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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되라?/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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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를 다니다 약국을 개업하는 동생을 위해 형은 사무실에서 쓰던 대형소파를 낑낑 매며 가져다주었다. 푹신하여 좋긴 한데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낡고 변색된 것을 가져와 코를 벌름거리며 자신이 먼저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면서 당부하기를 “넌 스타가 되어야한다. 구매력이 좋은 젊은 여인들을 매력으로 사로잡아 너의 손님으로 만들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돌아갔다. 난매통인 시장에 개업을 하고보니 그리 환자가 많지를 않았다. 그래도 후배들과 동기들이 찾아와 개업 전 경험을 쌓는다고 와서 이것저것을 배우고 돌아갔다. 학교에 나가던 아내는 도시락도 열심히 싸주고 퇴근 후 가끔 들러 청소도 해주고 따듯한 밥을 지어 먹이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만 오면 당황하여 쪼르르 달려와 일일이 약값을 묻는데 콘택 600의 약값도 모르냐는 핀잔 한마디에 그 후론 절대로 약국엘 나오지 않았다. 스타가 되어야 한다는데... 스타가... 젊은 날, 동안에 목소리 좋고 남자가 예쁘다는 소리는 들었다. 환자에 대한 친절과 실력이 중요하지 스타는 무슨? 그래도 약과는 상관없이 늘 찾아와 쓸데없는 농담과 데이트를 신청하는 여인들을 대할 때면 부끄러움과 알량한 윤리의식이 발동해 몸은 굳어지고 이리하면 안 되느니라 하며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곁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건실하게 약국을 잘 지켜나갔다. 주 중에 한번 씩 낮에 나가 약사회원들과 시원한 맥주한잔에 고기를 구우며 테니스를 즐길 때면 당대의 시인 두보도 전혀 부럽지 않았고... 매해 빠짐없이 가족들을 데리고 멀리 휴가를 떠나는 여유와 낭만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약국하며 남은 것은 가족과의 추억 만들기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회무에 참여하면서 윤리 따라 삼만 리를 외치다 보니 약국 킬러라는 소리를 자연히 듣게 되었다. 남의 약국의 킬러가 아니고 자기 약국의 킬러라는 소리였다. 매 표시가 단속에 폐문단속(당시 밤 10에 문을 닫기로 약속), 그리고 약사감시를 하다 보니 약국 문을 닫고 나가야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모범을 보여야하니 혼자 바보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단속을 하다보면 멱살을 잡히기도 해 그 때부터 나 자신을 보호한다고 합기도와 유도를 열심히 정말 열심히 연마하였다. 그 바람에 유단자가 되긴 했지만... 그리고 덩치 큰 마누라에게 새우꺾기를 당하지 않아서 좋았고... 아무튼 오년 약국킬러소리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권리금 장사는 분명 아닌데 오년에 한번 씩 자의든 타의든 약국자리는 옮겼으니... 같이 일하던 임원중에는 일 년 약국킬러도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물론 보람도 있다. 안타까움도 있고... 우황청심환을 찾는 뇌경색환자를 빨리 병원으로 가게 하여 후유증을 최소화하여 나중에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치질좌약만 찾는 대장암 의심환자를 조기에 병원을 소개하여 완치 시킨 일... 체했다고 소화제 달라고 찾아온 친척을 심근경색증을 의심해 병원에 보내 신속히 삽관하여 살린 일... 조금씩 하혈하는 선배의 부인을 산부인과를 소개해도 부끄럽다며 미루다 결국 시기를 놓쳐... 좀 더 강권하지 못한 아쉬움도... 의약분업 후 약국환경이 급변하였다. 처방전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가 되고... 점점 단순한 조제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누가 누가 잘하나? 조제를 빨리하기? 나름대로 복약지도를 잘하려 하건만... 스타가 되어야 한다?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로 윤리강령 낭독 하나는 그런대로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조제 시 환자를 위해 마음 속 기도를 한다. 조제하는 손길에 환자의 쾌유를 진심으로 비는... 그러나 이제 지천명에 들어서니 스타고 뭐고 환자에게 비쳐지는 내 모습이... 일순간 바빠 조제순서가 바뀌는 등 자기 마음에 안들면 눈을 까뒤집고 덤벼드는 아줌마들, 행여 단순 조제실수라도 생기면 어떨까? 잠시 젊은 날을 그려본다. 잔주름 하나 없던 동안의 그 때도 그랬을까? 스타가 되라? 평소 악기 하나를 다루고 싶었던 마음에 요즘 독학으로 트럼펫을 불고 있다. 비록 초보라 삑삑거리지만 터져 나오는 우렁찬 소리가 금관악기의 제왕답게 패기가 넘치는 것이 젊은 날을 돌이켜보게 한다. 문득 악사가 아닌 약사라는 소명의식을 새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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