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누룬치기
본문
아기들의 기저귀를 채우던 노란 통 고무줄이 생기면 신이 나지요. 왜냐면 당시에 아주 귀한 생 고무줄이었지요. 젖먹이 동생들이 있는 애들은 구하기 용이하고요. 그렇지 않고 팬티에 쓰던 검정 고무줄을 대용으로 쓰면 탄성이 너무 형편없어... 우선 뜰 앞의 나무들을 뒤져 같은 굵기로 두 팔 벌려 올라가는 작은 나뭇가지를 손잡이까지 염두에 두고 자릅니다. 엄마가 쓰시던 부엌칼로 끝을 다듬고 촛불에 벌어진 나뭇가지를 그을려 적당하게 안으로 휩니다.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리고 아버지께서 학교에 계신 틈을 타 여분의 아버지 허리띠를 야금야금 잘라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어 조그만 돌멩이를 감싸 날릴 집을 만들고 통 고무질을 끊어 양 귀퉁이에 달아 실로 총총 감습니다. 이윽고 누룬치기 틀에 탄력의 통 고무줄을 매달면 훌륭한 새총놀이가 시작됩니다. 참새도 겨누어 보고 심지어 모이를 쪼는 닭도 겨냥합니다. 까치는 길조라고 어른들이 말씀해 봐주지요. 돌멩이를 담아 함부로 쏘아 봅니다. 그러다가 그만 동네우물에서 엉덩이를 씰룩이며 물을 길어가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물동이를 맞춰 난리가 납니다. 구멍 난 물동이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저 애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쯧쯧..” 비난의 소리도 듣고... 물동이 값도 물어줘야 하고... 이제 저녁이면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을 차례입니다. 납작한 자인데 최소한 다섯 대입니다.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질 때도 아버지께서 그걸로 종아리를 치십니다. 아버지와 동갑내기이신 교장선생님의 아들이자 제 친구에게 져도 매를...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셨다가 복직하는 바람에 그 분보다 승진이 늦다고 어머니께서 일전에 말씀하시는 것을 얼핏 엿들었어요. 오늘도 누룬치기를 들고 욕골산으로 새 사냥을 떠납니다. 나무에서 즐겁게 뛰놀던 새들이 금세 숨을 죽입니다. “모두다 입!”입니다. 허리를 굽혀 조심스레 나뭇잎 사이를 살핍니다. 산비둘기 한마리가 눈을 끔뻑이며 앉아 비웃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왼손잡이라 오른 눈을 감고 산비둘기를 겨냥한 다음 힘껏 고무줄을 당겼는데 그만 실로 맨 고무줄이 풀리며 제 오른 눈을 때립니다. 순간 통증으로 눈알이 빠지는 것 같군요. 눈을 감싸고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릅니다. 다행이 눈두덩이만 벌겋게 부어오르고 눈동자는 멀쩡합니다. 빈손으로 산을 터벅거리며 내려갑니다. 산비둘기가 제 뒤통수에 대고 “구구” 소리 내어 비웃습니다. 산비둘기가 저를 잡습니다. 분한 마음에 땅을 냅다 걷어차다 돌 뿌리만 찹니다. 신발의 앞 귀퉁이는 영문도 모른 체 입을 벌려 원망하고... 엄지발가락은 못살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고! 아파!” 다음날 아침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간 아버지의 허리띠를 누룬치기 만들려 야금야금 축낸 것이 문제가 되었군요. 자꾸 허리춤이 풀리는 것을 이상히 여기신 아버지의 추궁이 시작됩니다. “너냐? 아니면 너?” 동생은 아니라고 펄쩍펄쩍 뜁니다. 그때서야 제가 바르르 떨며 이실직고합니다. 당신이 아끼는 물건에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분이십니다. “너는 겨울에 갈퀴 살로 연 만든다고 다 작살내더니 이제는...” 크게 호통을 치셨지만 학교출근길이라 너그러이 봐주십니다. 제 누룬치기는 아버지께서 아끼시던 허리띠의 부산물이지요. 이 또한 어린 날의 추억이랍니다. 새총놀이 누룬치기 다 아시죠? |
댓글목록 0
차안수님의 댓글
누룬치기는 개나리 나무가지로 만들면 탄력이 진짜 좋았었는데...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선배님 안녕하시죠?
윤인문님의 댓글
나도 소시적 누룬치기로 참새 많이 잡았는데...항상 옛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용혁후배가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