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친구와의 이별/밤하늘의 트럼펫
본문
동그라미를 그리는 출근길 자전거 전용도로 옆 길섶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 바람에 손목을 비틀려 생명줄을 놓은 가랑잎은 밤사이 내린 비에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있다. 간간히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은 노랑나비의 시신을 켜켜이 묻고... 수십 년 전, 나에게는 절친한 대학동기가 있었다. 마음을 열어 소통하는 짠물 친구인데 퍽이나 인간적이고 곡차를 좋아하며 소탈한 벗이었다. 신입생 시절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하려다 윗니 서너 개를 잃고도 의연하던 의리파의 멋진 친구였다. 여름이면 후배들과 소외된 농촌이나 산골마을을 찾아 투약봉사를 벌이고 남는 시간에는 장마 통에 떠내려간 농로를 고치느라 구슬땀을 흘리던... 재래식 화장실을 소독하려 분무기를 서로 나눠지던 친구... 얼마 학교를 같이 못 다니고 군 입영날짜를 받아 휴학한 나를 위로하려 내 고향 강화에 내려와 내가저수지로 밤낚시를 갔을 때 깔고 잘 볏짚을 훔치려다 노적가리가 무너져 깔려도 허허실실 웃던... 오고가는 우정의 잔에 거나하게 취하면 장밋빛 스카프를 구성지게 잘 부르던 친구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먼저 장가를 들게 되었다. 철종이 임금이 되기 전까지 살았던 용흥궁 바로 옆 절간 같은 한옥에 십자가를 올린 아름다운 강화성당에서 식을 올렸다. 그런데 축하하러 내려온 친구는 그날 무슨 이유인지 손만 허공에 저을 뿐 평소와 달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믿기 어려운... 너무나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나에게 청천벽력의 슬픈 소식이 들렸다. 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그 친구의 부음을 알리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엄청난 전갈에 큰 충격을 받아 가슴 한군데가 뻥 뚫리고 머릿속이 뭐에 맞은 듯 멍하고 하얗게 변하는 느낌... 급기야 사나이가 아내 앞에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달려간 영안실, 아무리 불러도 친구는 대답이 없다. 친구 어머니의 절규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자초지종을 들으니 연탄가스중독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그날따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전날 꿈자리가 뒤숭숭하던 친구의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 자라는 것을 친구가 말을 안 듣고 약국 한 편에 딸린 방에서 자다가 그만 큰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친구는 달동네에서 약국을 수년간하며 돈이 없어 약을 못 먹는 이웃에게 무상으로 약도 주고 노인들의 말벗이 되었으며 연말이면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 남몰래 도움을 주던 마음이 참 따스하던 친구였는데 하늘은 그 친구를 시기해 일찍 데려간 것 같았다. 친구의 동생이 인턴으로 근무하는 병원에서 동생에 의해 형의 시신이 수습되는 이 기가 막힌 일을 무엇으로 설명해야겠는가? 산골짜기에 자리한 화장터, 이미 이곳에는 이별을 위해 달려온 여러 대의 운구차가 순서대로 줄을 잇고 있다 . 마치 아침 일찍 관광여행을 떠나기 위한 차량들처럼 .. 접수를 마치자 친구의 관에 흰 국화 한 송이가 올려지고 그 뒤를 산 자들이 따랐다 . 화구 번호순으로 착착 인계되어 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친구의 유가족들이 다시 절규를 하였다. 그곳은 정말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리는 공간이었다. 아니 산자와 죽은 자가 뒤엉킨 곳이고 사연도 많은... 한참 더 나갈 것 같은데 이제 산자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길목이었다. 한쪽에서는 찬송가 소리, 다른 한쪽에서는 스님이 내는 독경 소리 ...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는 이별연습이 아닌 정녕 이별을 하는 것이다 . 산자도 언젠가는 친구처럼 저 화구에 눕게 된다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두어 시간 후 한 줌의 재로 변한 친구... 잠시 친구의 영혼을 위해 묵상하였다. 뜨거운 재를 들고 나온 화장터 덩치 큰 배불뚝이 장의사는 까맣게 변한 뭔가를 손으로 골라 뜨거운지 입김으로 후후 분 다음 호주머니에 넣었다. 알고 보니 신입생시절 의리의 친구가 이를 잃고 해박은 금이빨이었다. 잡티와 못들은 집게로 툭툭 쳐내고... 너무나 무뚝뚝하고 무심한 그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달려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위로 올라가 평소 존경하는 선배와 친구의 재를 날렸다. 친구와 마지막 작별의 시간이자 친구의 혼을 떠나보내는 의식이었다. “친구야! 잘 가!” 갑자기 불어온 살천스러운 바람에 온통 친구의 재를 하얗게 뒤집어 쓴 선배의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나 또한 친구를 가슴에 묻었다. 밤하늘의 별이 된 친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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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載峻님의 댓글
매혹적 연주 감사 하네 더우기 이리 공유 감상 기회 주심은 축복 입니다 다복 하시게 용혁 아우
윤용혁님의 댓글
재준형님,낙엽이 잎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군요..형님,청안하시지요? 저 아우의 미천한 연주를 들어 주시고 마음을 함께하시니 그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