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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월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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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이 월척 낚은 겨울 이야기
큰아들이 월척 붕어를 낚은 것은 큰아들 초등학교 일학년 겨울방학 때로 내가 자가용을 몰기 시작한 후 처음 나선 얼음낚시에서였다.
그날 얼음낚시도구, 방한복, 코펠버너 등의 취사도구에다 두 아들의 스케이트까지 챙겨 차에 싣고서 아침 일찍 온 식구가 하계동의 아파트를 나서서 고향인 강화도로 향했다.
만약 자가용이 없었다면 온 식구가 그 많은 짐을 챙겨 한겨울에 얼음낚시를 떠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먼저 강화읍의 잘 아는 낚시점에 들러 몇 가지 필요한 미끼와 채비 등을 챙긴 후 온수리 저수지로 향했는데 그곳은 신혼 때 집사람과 밤낚시 다녀온 후 칠 팔년 만에 다시 찾아가보는 낚시터였다.
온수리 저수지는 예전에 이재학 낚시터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적이 있는 오래전부터 제법 이름 있는 낚시터로 강화읍에 살던 대학생 시절에 몇 번 정도 낚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당시 온수리 저수지를 찾을 때마다 대부분 훌륭한 조황을 경험했다.
어느 해 여름날 밤 일인용 좌대에서 굵은 붕어로 대바구니를 가득 채운 생전 최고의 조과에 매우 만족했던 곳이 온수리 저수지요 소위로 임관 후 광주보병학교 16주 훈련을 마치고 얻은 일주일간의 휴가 중에 일박이일의 짬을 내서 서울 친구를 불러 함께 좌대낚시 하면서 훈련기간 동안 못한 낚시의 한을 마음껏 푼 곳도 바로 온수리 저수지였다.
그렇지만 온수리 정류장에서부터 걸어야하는 거리가 부담스러웠고 대학생시절은 좌대를 타야하는 비용부담도 있어 나는 예전 강화읍에 살 때 온수리 저수지보다는 바로 상류의 윗 저수지를 더 많이 단골로 찾았었다.
예전에 한참이나 걸었던 온수리부터 저수지까지를 자동차로는 십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도착해보니 이미 수많은 차들이 저수지 주위의 이곳저곳에 주차되어있었고 이삼백여 명 정도의 조사들이 얼음판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온수리 저수지 찾았을 적에는 기껏 많아야 열 명이상의 조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정도로 사람들이 붐빌 줄은 미처 몰랐다.
온수리 저수지의 겨울 낚시 조황이 좋다는 기사를 신문이나 낚시 잡지에서 본 적이 있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강화도에서 낚시터가 그 정도로 붐비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머. 저렇게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차도 엄청 많네. 여보.”
남편 따라 자주 낚시터를 찾았던 집사람도 조금은 놀란 모양이다.
“이거 낚시꾼들이 온수리 저수지로 다 몰렸군.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는데 너도나도 자가용 타게 되니까 완전히 낚시터 풍경이 바뀌네.
하기야 나도 자가용 모는데 뭐, 남의 말 할 거 있나........
자 빨리 짐 챙겨 내리자.”
낚시가방 등 짐들을 나눠들고 저수지 복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두 아들은 자기들의 낚싯대를 먼저 펴 줘야한다 아니 스케이트를 먼저 타야하니 스케이트를 먼저 신겨줘야 한다 하며 매우 신나서 들떠있었다.
저수지 한 복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정하고 끌로 얼음구멍을 뚫기 시작했는데 좋아 보이는 자리를 더 찾아다니며 살펴보려 해도 극성떠는 두 아들과 더 돌아다니기를 힘들어하는 집사람 때문에 대충 정한 그 자리에서 그날 큰아들이 대형 사고를 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아들마다 각각 한 구멍씩 둘, 또 내 자리로 셋 그리고 집사람용으로 둘 이렇게 모두 일곱 곳의 얼음구멍을 뚫는 동안 집사람도 아들들에게 스케이트를 챙겨 신기느라 한참이나 바빴는데 빨리 낚시하겠다고 보채던 두 아들 녀석은 내어준 견지대의 채비를 다 맞추어주기도 전에 스케이트가 준비되니 먼저 얼음 지치러 다니기 시작했다.
