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베트남 여행기 6 - 하노이
본문
베트남 재래시장에서 내가 맛본
사탕수수
복잡한
하노이 거리
하노이에서 볼 수 있는 유럽풍 건축물
우리를
태우려고 기다리던 시클로
시클로로
하노이 관광을 하고 있는 집사람을 한컷
스타트라인에서
교통신호 대기중인 베트남 사람들
복잡한
건물구조와 전기줄
거리에서
식사를 즐기는 베트남인들
베트남
고유의 물건 운반 방법
초등학생
학교 등교 장면
거리에서
장기로 망중한을 즐기는 베트남인
호치민
분묘앞 광장에서
전
프랑스 총독 관저
호치민이
기거했던 집
호치민이
기거했던 집의 서재
집앞
연못
호치민
박물관
한기둥의
일주사
베트남
최초의 대학 분묘 정문
호텔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비경을 보며 잠을 깬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하노이로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어차피 하노이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밤12시 비행기로 가야하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여유있는 여행을 하자는 의도에서 미리 가이드와 함께 결정한 사항이었다. 버스로 좀 달려 하롱베이 시내를 벗어나 곰 쓸개즙을 파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우리에 가둔 곰을 마취시켜 묶은 채로 끌어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직접 주사기로 액을 뽑아 그것을 약봉지에 넣어 파는 것이었다. 몸보신을 좋아하고, 직접 보지 않고는 사람 말을 잘 못믿는 우리 한국관광객이 만든 상품을 아닐까 싶다. 그 곳을 운영하는 한국인이 한국인 2세 혼혈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는 하나 동물학대론이 많이 제기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다시 버스로 달려가던 중에 내려 베트남의 재래시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도 캄보디아와 마찬가지로 60년대의 우리 한국의 재래시장을 연상시켜주는 곳 이었다. 다른 것은 엄두도 못내고 단지 그곳에서 난 오래간만에 사탕수수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럭저럭 3시간반정도의 시간 걸려 도착한 베트남 천년의 고도 하노이...1009년 리(李) 왕조를 창건한 리 꽁 우언(Ly Cong Uan)은 하노이에 수도를 정하고,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인 탕 롱(Thang Long)으로 불렀다. 이후 1397년 수도가 딴 호아(Thanh Hoa)로 천도될 때까지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다. 1802년 이후에 수도로 하는 응우엔 왕조가 들어섰을 때만 하더라도 하노이는 탕 롱으로 불렸으나 1831년 민망 황제 치세기에 하노이라는 지명으로 고착화 되었다 한다. 1873년 프랑스에 의해 하노이가 점령당한 뒤 1887년부터 통킹 보호국의 수도가 되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북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고 베트남전 종전 후인 1976년 7월 2일부터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 "강 안쪽의 도시" 또는 "강 사이의 도시"라는 뜻이다. 홍강(Song Hong)이 하노이를 끼고 흐르고 있으며 우기가 되면 홍강이 자주 범람했다고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여기 시내 중심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홍강은 하노이 삶의 원천이다.
베트남의 겨울 날씨는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낮에는 좀 덥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네들은 추위에 약한지 두꺼운 겨울 패딩 및 파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베트남 여행을 한사람들에게 베트남 하면 제일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오토바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우리의 자동차만큼 오토바이가 생활수단이어서 하노이 거리엔 오토바이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리에 나서면 우리로서는 오토바이 소음, 경적, 매연 때문에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하노이 시내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자전거 인력거라고 할 수 있는 씨클로를 한명씩 나누어 타고 30여 분간 하노이 구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36개의 작은 거리가 있어 ‘36 거리’라고 불리는 하노이 구시가는 사람들과 오토바이 그리고 씨클로로 북작거렸다. 오토바이들로 가득 찬 도심의 풍경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질서라는 개념 없이 마구잡이로 들이미는 오토바이의 물결은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뒤에서는 열심히 운전 기사가 페달을 연신 밟았고, 우리 앞에는 카페와 은행, 시장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래도 그 옛날 서울에 처음 올라온 촌놈처럼 시내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1960∼70년대의 시간 속으로 빠지다 보면 어느새 거리 풍경이 진솔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특히 내가 느낀 하노이의 또하나의 모습은 수많은 오토바이들 외에 복잡하게 수없이 얽히고 얽혀 늘어진 전기줄이었다. 이 전기선들처럼 이 거대한 도시는 꽤나 복잡하고 바빠 보였다. 수없이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들...그 사이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자전거 행렬...관광객들을 실고 유유히 지나가는 씨클로까지(우리는 살벌했지만)...