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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에 피어나는 연세많은 여인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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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에 피어나는 연세많은 여인의 사랑 !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살면서 공기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비가 가져다주는 목마름의 갈증도 소중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상념이라는 끝없는 공간의 블랙홀(black hole)에 빠져 공간의 가장자리에 놓여 한동안 바보로 있지만, 보일까 말까한 여명의 빛에 단잠을 깬다.
한줄기 소나기가 산자락을 요동치면 불연 듯 피어올라 희뿌연 안개 낀 연무가 산을 휘감아 용틀임하듯, 심연의 밭 깊숙이 숨겨놓은 먼지 쌓인 보고에서 툭툭 먼지를 털고 한 아름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보따리가 줄기줄기 이어져 우수(雨水)에 젖을 수 있어서 좋다.
아픔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새싹 움틔우듯 슬며시 솟아오른 먼지 쌓인 보고에 비 오는 날이면 유독 나를 가슴 저미게 하는 일이 있다.
오래 전에 충주댐이 건설되고 충주일원이 산업화를 이루어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너무도 많이 오염되고 변화되었지만,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가슴 깊은 사고는 오염되지 않고 안개처럼 피어올라 홀연히 나를 깨워 깊은 공감대속에 동화를 엮는다.
추억을 뒤로하고 지금도 시간이 허여할 때, 명절 때, 할머니, 할아버지, 조상님들의 묘소를 가끔 둘러보면서 오고 가는 곳 충주 목행동.
제천 방향으로 충주역 다음에 목행역이 있는데, 사실은 간이역이다.
당시에는 완행열차는 물론이고 급행열차도 잠시 멈추는 중요한 간이역이다.
가치의 필요충분조건에 의하여 산업파수꾼들과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충주비료공장 때문에 탄생된 역이다.
그 목행역 바로 앞,
충주댐에서 조금 내려와 충주비료공장이 자리하는 바로 앞 남한강 줄기 냇가,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고 세수하러 나가던 곳,
그곳에 참으로 버릇이 없고 철이 없었던 아이 하나가 있었다.
아이 할머니 슬하에 손자가 여럿 있었지만,
아이는 할머니가 제일로 믿고 의지하던 큰아들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종가 집 장손이라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감투 덕분에,
삼촌을 포함 고모들 앞에서도 할머니의 든든한 지원(빽?)으로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던 아주 철이 없던 아이였다.
작금의 현실에 종종 아이는 어머니와 고모들, 삼촌들과 지나간 추억담을 얘기한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가 종가 집 장손이라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젖먹이는 것 말고는 “어머니로서 아이에게 아무런 역할도 없었다.”한다.
젖을 물리고 난 후에 어머니는 밭일과 집안일에 내 몰리고, 그렇다고 할머니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란다.
지금의 젊은이들 정서에는 이해를 구하기 어렵고 추억의 지푸라기 한 올 엮을 수 없는 지난날의 잊지 못할 추억동화다.
할머니는 힘이 장사고 또 훨훨 날아다닐 정도로 몸도 마음도 빨라 아이 어머니는 지금도 당시의 처절한 시집살이 얘기에 절절 몸을 가누질 못하는 듯 들썩 들썩 하면서도 지난시절의 추억에 흥을 돋워 감칠 맛나게 얘기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 놓는다.
아이의 하루 일과는 할머니 등에서 잠을 청하고 잠을 자고, 할머니 치마폭에서 일어나고 밥 먹고,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고 할머니가 돌보는 가운데 할머니가 보물단지 모시듯 키웠단다.
할머니가 무서워 삼촌들도, 고모들도, 존중(?)해주고 업어주고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며, “비위 아닌 비위를 맞춰주었다.”하니까 참으로 우스운 얘기다.
단지 아이에게 무서운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 애 아버지는 당시 작지 않은 172㎠ 키로 힘이 무척 좋은 장사였단다.
17-18세의 청소년 시절부터 충주일원에서 누구도 아버지와 씨름을 해서 이겨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사이면서도 무척 날렵하였단다.
현재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연세임에도 1㎜의 배도 나오지 않은 젊은 시절의 몸 그대로이며, 아버지의 아들 둘이 힘을 모아도 역부족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양반이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마는 사리분별력이 정확한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구리 뻗듯 고자리에서 쪽 뻗어도 지게작대기를 그대로 아이의 머리에 내려치는 바로 호랑이 아버지였단다.
그런 아버지 말고는 집안에서 눈을 까뒤집고 봐도 무서울 것이 없는 아이였단다.
그 시대의 할머니들이 다반사 그러하시겠지만, 유독 할머니의 품안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온 아이였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할머니의 운명을 지켜보지 못한 아이는 할머니와 쌓이고 쌓인 추억이 너무도 많아 아쉬움에 눈물 젖는다.
많은 추억 중에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는 더더욱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하며, 몹시도 아쉬움을 토로할 때가 많다.
