교시절을 회상하다가 이야기가 벗어났습니다.
당초 8월 달에 응모키로 하였던 해병대 응모는 다음 달인 9월로
미루었습니다.
별나라 공주를 그냥 거기 두고 입대를 할 수는 없었기에 그랬어요.
그 동안 여행비는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별나라 공주와의 연애도 바닥나는 여행비 앞에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궁색함을 보일 수도 없었고요.
흑기사 체면이 있지, 안 그래요?
아우를 먼저 보냈습니다.
먼저 강화 집에 가서 설악동 우체국장 앞으로 통상환을 급히
보내라고 부탁하면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도 기다리는 통상환은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그날 마지막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 같았으면 현금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설악산 속에서 별다른 융통을 부릴 수 없더라고요.
물론 빌려온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는 이미 속초시내 전당포에
저당 잡혀 먹었고요.
콩팥이라도 누가 사 준다고 했으면 제 콩팥은 안 되고 아우
것이라도 우선 팔아 융통했으련만........
자수정 돌을 건네면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지요.
아무런 기약도 없이 아쉬웠지만…….
연락처를 달라는 그녀의 요청도 아랑 곳 없이 그냥 헤어졌습니다.
사실 연락처를 주려고 해도 줄 연락처가 없었어요.
전화가 귀하던 시절인지라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었습니다.
마을 이장 댁에 간첩이 출몰하면 신고하라고 설치해 준 수동식
전화가 한 대 있었을 뿐.........
이장 댁 행정연락망 전화번호를 알려 줄 수도 없었고요.
제가 백마 탄 왕자로서 기억되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임금님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었으니.........
다만 별나라 공주를 지키는 씩씩한 흑기사로서의 이미지는 온전히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세상 끝날 까지 설악산의 멋있었던 흑기사로서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지요.
아쉽고 애틋하였지만 "눈물의 씨앗"을 잉태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총기 들고 탈영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말에요.
9월 달 해병대 모병에 응하고자 하였습니다.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되는 관계로 인해 9월 달 모병이 없었습니다.
이후 모병도 기약이 없더라고요.
육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새벽기도에 하늘이 응답하신 것 같았습니다.
수경사 청와대 근위부대에 배속되었지요.
각하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드리는 군 생활을 무난히 마쳤습니다.
아주 훗날 얼핏 들었어요.
그해 8월 달 마지막 해병 기수가 훈련 중 사망자가 발생하는
큰 사고가 있었답니다.
제가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응모코자 한 그 해병 기수가 말입니다.
그녀는 정녕 하늘이 제게 보내 주셨던 수호천사였는지도 모릅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지난 젊은 날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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