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고, 생각보다 훨씬 더 시끄러웠으며, 생각보다 훨씬 더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미처 그들을 발견하기도 전에 그들은 나에게로 질주하듯 달려들었으며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누구나 베트남에 처음 도착한다면 이 복잡한 미로 같은 도시에서 한발자욱도 못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정말 잠깐 내려서 횡단보도를 넘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의 과거가 그러했듯이 지금의 베트남은 교통질서라는 것은 없어 보였다. 신호가 없는 거리는 우리를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버스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대책없이 끼어들고 빵빵 거려대어서 버스에서 잠은 커녕 휴식을 취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신호체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우리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 무엇하나의 독주가 아닌 그들만의 계산과 방식으로 우리의 눈에는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질서가 존재하는 듯 했다. 좀처럼 큰 사고가 안난다는 것이다. 약간의 접촉사고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로 툭툭 털고 다시 간다고 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 같으면 네 잘못이니 내 잘못이니 하며 한참 시비가 붙었을텐데...그게 그네들의 살기위한 아니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베트남으로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3나라가 있다고 한다. 일본, 필리핀, 그리고 한국이라고 한다.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이지만 지금 베트남에서의 우리 한국의 인지도가 좋은 편인가보다.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지금 하노이의 거리에는 우리 한글 간판과 한국제품 광고가 많이 볼 수 있었다. 거리의 택시도 마티즈 아니면 모닝이 많았고 학원명 등 한글간판을 그대로 달고 다니는 우리 한국 중고 버스(한글 그자체가 그대로 붙어있어야 제값을 받는다 한다.), 그리고 거리에 즐비한 LG전자, 삼성전자, 대우 광고선전문구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신시가지로 들어서면 ‘작은 파리’라는 부를 정도로 정부기관, 국립극장, 시립극장, 호텔, 박물관 등 프랑스 식민시대에 건설된 건축물들이 있어 운치 있는 유럽풍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로부터 강의 범람이 잦았던 하노이에는 곳곳에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하노이에는 홍강이 범람해 만들어진 호수가 무려 300여개나 있다. 그래서 하노이를 흔히 ‘호수의 도시’라 부르기도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호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다. 이 호수는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유명하며 밤만 되면 하노이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라 한다.
시클로로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베트남 국회 맞은편 바딘광장(호치민 광장)에 자리 잡은 호치민(1890~1969) 묘로 행했다.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바로 그 자리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난 1975년에 조성한 이 묘는 매일 수많은 시민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묘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에 적힌 ‘위대한 호치민 주석 우리 마음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라는 글귀에서 호치민이 베트남 온 국민이 존경하는 영웅이며, 베트남인들 마음의 성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대리석으로 쌓은 단 위에 붉은색 대리석 기둥을 세운 묘 내에서는 떠들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진 촬영도 안 된다. 물론 민소매, 짧은 치마, 반바지 등의 복장도 금지된다. 베트남과 국부 호치민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연중 3개월은 방부처리 과정으로 문을 닫아 입장이 안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때가 바로 그 시기이어서 아쉽지만 입장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우리는 호치민이 살았던 거주지와 관저를 관람할 수 있었다. 푸른 초목으로 둘러싸인 저택 앞에는 연못이 있고 2층 구조의 집은 간소하게 꾸며져 있다. 모두 간단하고 검소한 것들로 작은 나무책상, 시계, 라디오 등 애장품들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서민적이었던 그의 인품과 생활이 엿볼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호치민은 프랑스 총독 관저였던 주석부에 잠시 머물렀다가 큰 집이 필요 없다며 프랑스 전기수리공이 살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1층에는 면담실과 회의실이 갖춰져 있고 2층에는 침실이 꾸며져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남북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국민적 영웅으로 베트남과 결혼했다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생활 또한 검소했다. 기거했던 집을 돌아보고, 현재 베트남에서 발행되는 모든 지폐에 호치민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국민에게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을 돌아 나오면 호치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90년 건립한 호치민 박물관을 볼 수 있는데 여기는 호치민 생가의 모형과 자필 편지, 그림, 옥중일기 등 호찌민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을 나와 바로 멀지 않은 곳의 절을 찾았다. 