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율목동 주택가 화약 공장 폭발 사고
본문
율목동 주택가 화약 공장 폭발 사고
중학교 다니던 때 이야깁니다.
공설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응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내에서 불자동차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운동장 옆의 도원동 언덕위에 서서 운동경기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루루 언덕 너머 쪽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이나 시내 쪽을 바라봅니다. 시내 쪽으로는 공중 높이 누런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보니 무슨 큰 사고가 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운동장 스탠드에 열을 맞춰 앉아있던 우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우리뿐이 아닙니다. 공설운동장에서 경기 중인 선수들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언덕위에서 시내 쪽을 구경하던 사람들 절반이 자리를 뜨거나 다시 운동장의 경기 모습을 보러 자리를 옮깁니다.
얼마 후 한 고등학교 상급생이 앞에 서더니 큰 목소리로
“시내에서 공장이 터지면서 불이 났는데 바로 옆의 목욕탕에서 여자들이 벌거벗은 채로 뛰어나왔다가 불벼락을 맞고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훌쩍 던지고 씩 웃으며 사라집니다. 그 선배는 가끔 학교에서도 웃기는 이야기를 하던 터라 무슨 농담 같은 이야긴가 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아주 큰 폭발화재사고가 시내 한 복판에서 발생했습니다.
율목동 주택가 한 복판에 있던 무허가 가내 화약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선박엔진 시동할 때 사용하는 화약을 만들던 공장이었는데 폭발이 일어나니 근처 목욕탕의 손님들은 보일러가 터진 줄 알고 목욕 중이던 아주머니 몇이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화염을 맞아 나중에 서너 명이 결국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처녀들은 와중에도 밖으로 나올 용기가 없어 목욕탕 안에 머물러서 오히려 무사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한참 인천시내에 자자했습니다.
그 사고로 인천 경찰서장이 옷을 벗었는데 경찰서장 의자 뒤에서 화약이 터지면서 자리에서 넘어지는 경찰서장을 그린 만평 만화가 신문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선박엔진은 대부분 디젤엔진이지만 그 이전 오랫동안 사용된 중소형 선박 엔진은 거의 다 야끼다마라고 불리는 엔진이었습니다. 선박엔진뿐 아니라 옛날 방앗간에서 탕탕거리면서 큰 무쇠바퀴를 돌리며 돌아가던 그 발동기도 바로 그 야끼다마라는 이름의 엔진이었습니다.
야끼다마 엔진은 그 큰 바퀴가 돌아가는 관성으로 공기와 연료를 압축해서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어 점화폭발로 힘을 내는 일기통 내연기관인데 처음 엔진 살릴 때 그 화약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아마 옛적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듬어 잘 회상해보면 당시 인천부두의 연락선 엔진소리나 동내 방앗간에서 탕탕거리며 돌아가는 발동기 소리가 어딘가 닮아있음을 확인해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객선이나 방앗간이나 다 같은 엔진을 사용했으니까요.
그 야끼다마라는 엔진은 여객선의 엔진이 디젤로 바뀌고 시골 방앗간이 없어진 뒤에도 한참 볼 수 있었습니다. 탕탕거리며 파일을 박던 항타기 말입니다.
요새는 시끄럽고 매연이 발생해서 잘 사용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공사장 기초파일을 박을 때 탕탕거리던 항타기도 바로 일기통 야끼다마 형식의 내연기관입니다.
그래서 발동기나 여객선 엔진과는 모양이 달라도 탕탕거리는 항타기 소리는 그 옛적 여객선 엔진소리와 흡사합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사 착공식에 착공 단추를 누르면 수십 대의 항타기가 동시에 요란히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주위의 모든 항타기들이 징발되는 바람에 공사에 큰 차질이 생겼다고 구시렁대던 어느 아파트 건설현장소장의 불평도 기억나는데 요새 그런 항타기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여튼 주택가 한복판에 무허가 화약 공장이 있었던 60년대 초 인천의 이야기가 기억나서 글을 적었습니다.
댓글목록 0
전재수님의 댓글
저도 기억이 납니다. 율목동 주택가가 아니고 신흥동 이었고 그 목욕탕은 신흥(처녀목욕탕?)목욕탕입니다. 제가 신흥목욕탕 바로 옆집에 살았지요~ 소방호수가 얼마나 탱탱하였던지 소방호수를 밟고 불구경 했지요. 폭발물에 머리에 피가흐르며 아들찾는 할머니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이효철님의 댓글
전재수후배 아니었으면 신흥동에서 일어났던 일을 죽을 때가지 율목동에서 일어난 일로 알고 있을 뻔 했습니다. 후배님의 지적에 감사합니다. 하여튼 지금 그곳은 흔적도 보기 힘들 정도로 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