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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기 4 : 파묵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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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일째..."파묵칼레"호텔에서의 아침은 상쾌하였다. 어제밤 야외온천장에서 목욕한 덕분으로 그간의 여행의 피로가 풀린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파묵칼레 관광여정을 시작했다. 호텔을 나와 조금 움직이니 저 멀리 흡사 빙산과도 같이 천연석회가 산을 이루어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으로 우리들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눈의 궁전에 와있는 느낌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이기도 파묵칼레(Pamukkale)는 지면이 완전히 눈으로 덮인 듯한 언덕으로 이루어 보이는데, 사실 이것은 눈이 덮인 것이 아니라 온천수에 의해 이루어진 자연의 대작품이다. 이곳이 바로 터키인들이 '목화의 성(Cotten Castle)’. 파묵(목화), 칼레(성)에 담긴 의미인 '파묵칼레'라고 이름붙인 것은 고대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시대이다. 하얀 온천지대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풍경이다. 터키 현지인들이 아름다움을 비유할 때도 파묵칼레(Pamukkale)가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이 눈부신 하얀 절벽과 파란 수면이 어루어져 만든 아름다운 풍광이 흡사 산비탈에 깎아 만든 계단식 다랑이 논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소금가루를 겹겹이 쌓아놓은 듯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다. 산밑으로 내려가면서 석회를 머금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성분들이 층을 이뤘고 층마다 푸른 물을 머금고 있다. 석회층은 햇빛에 반사되면서에머랄드빛으로 수놓은 것처럼 청아하게 빛난다. 섭씨 35도 정도의 이 온천수는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 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일행은 맨발로 이곳을 올라 석회암의 환상적인 물결무늬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잠시나마 족욕을 즐겼다. 예전엔 물이 넘쳐나면서 온천욕도 직접 즐겼다고 했지만 이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하지만 지나친 개발로 무분별하게 물을 끌어 썼기에 과거에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계단식 온천이 지금은 온천물은 거의 없고 흘러내린 석회봉만이 '목화의 성(城)'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지금은 석회봉의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석회층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산책을 하려면 신을 벗고 맨발로만 출입이 일부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온 사방에서 나이가 많은 관절염 환자들, 류마치스 환자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모두 이곳 온천을 찾아 와서 병을 고치려고 했으며, 또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온 도시가 죽음의 도시로 변하였다고 한다. 북쪽의 입구에는 네크로폴리스라는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 무덤은 온천에서 치료를 하다가 죽은 자들의 무덤이란다. 그래서 한 때는“죽은 자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이곳은 예로부터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근처에 순례객들을 위해 히에라폴리스가 세워졌다. 이 온천에서 기적을 바라는 순례객들은 아픈 몸을 담그고 치료를 받곤 하였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에 페르가몬의 왕조였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의 온천지로서 2,3세기에 가장 번영했던 고대 도시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다. 이곳에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왕은 기원전 180년경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였다. 유메네스 왕은 전설의 왕국 페르가몬의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인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세웠다 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웃의 고대도시 라오디케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급진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함으로써,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몇차례의 대지진으로 고대도시의 많은 유적지가 파괴되었지만, 아직도 2-3세기 최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바둑판 모양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이 도시의 상징은 신전들이었다. ‘신전 전시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의 신전이 건립되었다.
