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
천경자의 그림세계
본문
천경자
그림세계
이탈리아 기행/1973/90.5x72.5cm/종이에 채색
글/sappho
음악/餘白
바쁘게 산다는 것,,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바쁜 일이 없었다면 무엇을 하며 살고, 어떻게 지금 나이에도
보기에도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며 지낼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이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어느 적정 수준까지는 계속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바쁠수 있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지만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만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것이라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다.
아무리 먹고 살게 해주는 직업이라도 쉬지못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잠을 안자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일을 하는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을의 초입에는 여행도 몇번 다닐수 있었는데,,
계절이 무르익어 가면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몇일전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내었는데,,
이번에는 몸이 힘들어서인지, 잠을 충분히 자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것에 휴가의 대부분을 쓰고 말았지~
그리고 또 한가지 블로깅도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내 손은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미술전시회-
그 몇번의 전시회를 돌아다보며 휴가도 이제 끝으로 치닫고 있다.
그림에 대한 전문인이 아닌 내가 그것도 한국미술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천경자전-을 보고와서 무슨 구구절절 말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요즘은 IT산업의 급작스러운 발전으로
너도나도 컴을 가지고 있고 모든 정보의 공유로 어디에서나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들을 간접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 하지만, 나는 직접 진품을 감상하러 발로 뛰는 쪽에 속한다.
오늘은 그 몇군데의 전시회중에서 너무 화려하게 알려진
-천경자- 작가의 그림을 올려본다.
미술 평론가의 글도 올리지않고,,
그저 보고 즐거운 그림 감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림,,
오빠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어릴적, 집안에서 오빠가 쓰던 방에는 언제나 화구와 물감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그림을 특별히 잘 그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는 사람이었다.
어디쯤에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물려받은 유전인자가 있었음일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에게 언제나 물감과 그가 원하는 모든것을 풍요로히 제공하고
계셨던 것도 기억한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냉랭했던 어머니여서 그러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다정하지는 못하셨어도 모성으로서의 책임감을 필요 이상으로 제공하고
싶어 하셨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어느 한쪽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다른 어느곳에서 반드시
그것을 상쇄할만큼의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내며 살아가기 마련인 것 같다.
설사, 그것이 자기만족에 그치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해도 그칠 수 없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의 뒷모습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본능이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우리들 삼남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말이다.
그런 애정도 내가 보기에는 타당하지 않을때가 많았지만,,
그림을 대할때마다 어릴적의 오빠를 통한 막연한 동경과 감히 덤빌수도
없었던 아쉬움의 극치를 맛보고는 한다
나도 그림을 그렸으면 이런 작가가 분명(?) 될 수 있었을터인데 헴~
보기에 좋다고 하고 싶다고,,해서 모든것을 다 하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내게 주어진 길을 따로 있었으니까
오늘은 또 다른 미술관으로 나갈 참이다.
서둘러야지 ^^
조부/1943년/153x127
노부/1943년/117x147
내가 죽은뒤/1952년/43x54
園/1963년/130x162/종이에채색
시장/1964년/104x136.5/종이에채색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서, 1960년대 중 후반에 제작된 작품의 특징인 달콤하고 환상적인 정조를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이다.이 당시 작가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던 때로서 이전의 사실적인 표현양식과 처절한 고통의 정조에서 탈피하여 더 성숙한 독자적 표현양식을 보여준다. 흰 너울을 쓴 여인들이 꽃이 놓인 식탁에 둘러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서 행복이 가득한 한 시절을 보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이 대조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은은한 색조는 여인들의 달콤한 대화를 표현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靑春의 문/1968년/145x89/종이에채색
바다의 찬가(招魂)/1971년/121x105/종이에채색
이 작품은 1954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상경한 이후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시기에 작가의 고향인 고흥의 바다와 그곳의 기억을 자유롭게 해석하여 회화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고흥의 풍토와 기질이 화가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감수성의 원천인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는 고흥의 바다를 통해서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의 힘을 깨달았고 항상 그 바다를 그리워하였다. 청색, 녹색, 황색, 보라색의 색면으로써 환상적으로 표현된 바다 한가운데에 큰 물고기가 위애서 아래로 꿈틀거리며 지나고 있다. 화면 왼쪽에 나타나는 붉은 몸체의 푸른 가면과 배 위의 색색의 깃발, 사람들의 목에 걸린 목걸이 등이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며, 격정적인 색채의 사용과 어우러져 역동적인 힘을 표출한다.
꽃무리/1972년/182x152/종이에채색
고(孤)/1974년/40x26/종이에채색
카이로 나일강변 이집트여인/1974년/34.8x27.3
뉴욕 센트럴파크/1981년/31.5x40.5/종이에채색
그녀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1960년대에 접어들어 여행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센트럴 파크의 우수어린 겨울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 화면의 원경에는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고, 그 중에는 존 레논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고풍의 아파트도 있다. 원경의 아파트, 중경의 나무, 지나가는 마차는 모두 회색빛으로 채색되어 있어 추운 겨울날 공원의 한파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 회색빛이 전경으로 올수록 진한 강도로 채색된 것은 화면에 원근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주목된다. 인적이 드문 겨울 공원길의 모습은 마차가 말굽소리를 내며 막 지나갈 것만 같은 시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폭풍의 언덕/1981년/24x27/종이에채색
이 작품은 1980년 겨울, 영국의 하워드가를 찾아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직접 오른 후 제작한 것이다. 그녀는 종교적인 세례를 받을 때의 감화를 이곳에서 폭풍우를 대면한 경험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 그림에는 그 당시 작가가 경험한 감흥이 잘 드러나 있다. 언덕의 모습은 힘찬 필치로 그려져 있고 차분한 갈색톤과 녹색 톤이 화면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물결치듯이 출렁이는 언덕의 모습은 투명한 색채로 구사되어 더욱 우수어린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투명한 색채 이미지는 여러 번 겹쳐 칠하는 과정으로 획득한 것이며, 색채를 깊고 은은하게 형성하여 자칫 낭만적인 풍경에 그칠 수 있는 언덕의 이미지를 종교인이 경험하는 감화와 같은 장엄함으로 만들고 있다.
폭풍의 언덕/1981년/24x27/종이에채색
하와쓰(폭풍의 언덕)/1981년/24x33/종이에채색
황금의 비/1982년/34x46/종이에채색
노란 산책길/1983년/94x74/종이에채색
캬바레(뉴욕)/1990년/24x27.5/종이에채색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2/1993년/45.5x38/종이에채색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3/1993년/41x32/종이에채색
(스케치)타히티의 소녀/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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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식님의 댓글
목두님!~~ 무슨 고전학을 연구 하시나요?~~ㅎㅎㅎ
최영창님의 댓글
넌, 목두가뭐냐~ 천경자의 그림세계는 강렬한 느낌이 있어서 좋아..
글구 담배좀 줄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