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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짙으신 할아버지/트럼펫,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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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짙으신 할아버지/윤 용 혁 할아버지의 시계는 육이오가 나기 바로 전해에 멈췄다. 해소천식이 심해 그해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만석꾼으로 부지런하셨던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날 마을 사랑에서 동네 청년들에게 조국 광복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다 일본 순사들에게 쫓겨 눈밭을 헤치고 산으로 숨어 들으셨다가 심한 감기를 앓고 나신 후 지긋지긋한 해소천식을 얻으셨다.
그날 할아버지 친구 한 분은 담장을 넘어 도망치던 동네분을 향해 일본 순사가 쏜 유탄이 초가지붕에 불을 내 그 불을 끄려 황급히 지붕에 올랐다가 다시 쏜 총알에 맞아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한다. 담장넘어 도망치던 동네분과 불끄다 총맞아 돌아가신 분네 집안과는 그 일로 인해 원수지간이 되고... 일찍이 영국 신부님들과 성당을 여시고 인정 많으신 할머니와 같이 춘궁기에 배곯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 쌀을 나눠 주셨다던 할아버지... 해방의 기쁨을 맛보셨지만 기관지를 상해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던 할아버지를 오래된 사진첩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전쟁 통에 큰아들과 막내아들을 놈들에게 잃을 번한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저 빙그레 웃으시는 빛바랜 사진첩의 인자한 할아버지를 말이다. 선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히신 할아버지 산소를 찾을 때면 산에서 내려와 모이를 먹던 장끼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외포리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너른 들판을 늘 굽어보실 할아버지... 뒤로는 덕정산과 좌측으로 진강산이 보이고 맑은 용내천이 여울져 흐르는 곳... 봄이면 진달래 활짝 피고 산새들 놀러와 지저귀는 그곳에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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