로마 목욕탕과 원형극장 사이에 남아 있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아폴로를 모신 신전은 대표적이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면서 인구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붕괴되어 폐허로 변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 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거대도시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는 석회봉으로 여행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곳이지만, 사라진 거대한 히에라폴리스 고대도시도 매력이 있다. 히에라폴리스 버스주차장에서 북쪽 입구로 들어서면 네크로폴리스가 먼저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무덤의 수가 대략 1,000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공동묘지로 야말로 '죽은 자들의 도시'이다. 이곳의 네크로폴리스는 벌판에 방치된 듯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석곽의 형태로 되어 있다. 석곽의 모양은 다양하다. 겉 뚜껑에 현란한 장식을 하거나 아예 집 모양을 한 것도 있고 별다른 장식 없이 수수한 상자 모양의 것도 있고 크기도 다양하다. 무덤의 형태도 맞배 지붕형, 아치형, 2층 건물형, 원형 등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어 마치 무덤 전시장을 연상케 했다. 네크로폴리스 끝에 거대한 두 개의 아치가 인상적인 로마 욕탕 건물의 유적이 있었다. 그리고 히에라폴리스 구역으로 진입하는 도미티아누스 문과 비잔틴 문을 지나자 클로네이드 거리를 중심으로 옛 도시의 유적과 폐허더미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으로, 주신으로 모시는 태양신 아폴로의 신전이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전 안에는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 플루토(하데스)에게 바친 플루토니움 동굴신전이 있었는데, 이 동굴에서 분출되는 가스를 들여마신 신관이 몽환 상태로 신탁을 전했다고 한다.
아폴로 신전 북쪽에 수용인원 1만 5천명 규모의 원형극장이 있었다.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설된 이 원형극장에서 황제를 위한 대리석 귀빈석 등 많은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어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30년에 로마에 점령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과 개선문 등은 모두 로마 시대 작품이다. 양 옆에 둥근 탑이 있는 개선문은 아드리안(Publius Aelius Hadrianus, 재위 117∼138) 황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수용 인원이 약 1만5천 명이나 되는 원형극장도 아드리안 황제 시대에 완성되었고,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때 재건되었다고 한다. 1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히에라폴리스의 극장. 에페소의 대극장에 비하면 작지만 상당히 큰 극장이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로마 원형 경기장의 규모로 그 도시의 인구를 가늠하는데 보통 원형극장 수용인원의 10배를 도시 인구로 추정하므로 당시 히에라폴리스의 인구는 15만 명 정도의 큰 도시였다. 바둑판 모양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히에라폴리스는 ‘신전 전시관’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수의 신전이 건립되었으며 치유의 신인 아폴로는 이 도시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전환된 목욕탕과 사도 빌립의 무덤(마르티리움)도 완벽한 설계 하에서 세워졌다. 히에라폴리스가 소아시아에서 15만 명이 될 정도로 번성한 이유는 당대의 무역상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에라폴리스는 교역과 상업을 통해 소아시아의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양모 산업으로 유명하며 더불어 이곳의 얼룩무늬 대리석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콘스탄티노플(현이스탄불)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에 시공된 화려한 대리석 기둥들은 이곳에서 갖고 간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을 구경하고 약간 도로를 따라가면 우리는 다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온천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은 수천년 동안 석회성분이 퇴적을 거듭하여 거대한 석회붕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 천년 동안 지하에서 솟아오른 뜨거운 석회질의 온천수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흐르면서 지표면에 수많은 물웅덩이와 종유석등을 만들었는데 지하수에 함유된 석회성분이 지표면을 백색 석회질로 하얗게 덮어 버려 마치 목화의 성 같은 희귀하게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석회붕 앞의 풀은 이전에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호를 위해 입장이 금지 되었다. 다만 흐르는 물에 맨발로 온천수를 걸을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너나할 것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석회층의 물 고인 웅덩이에 들어갔다. 유황과 석회 성분이 듬뿍 배어있는 이 더운 온천수가 흐르는 곳을 걸으면서 뭔가 몸속에 있는 병이 다 치료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파묵칼레의 환상적인 경관에 더한 이곳 온천수는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3세기 도시의 황금기에 세워진 대욕장에 로마의 황제, 귀족, 부유층 계급이 휴양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로마의 황제들을 비롯한 많은 고관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세계의 기적으로 불리는 로마시대 온천도시이자 문화 자연 복합유산인 파묵칼레에서 내일의 카파도키아 여정을 위해 그곳의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데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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