규모는 작지만 하노이를 상징하는 고찰로 1049년에 지었다고 한다. 1개의 기둥위에 불당을 얹었다고 해서 일주사라 부르며 가파른 사다리를 오르면 내부가 다 들여다보인다. 이 특이한 건축법은 사원의 창건자인 리(李)왕조의 태종 리따이톤이 만든 것이다. 후사가 없던 그는 연꽃위에서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을 꿈에 보고 시골 처녀와 결혼 얼마 안 되어 아들을 얻었다. 그래서 관음보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연꽃모양을 본떠 이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곳을 관람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뒤라 허기에 지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서둘러 우리는 식당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가는 도중 우리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문묘를 볼 수 있었다. 문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070년에 세워진 곳이라 한다. 과거시험도 이곳에서 치루었다 한다. 전통 베트남 건축 기법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가치가 있다고 한다. 경내 좌우에는 거북 머리 대좌를 한 82개의 진사제명비가 있고 여기에는 1442 ~ 1747년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점심으로 색다른 베트남 음식을 먹었으면 했지만 우리 일행이 40-50대 중년들이다 보니 대세가 한국음식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역시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즐겼지만 한국에서 먹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이 반찬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후 우리는 지은 죄가 있는지 해외관광의 묘미인 쇼핑을 빼놓을 수 없다하여 쇼핑에 몰두하기로 하였다. 가이드의 안내로 우리는 베트남 특산물로 유명한 한국인이 운영 잡화매장과 라텍스 매장을 찾았다. 잡화 매장은 각종 의류와 가방, 보석과 노니, 커피와 기념품 등을 파는 곳이었다. 입구에서 ‘상품 구입 확인서’를 나눠주었고,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증정한다고 한다. 나는 선물로 세계 제2위 커피생산국 베트남에서 그 유명한 다람쥐 커피와 은제품 컵을 샀다. 그 다음 행선지는 동남아시아 패키지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라텍스 매장이었다. 예전부터 세계 강국들이 인도차이나 반도 점령에 눈독을 들였던 것은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이 라텍스 수탈이 목적이었다 한다. 그만큼 라텍스는 최고급 침대 매트리스와 베개용 제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인 직원이 라텍스에 대한 예찬과 함께 태국보다는 베트남의 인건비가 저렴해 라텍스도 훨씬 싸다고 강조했다. 여유있게 쇼핑을 마친 후 저녁 7시에 예약되어 있는 베트남 정통 수상 인형극을 관람하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저녁식사 중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물속에 들어가, 긴 대나무 막대와 숨겨진 줄로 인형을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 뒤에서 사람들이 조정하면서 하는 베트남 고유 민속 인형극 관람이 우리 성인에게는 맞지 않고 재미없다는 말에 오히려 다른 일정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의견들을 내세웠다. 대세의 의견은 마지막으로 전신맛사지를 한번 더하자는 것이었다. 그 대세에 따라 우리 일행 모두는 음식점 인근의 맛사지센터에서 2시간 가량 발맛사지를 포함한 전신맛사지를 받았다. 족욕기에 발을 잠시 담근 뒤 발맛사지를 받는데 피로가 싹 풀리고 몸이 한결 가벼워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발맛사지를 끝낸 베트남 아가씨는 돌아눕도록 하더니 어깨를 주무르고 허리를 밟아주는데 캄보디아 맛사지보다는 좀 못하지만 여독을 풀기에는 충분했다. 맛사지를 끝낸 우리는 곧바로 하노이 공항으로 이동 인천국제공항행 밤 12시 40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짧은 여정이었지만 4박 6일의 해외여행 일정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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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桓成(70회)님의 댓글
교장선생님도 MOU 맺어야 할듯..
퇴직 다 되 가는데 우리내 무전여행은 꿈 같은 이야기
윤인문님의 댓글
그전에는 해외여행기를 올리면 금방 댓글이 줄줄이 올랐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네요..너무 댓글에 인색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재미없는 건지 나자신이 글을 쓰고도 부끄러워 집니다. 환성형님 말씀대로 적극적인 MOU를 통해 다시 한번 창작글방의 분위기를 쇄신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인문형님의 기행문에 매료된 후배랍니다.짧은 4박 6일의 여정을 이리도 멋지신 필력으로 그려 주시니 제가 다닌 듯 생생하군요..올리신 사진도 좋고 음악도 감동을 줍니다.여여하세요.
차안수님의 댓글
선배님글을 읽으면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여행을 같다온 기분이지만 직접 가보고 싶습니다. 캄보디아 여행 적금 하나 들어야 겠습니다.
劉載峻님의 댓글
답글 inflation이 생긴지 제법 되었어요 우리 homepage전반에 걸쳐 답글 게재에 인색, 야박하죠 그러려니 하며 글 쓰기에 탐닉 할 밖에 없어요 그래도 창작 글 게재 경우는 소수 정예의 전문가 분들만 글 게재하는 진국 중 진국이죠
劉載峻님의 댓글
윤 교장 노변에서 먹는 월남 쌀 국수인 Phoe 자시었나 궁금하오 채 썰은 양파에 매큼한 빨간 물 고추 가른 소스를 얹고 식초 한 방울 떨구고 Mint of Basil 잎 국에 넣어 얼큰 한 맛을 보며 어~~ 어~~ 시원한 탄성를 연발 하죠 간 밤의 숙취를 다스리는 우리 한국인 대장부 쌀 국수 맛 보는 모습이지요 참 맛 있는 음식이지
윤인문님의 댓글
유재준선배님 말씀대로 길거리에서 먹는 월남 쌀국수 맛이 제격인데 저는 호텔 아침식사중 해장으로 쌀국수를 먹었답니다. 속이 시원하니 매우 좋았다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