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캄보디아 여행기 4 - 왓트마이와 톤레샵 호수
본문
캄보디아 재래시장에서 파는 민물생선
왓트마이 사원 전경
왓트마이 사원의 위령탑
위령탑안에 전시한 해골들
서바라이 호수를 배경으로 한컷
서바라이 호수 좌판에서 파는 물방개
톤레샵 호수 선착장
우리가 탄 톤레샵 호수 유람선
톤레샵 호수의 수상가옥 생활 모습
톤레샵 호수 수상 학교
수상 가옥의 참담한 모습
우리에게 캔음료를 팔려고 따라오는 모녀들
톤레샵 호수에 우리 태극기가
호수에서의 고기 잡이
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우리 일행은 짐을 싸들고 나와 캄보디아의 마지막 3일째 여정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캄보디아의 재래시장이었다. 재래시장을 들러보는 순간 우리는 60년대의 우리 한국 재래시장을 연상시켰다. 생선, 돼지고기는 냉장고도 없이 그대로 팔고 있었고. 민물고기, 민물새우등으로 만들어진 젓갈 등을 판매하는 곳을 지날 때는 그 역한 냄새를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밀조밀한 시장 골목을 지나면서 캄보디아의 정취와 정겨운 모습을 느끼기 보다는 그냥 빨리 빠져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곳을 나와 버스로 다음 관광장소로 이동하면서 스위스 사람이 운영한다는 무료병원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다. 병원밖에 길게 늘어서있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열악한 캄보디아의 의료시설을 한눈에 직감할 수 있었다. 가이드 말이 캄보디아가 물가가 싼 편이라 살기는 좋다하지만 여기 살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의료시설 이용이라고 한다. 병원이용하기도 어렵지만 진료비가 턱없이 비쌀뿐더러 진료수준이 엉망이라 현지교민들이 오히려 한국에 와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고 한다. 대부분 캄보디아인들이 이와 같은 빈약한 의료시스템, 빈곤의 만연, 건강검진에 대한 무관심에 처해져 있다. 특히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매년 500명의 말라리아치사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시엠립 시내를 돌아 작은 킬링필드라고 불리우며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시엠립과 앙코르 유적 인근에 학살당한 영혼을 기리는 위령탑이 있는 왓트마이 사원을 찾았다. 위령탑안에는 크메르루즈 집권기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실제 유골을 유리관 안에 모아 놓았는데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붉은색의 해골은 임산부의 해골이라는 이야기에 그 당시 폴포트 정권의 그 만행과 아픈 역사 참담한 그 과거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바로 위령탑 옆의 게시판에는 그 당시 고문하는 장면, 학살하는 장면 등 처참했던 과거 역사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왓트마이는 프놈펜의 킬링필드 사원의 위령탑과 모양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하나 규모는 훨씬 작다고 한다. 캄보디아인은 이 킬링필드라고 하는 참담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사항에 대해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1975년부터 4년간 폴포트가 이끌었던 크메르루즈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만 캄보디아 인구의 30%정도 약 200만이 된다고 하니 정말로 뼈아픈 과거를 가진 나라이다.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이 대학살은 인간의 잔인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씁쓸한 마음을 접고 왓트마이 사원을 나와 다음 관광지인 서바라이 호수를 찾았다. 서바라이는 앙코르 제국 시대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만든 거대한 인공 호수로 둘레가 (남북2.2km 동서 8km)에 달하는 큰 규모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를 위해 사람들이 기계도 없던 시절 삽으로 직접 파서 만든 호수라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는지 상상이 안갈 정도다. 특히 우기 때 내린 비를 모아두었다가 건기 때 관개해서 농사를 지었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능보다 관광용으로 사용한다. 앙코르제국 당시에는 관개를 잘해서 대 제국을 유지했다는데, 지금의 캄보디아보다 오히려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시원한 호수 바람을 느끼며 관광하고 있는데 어디서 낯익은 우리 동요가 들려온다. 캄보디아 아이들이 일렬로 서서 우리 한국 관광객 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학교종이 땡땡땡, 곰세마리, 퐁당퐁당 우리 동요를 들려준다.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누가 우리 동요를 가르쳐 준 모양이다. 아이들이 노래를 끝나곤 박수와 함께 우리 월드컵 구호 대~한민국~~짜짜짜~~짝짝~~외친다. 그리고는 조잡하게 만든 손팔찌를 들이대며 1달러를 외친다. 상행위라고 보기보다는 구걸에 가깝다. 누가 시킨건지는 몰라도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구걸하다 시피 달려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부모에게 어리광을 필 나이의 아이들에게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생활전선에 내몰린 아이들...이들에게 앞으로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일까? 나는 다시금 그 옛날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상기해본다. 그리고 그 주변 아주머니들이 팔고 있는 좌판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다라위에 놓인 튀긴 곤충들...메뚜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물방개와 귀뚜라미...과연 우리가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 그 사람들에게는 맛있는 간식일지 몰라도.ㅎㅎㅎ..그 나라의 음식문화이니 우리가 이해해야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을 나와 우리는 한국식당에서 삼겹살로 점심을 속히 마친 후 동양 최대의 호수인 톤레샵호수로 향했다. 버스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황토길 한참 달려 도착한 톤레샵 선착장...