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
무료극장
60년대의 아동만화
김인순
교련발표회
통키타 여행
롯데껌
60년대 선풍기 광고
60년대의 서울역앞
헌책방
뻥튀기
굴뚝청소부
60년대의 시발택시의 행렬[서울역]
60년대의 창경원
60년대 서울역앞의 전차
60년대의 여자아이
60년대의 신발장수
60년대의 시장의 사기전
60년대 서울 도봉동의 소달구지
60년대 서울 종로거리
60년대의 서울 공동수도
말뚝박기 놀이
60년대의 찹쌀떡
피서인파 150만 구식증기기관차까지 동원된 임시열차도 초만원 위험을 무릅쓰고 열차위까지 몰려 타고 있는 피서인파.1972. 07.
나훈아,남진의 인기 새로이 등장한 포크 송에 대해 트로트의 부흥에 기여한 대표적인 가수가
나훈아, 남진 등이다. 이들의 노래는 모두 사랑, 이별, 그림움, 미움 등의 감정을 다양하고도 직접적인 어법으로
묘사하여, 오늘날까지도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1972년 6월4일 밤 11시경 서울 시민회관 공연 도중 젊은 팬으로 부터 피습을 당한 장면이다. 당시 과열된 인기의 한면을 보여준다.
TV 드라마 광고
TV CF 70년대 초반 대중들은 텔레비젼 연속극 [아씨]와 [여로] 앞에서
눈과 귀를 빼앗긴 채 울고 있었다. 1971년 겨우 62만대에 불과하던 텔레비젼 수상기의 보급대수는 1975년 2백만대,
1980년 660만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대중문화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군사정권은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텔레비젼 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61년 KBS 텔레비젼을 개국시키고, 1969년에는 '전자산업육성법'을 공포해 텔레비젼
수상기의 보급을 적극 장려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젼 방송은 1956년 6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 4번째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진은 당시 MBC 일일연속극의 신문광고이다.
일일연속극은 1970년을 기점으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 붐은 1970년 3월 시작한 TBC의 [아씨]에서 비롯되었다. 1972년 세 방송국은 매일 제작 방송하는 일일연속극 편수가
13편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한편 T.V.방송이 보급됨에 따라 상업광고가 본격화되었다. KBS는 1969년 상업광고 방송을 그만 두었다가 1981년에 다시 재개하였으며,
민간상업방송인 MBC는 개국과 함께 계속 광고방송을 하였다.
1973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텔레비젼의 프로그램 중간에 하는 광고는 금지되어졌다.
|
|
|
촬영정보 |
| |
정보가 없습니다. | |
|
|
|
댓글목록 0
이시호님의 댓글
제가 몰래보던 썬데이 서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