두 아들이 사라진 후 나는 집사람과 내 낚시채비를 준비해서 얼음구멍마다 찌 수심도 맞추고 지렁이 미끼도 끼우고 해서 얼추 낚시 준비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전반적인 조황은 별로였다. 잠시 후 일어서서 주위를 한참 돌아다녀 봐도 붕어 올린 경우는 한두 명 뿐이었다. 벌써 세 번째 자리를 옮겼어도 입질 한 번 못 봤다는 조사의 푸념도 들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집사람 옆에 나란히 앉아 찌를 응시했지만 모든 찌는 미동도 하지 않아 찌 주위로 계속 잡히는 살얼음을 얼음뜰망으로 하나씩 두들겨 치우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첫 입질을 기다리기를 계속했다. 오늘 낚시는 별로구나라는 분위기에 집사람이 점심은 적당한 식당에서 먹는 것이 어떠냐는 운을 떼는 걸 보니 벌써 일찍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다.
‘좀 있으면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보채겠구나. 이거 참 ........
그러나 저러나 입질이나 한번 해줘라.......’
우리 부부 둘은 낚시터에서 자주 벌이는 신경전을 일찍부터 시작하며 자리를 지켰다.
한참 뒤 스케이팅을 즐기던 두 아들이 와서는 낚시를 하겠다고 서둘러댔다.
채비는 미리 찌 수심까지 맞춰놨지만 미끼 없는 빈 바늘이어서 두 견지대의 바늘에 지렁이미끼를 끼워주고 낚시를 하라고 했다.
“자, 찌 맞춰놨으니 입질 오면 당겨라.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 알았니.”
“알았어요. 아빠.”
둘은 동시에 대답하고 자리를 잡고 찌를 보기 시작한다.
아들들은 그동안 수도 없이 아빠를 따라 낚시를 다닌 터라 제법 낚시에 집중할 줄을 안다.
하여튼 두 녀석이 낚시를 시작했으니 또 이거저거 옆에서 챙겨달라고 해서 신경 쓰이게 할 것 같았는데 둘이는 한참동안 제법 낚시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아빠. 아빠. 고기 걸렸어요. 커요. 켜요. 아빠. 아빠.”
갑자기 큰 아들이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아들이 일어서서 견지대를 두 손으로 치켜들고 있었는데 올려든 견지대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얼른 아들의 견지대를 받아들고 줄을 감기 시작했는데 힘쓰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벌써 근처의 몇 명도 주위로 모여든다.
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코앞의 얼음구멍을 주시하고 있는데 얼음위로 얼굴을 내민 붕어가 매우 탐스럽다. 얼음구멍에서 얼음판으로 당겨낸 붕어는 큼지막한 몸채를 빳빳이 세우고 바르르 떨어댄다.
“ 야. 크다. 붕어 크다.”
집사람과 막내도 신이 나서 법석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빠, 갑자기 찌가 물속으로 끌려들어가서 당겼어요.”
흥분한 아들이 신나서 입질의 순간을 설명한다.
잘 생긴 붕어의 크기가 월척 수준이지만 아슬아슬한 크기다.
얼음판 위에 올려진 붕어를 보고 모두 법석거리는데 누군가 얼른 계척자를 가져와 재보란다.
계척자에 붕어를 올려놓고 재보니 딱 30.3센티........
“진호야. 월척이다. 진호. 네가 월척을 낚았어. 월척을!”
주위의 모두가 탄성이다.
“여기 월척이다.”
“꼬마가 월척 잡았다.”
얼음판에서 월척 소문은 무척 빨라 한동안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너도나도 붕어를 보러 그리고 월척조사를 보러 와서 아들에게 축하하고 칭찬을 하니 아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덩달아 우리 가족 모두 싱글벙글 이었다.
