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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의 겨울 이야기/난로
본문
외포리 앞바다에서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온다. 뭉치가 달린 빵모자를 눌러쓰고 두 손은 스폰지 잠바의 긴 소매에 감추고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친구들과 종종걸음을 치며 학교에 간다. 가다가 살짝 얼은 살얼음도 지치고... 양지깨 고모님 네 밭에서 낱알을 줘먹던 꿩들이 아이들의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산을 향해 날아오른다. 한마리가 나르니 연달아 나른다. “푸드덕 꾸엉꾸엉” 흥천부락에 위치한 낡은 교사에서는 뽀얀 연기가 자욱이 피어난다. 학생들이 추울세라 소사아저씨가 오늘부터 각 교실의 난로에 조개탄을 피워 주시는 것이다. 조개탄을 태우기 위해 시험지와 솔방울로 먼저 불쏘시개를 쓰니 벽마다 달린 연통들은 일제히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 일제고사를 치룬 불쏘시개 산수시험지는 빵점짜리가 수두룩하다. 겨우 한 개 맞은 애들 것도 있고... 교실 안은 매캐한 연기로 눈물이 난다. 그래도 반 아이들은 신이나 난로주변으로 모여든다. 서로 밀치며 장난을 치던 반장 내성이와 석이가 몸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힘에 밀린 내성이가 갑자기 불집게를 펴 석이의 등짝을 내리치자 석이는 고통을 호소하며 교실바닥에 떼굴떼굴 구른다. 여학생들이 교무실로 쪼르르 달려가 담임선생님에게 고자질한다. 몽둥이를 드신 담임선생님의 화려한 등장이시다. 교실 문을 와락 여시고는 호통을 치신다. “네놈들 또? 이리 나와!” 둘은 복도로 끌려 나가 혼쭐이 나고 있다. 자기들이 앉던 의자를 들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바들거리는 두 팔들...팔은 점점 아래로 쳐지고... 삼교시가 끝나자 담임선생님께서 도시락을 난로에 올려 놓으라하신다. 당시 변또라고 부르던... 너도나도 도시락을 올려놓는다. 힘센 아이 것은 맨 밑이다. 그러나 그 애의 도시락은 잠시 후 새까맣게 타 누룽지가 될 것이다. 손을 호호 불며 도시락을 뒤집느라 난리다.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반찬으로 김치를 싸온 아이의 도시락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바닷가에 사는 아이의 도시락에서는 새우젓 찌는 냄새가... 곤쟁이젓을 싸가지고 온 아이도 있다. 점심을 먹은 후 한 아이가 자기 집의 큰 누님이 시집갈 때 반상 떡으로 쓰고 남은 골무떡을 호주머니에서 하도 주물러 때가 묻어나는 것을 달궈진 연통에 쭉 눌린다. 하얗게 눌러 나는 골무떡... 그걸 잽싸게 가로채는 석이... 담임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난 것도 잊은 채.. 그러다 자기 목에서 기어 나와 산보를 하는 수퉁니를 발견하고는 잡아 난로에 던진다. 친구에게 불집게로 등짝을 맞던 주인의 몸을 피해 나온 것일 수도 있는데... 지진이 난 줄 알고... 잠시 후 작열하는 폭음... 오늘따라 사건의 연속이다. 점심시간 때 짓궂은 호진이가 일학년 반의 여선생님이 화장실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아래에 크게 뚫린 환기구를 통해 들여다보다 걸려 귀를 잡혀 교무실로 끌려간다. 얼마나 혼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색이 되어 교실로 돌아온 호진이는 반성문과 함께 내일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 한다. 한숨을 푹푹 내 쉬던 아이는 용대보고 사정사정해 반성문을 대필해 달란다. 자기가 아끼던 필통을 줄 테니... “용대야, 제발 나 좀 살려줘라!” 죄는 미워도 안타까움에 공책 장을 찢어 써 주려던 용대는 마음을 돌려 거절한다. 만약 대필한 사실이 담임선생님에게 들킨다면 더욱 큰일이기에... 종례시간이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일장 연설이 평소보다 길어진다. “오늘 제군들이 행한...” 상당히 격식을 갖추고 말씀하신다. 집에 두고 온 찐 고구마가 생각난다. 얼음이 살짝 얼은 동치미도...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던 난로는 온기를 잃고 덩그러니 남아 교실을 지킬 것이다. 내일 다시 올 코흘리개 아이들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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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님의 댓글
용혁 아우님의 글은 언제나 재미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엄청난 용량의 성능좋은 컴이겠습니다.
정선생님 글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아직 늦지 않았고, 소중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약국 이름을 알려 주세요. 원고에 적어야 하니까? 요것은 빨리 해주세요.
윤용혁님의 댓글
우성형님, 송구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감사합니다.저를 높이 칭하해 주시니...늘푸른약국이랍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김우성님의 댓글
아우님! 감사하고, 신문 편잡하시는 선생님이 아우님 사진도 필요하다고 하네요.
내 이메일 samjungri@hanmail.net로 보내주시든지, 이 곳에 올리시든지--- 사진은 아무거나(표현이 이상한가, 증명 혹은 스냅사진 등등---)
이메일에는 전화 번호도 적어 주세요.
24일까지
윤용혁님의 댓글
우성형님, 이멜로 보냈습니다.두 장의 사진을 첨부파일로 보냅니다. 아무래도 증명사진이 나은 듯 하군요. ㅎㅎ 이리도 배려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상호님의 댓글
윤용혁 동문의 글은 마치 우리가 어릴적에 격었던 일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써 놓은것 같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