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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고향 가시는 길/When a child is born/나자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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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최근 들어 부쩍 자주 고향집에 가자신다. 주일 하루만이라도 누님을 어머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삼형제는 돌아가며 당번이 되는 것이다. 내가 당번이 되는 주일이면 구실을 만들어 강화에 가자신다. 시골 성당 미사시간이 10시 30분이니 그곳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해 아침 9시에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에 차를 댄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나오시다 차에 오르신다.
요즘 어머니는 잘 웃으신다. 그 웃음이 정말 웃겨서가 아니라 약간의 신경변성 치매현상으로 당신이 평소 좋아하던 사람이 오면 무조건 좋아라하시는 것이고 방금 전의 일을 기억 못하시며 반복해서 물으신다.
차에 타신 어머니는 고향길이 소풍길이다. 차창 밖 펼쳐지는 세상을 바라보시지만 어머니는 지금 지난 시간을 바라보실 것이다. 조실부모하고 선생님의 아내로 시집와 그 힘든 농사일을 아버지를 대신해 논밭을 헤매시던 지난날을 말이다.
어린 나를 놔두고 수술실로 향하실 때 내가 잘못되면 저애를 어찌하나 한없이 우셨던 일도 기억하실 것이다. 농약을 치다 쓰러 지셨던 곳과 새벽기도를 갔다 집을 못 찾은 일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매 갈 때마다 즐거워하시는데 앞으로 몇 번을 더 모시고 갈 수 있을까? 영원히 자식들 곁에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일까?
잠시 내손을 내밀면 덥석 잡으시나 옛날의 그 강인하시던 어머니의 손이 아니다. 가녀린 손이 가볍게 떨린다. 수천 평의 논농사와 밭농사를 거뜬히 해내시던 그런 손이 절대 아니다. 세월은 무수히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기억도 체력도 건강도... 성당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늘 앉아 기도하시던 자리는 비워있다. 어머니와 같이 지내시던 할머니들이 촌수가 높은 어머니에게 “아주머이, 잘 오셨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다. 얼마 전 까지도 계시던 바로 옆집 아주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미사를 마치고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시는 어머니의 어깨는 너무나 볼품없고 가엾다. 그 어깨에는 지난날의 회한이 드리워져 있다. 남자도 힘든 농약의 분무기가 들려 있었고 콩더미를 졌으며 무엇보다 자식들을 메고 가셨다. 자식들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가르치시려는 열망이 들려있었다. 고향집은 귀농한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아주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사랑방 두 곳에는 아버지가 쓰시던 풍금과 어머니의 재봉틀, 그리고 장롱에서 꺼낸 두터운 솜이불이 깊은 잠에서 깨 화들짝 놀란다.
사랑방에 들어가신 어머니는 나오실 줄 모르신다. 방문을 열어보니 두터운 솜이불을 끄집어내신다. 내가 더 놀랜다. 배웅 나오신 사촌 형수님이 어머니를 달랜다. 이번에는 세숫대야, 60년대의 큰 가방, 아버지의 한복을 챙기신다.
내가 보기엔 보잘 것 없는 물건이지만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 무조건 차에 다 싣는다. 어머니의 마음도 헤아려 싣는다. 찻상까지 두 개를 챙기시니 더 이상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없어 조수석에 싣는다. 어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옛 물건에 더욱 애착을 가지신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그간 집터의 살피로 말썽을 피우던 어머니에게 촌수로 손자며느리 사이쯤 되는 아랫집 아낙이 치마를 걷어 부치고 달려온다. 배운 것이 없기에 인사라는 기본예의도 없다. 조용히 타이른다. 모처럼 고향집을 찾은 두 분의 기분과 결례를 범하지 않도록 말을 막는다.
고향도 땅값이 많이 올라 이제 훈훈한 옛 풍속이 아니다. 이웃 간에 떡을 나누는 등 따스한 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이처럼 변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이 없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고향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
댓글목록 0
최송배님의 댓글
몇 년 전에 먼 길을 떠나신 우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곁에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해 봅니다만.....못난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송배형님의 말씀에 마음이 아려옵니다.먼 길을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시는 모습에 더욱...형님, 늘 건강하시고 새해 하시는 사업 번창하며 만사형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