여느 장마처럼 아침부터 비가 질척질척 무척이나 많이 내리던 어는 여름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2-3시경쯤 되었나 싶다.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넋이 나가고, 낙수에 떨어져 골 파인 물길 따라 동그랗게 몽골몽골 졸졸졸 내려가는 물방울에 한껏 재미 붙여 툇마루에 앉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혼자 중얼중얼 잘 놀던 아이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앞 동네 마당에서 친구들과 구술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전쟁놀이, 기마전 놀이, 도마뱀 화살 쏘기, 개구리 잡기, 매미잡기, 잠자리 잡기, 여자아이 고무줄놀이 훼방놓기 등 하고 싶은 것 마음껏 놀 수 있었을 텐데, 며칠째 주저리주저리 비가 오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몸이 비비 근질근질 꼬여있는 상태다.
처마 밑 낙수 물 놀이도 지쳐갈 무렵 여름장마에 잠깐 쨍하고 햇볕이 처마를 돌아 앞마당을 감돈다.
“어, 비가 안 오네. 야호!” 환호성 속에 아이는 벌떡 일어나 두 주먹으로 허공을 몇 번 가르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삐쭉 삐죽 할머니에게 다가가 뭔가 귓속말을 한다.
이내 할머니가 “안 된다.” 하신다.
“안 된다.”는 할머니 말에 쾡 하던 아이.
다시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한번만 - - -.”
“이놈아! 너 지난번에도 할미한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지?”
“할머니! 이번엔 진짜야, 딱, 한번만 주라?” “한번만, 엉?”
“요놈아! 체라는 체는 네가 다 가져다 절단 내놓고 할미는 어떡하라는 거야, 욘석아!”
“요번엔, 안 망가트리고 살살 쓰고 가지고 올게, 응,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뒷들 처마 끝에 3개나 있어, 새것도 있던데- - -.”
“글쎄, 이제는 안돼요.”
“아 -씨, 할머니 정말 안 돼?”
“그래, 이제는 안 된다.”
아이는 “알았어.” 대답하고는 처마에서 검정고무신도 신지 않은 채 질척질척한 마당으로 냅다 뛰어 내려간다.
할머니 깜짝 놀라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이내 마당을 쫓아 내려가 끌어안고 올라온다.
“이놈아! 신발을 신어야지, 발에 뭐 찔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기여?”
아이는 할머니 팔을 뿌리치고 이내 또 마당을 향해 내려가 이번에는 제법 비상하게 눈을 쏘아보며 엄포를 놓는다.
“할머니! 동그란 체 안주면 나 바닥에 두러 누-ㄹ 거야.” “에이, 씨-ㅇ”
“할머니가 알아서 해!” “씨-ㅇ"
할머니 이내 더 이상 채근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만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리와 신발 신어라. 어서?”
아이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짝팔짝 뛰면서, “할머니!” “야호!”
“할머니! 내가 고기 빨리 많이 잡아갖고 체 얼른 같다 줄께 - - -.”
“진짜야, 지금 막 비가 그쳤으니까, 지금가면 고기 금방 잡아.”
“내가 체도 물에 씻어다 줄게.” 알았지?”
“알았다. 얼른 갔다, 와.”라는 할머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날 다람쥐처럼 고기 담을 물통 하나 집어 들고 벌써 대문을 지나 냇가로 향하고 있었다.
얇은 나무로 동그랗게 쳇바퀴를 만들어 말총, 철사 등을 엮어 곡식을 어를 때 쓰는 둥근 체야 말로 가난하기 그지없던 시골집에서 할머니 손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이가 알았을까?
당신은 못 입고, 못 먹고, 잠을 못 주무시더라도 아이만을 위하여 생활하신 할머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꼬깃꼬깃 쌈지 춤에 넣었다가 다른 손자가 보든 말든 쪼로록 아이에게 달려가 입에 소-옥 넣어주시던 할머니다.
바로 밑에 남동생을 걸려서 학교를 보내면서도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할머니 등에 업혀서 학교를 다녔으니 무슨 말이 필요 하겠는가?
내 삶을 되돌아봐도 “자식은 내리사랑이다.”는 선인들의 말이 하나 틀린 것이 없는데, 그 아이만은 할머니에게서 특별한 손자로 예외였나 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줄기를 타고 하늘을 승천하여 충주댐을 아우르고, 도담삼봉까지 아름다운 절경과 비경을 바라보면서, 그립고 보고픈 달콤했던 그 시절에 내 삶에 커다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주신 포근한 할머니를 보듬고 감사를 드리며, 한편으로 철이 없었음을 용서를 빈다.
지금 이시간도 할머니는 나의 호흡하는 숨결 언저리에서 당신의 따스한 솜털 같은 사랑을 주시며, 저의 옷깃을 여미고 감싸며 어루만지고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할머니 !
주님 안에 편안하시고, 사랑과 은총 넘치게 받으시기를 두 손 모으고 기도드립니다.
2009년 8월에
이 동 호 (쎕 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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