게다가 월척 소문에 많은 조사들이 여기저기서 우리자리 근처로 모여 너도나도 얼음구멍을 뚫으면서 새로 자리 잡기 시작하니 근처가 북적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들렀던 낚시점 사장도 낚시터에 나온 모양이다. 찾아와서 축하한다.
“아 누가 월척 올렸나 했더니........ 아시는 분의 아들이네.
바로 네가 월척을 올렸구나. 오늘 여기서 월척은 네가 잡은 것 한 마리뿐이다.
이름이 뭐냐. 진호라고. 그래 꼬마 월척조사 이 진호 축하한다. 낚시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해야 한다.”
큰 아들은 낚시점 사장의 월척조사라는 칭찬에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른다.
“허허 이거, 아드님이 월척 올린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꼭 빼어 닮았습니다.”
낚시점 사장은 외가동내에서 살던 동년배로 어릴 적부터 안면이 있어 웬만큼 아는 사이이기에 가게를 찾을 때도 나에게 각별하게 대해주던 터인데 누가 월척을 올렸다는 소식에 들렀다가 바로 월척 낚은 조사가 내 아들인걸 알고는 더욱 반가운 눈치다.
큰 아들의 월척 붕어는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고 큰 아들은 물론 덩달아 동생까지 저수지에서 하루 종일 큰 인기를 누렸다.
월척도 월척 나름인데 이왕이면 아들의 경우처럼 비록 턱걸이 월척이라도 그 낚시터에서 딱 한 마리뿐인데다가 한겨울 얼음낚시터의 월척이라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린 것이다.
만일 제 철 물가에서의 월척이었더라면 근처 조사들의 눈치와 짜증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래도 월척 구경하려면 조용조용 다가와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조심조심 살짝 살림망을 들어보는 정도였을 것인데 얼음판위 살림망에 놓인 아들의 월척은 종일 이사람 저사람 다가와 보며 큰 소리로 감탄해대도 누구하나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경우가 없었으니 말이다.
십여 년 전 가을철 대구 근교 저수지에서 낚인 나의 첫 월척은 옆 자리의 이름도 모르는 두어 조사에게만 축하를 받았을 뿐 큰아들의 월척만큼 축하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날 낚시터에 동행했던 회사 친구는 내가 월척 낚기 두어 시간 전에 낚시터를 떠난 바람에 내 첫 월척의 순간을 주위에게 떠벌려줄 증인도 없는 그런 ‘나 홀로 월척’을 나는 낚시를 시작한지 꼭 십년이 되던 해에 그렇게 첫 월척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이후 종일 입질 한 번 못 봤는데 오후 들어 조사들이 하나 둘 낚시터를 떠나기 시작했고 우리가족도 짐을 챙겨 낚시터를 떠났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식구 모두는 피곤한 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내 머리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 예전 고향 단골낚시가게의 벽을 장식하는 월척 어탁을 볼 때마다 난 언제 저기에 내 월척 어탁을 걸어볼까 했지만 고향 강화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낚시터를 찾았어도 월척 소원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런데 그 꿈을 큰아들이 오늘 대신 이루다니.......
그 뒤로도 온 식구는 자주 강화도의 낚시터를 찾았다.
강화도의 그 낚시점을 들를 때마다 사장은 큰 아들을 보면 꼬마 월척조사가 왔다고 무척 반가워했다.
그러다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온 식구가 지방으로 이사한 후 온수리 저수지는 다시 찾지 못했는데 그 세월이 벌써 20년 이상 훌쩍 지났다.
다 큰 큰아들도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데 아버지만큼 극성이지는 않다.
작년에 큰아들은 장가를 들었는데 몇 달 후면 아빠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혹 손자도 낚시를 좋아하다면.......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2010. 10. 23. 동탄면 목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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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님의 댓글
부자지간의 훈훈한 정이 낚시줄에 줄지어 걸려 나옵니다.너무나 흥미롭고 좋은 취미를 나누시니 보기도 좋군요..세월을 낚으시는 여유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