최근 지어진 듯한 선착장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관광 유람선과 누런 황토물이 넘실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배는 20세쯤 보이는 청년이 몰고 있었으며 능숙하게 조수를 맡고 있는 소년은 8~9세로 보였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톤레샵호수, 길이 100km, 너비 36km, 건기시의 수심 1m, 우기시의 수심 12m, 우기에는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넓이와 비슷하고, 건기시에는 그 유역면적이 서울시의 두 배라는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인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자 생명줄이기도 하단다. 한국의 연간 어획고가 약 40만 톤인데 비해 캄보디아 인들이 톤레삽 호수에서 잡아들이는 물고기의 양은 연간 1백만 톤이라고 한다. 톤레삽 호수에는 80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면적의 15%를 차지하면서 그 다양한 식물 및 어류를 통해 캄보디아인에게 60%이상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배를 타고 가면서 호수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수상가옥과 선상가옥을 바라보았다. 겨우 사방을 식물의 잎으로 짠 돗자리 비슷한 것으로 엉성하게 막은 수상가옥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보였지만, 유동력선을 두 세척씩 매어두고 있는 선상가옥도 꽤 있었다. 그런 집은 집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모습에서도 넉넉함이 엿보였다. 물고기를 잡아 팔아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이 물이 그 사람들의 전부인 셈이다. 학교, 교회도 옆집 나들이도 배타고 가야하고, 이 누런 흙탕물로 밥도 짓고 설거지, 빨래는 물론 식수로도 사용한다고 하니 우리가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오다보니 이곳은 엄청나게 오염되어 있지만 그 생활을 쉽게 버리지는 못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가보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수상가옥에서의 그 생활은 그 삶 자체가 비참함 그대로 이었다.
톤레삽 호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상가옥 주민들 대부분이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조국을 탈출한 베트남 난민들(보트 피플)이라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던 도중 수상 학교도 보았고, 우리 태극기와 함께 '다일수상유치원' ‘대구칠곡교회’라고 큼직하게 한글로 쓴 이름도 보았다. 여기 수상가옥은 전기 공급이 되지 않아 자동차 배터리로 불도 밝히고 간혹 TV도 시청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를 지나다 보면 허름한 배터리 충전소도 볼 수 있었다. 1시간 너머 배를 타고가다 보니 수상가옥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부터 아이들이 배도 없이 다라나 양푼대야를 타고 열심히 노를 저어 구걸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원달러’를 외친다. 위험하지만 이것이 이들의 삶이다. 그 모습이 참 충격적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어린 소녀를 태운 캄보디아 아주머니가 작은 동력선으로 열심히 우리 배를 쫓아오고 있었다. 딸같이 보이는 소녀의 목에는 무거워 보이는 애완용 뱀을 두르고 있었다. 어렵게 우리 배 가까이 대고는 힘들게 그 소녀를 올려보내 우리에게 캔음료를 파는 것이었다. 우리는 차마 캔음료를 사기보다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원달러를 꺼내 쥐어 주었다. 구걸을 한다고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아이의 선량한 얼굴과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게 눈에 밟힌다. 이곳 수상가옥 사람들의 가난을 보면서 마음이 저절로 울컥! 감정이 솟구친다. 천 년 이상을 지냈으면 이젠 풀어줄 만도 한 앙코르와트의 저주, 그러나 내가 보기엔 아직도 캄보디아의 앞날은 어두웠다. 저 수상족들을 육지에로의 이동시키고, 톤레샵 호수의 수상가옥이 없어지는 날, 그날이 와야지만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이 톤레샵 호수의 기적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톤레삽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상 가옥촌 주민들의 생활상이 너무 눈물겹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짧은 생각일 뿐 가이드말이 캄보디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우리 한국, 프랑스, 스위스보다 높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천여 년 전 찬란한 문화를 일으켜 불멸의 유적을 남겨놓은 크메르 민족, 한 때는 우리 한국보다 잘 살았던 나라,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불구가 되었으며, 현재는 다른 나라의 투자에 힘입어 새롭게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캄보디아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천혜의 부존자원과 복된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한다. 부디 그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기를, 그리고 외국의 원조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자력으로 잘사는 국가의 대열에 서게 되기를 빌어보면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캄보디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시엠립 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베트남 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은 베트남 하롱베이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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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욱님의 댓글
선배님..성실...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나네요..^^넘 즐겁고 잼있어서요..다른 선후배님 ..서바라이 호수 좌판에서 파는 물방개..물방개를 묵는데요...ㅎㅎㅎ보기만 해지만..왠지..쩝..ㅎㅎㅎ암튼 넘 즐거웠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멋진 형님의 기행기에 동승해 캄보디아를 돌아봅니다.그들의 삶을 조명해 보시고 아름다운 글을 주시니 감동이군요..노래도 넘 좋고요..형님, 여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