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
내게 힘을 주는 두 아들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7.09.19 03:13
조회수 : 1,716
본문
내 나이 열아홉 살 때
급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시장 난전에서 채소를 파셨습니다.
어머니 혼자 오남매를 키우기는 벅찼지요.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 온 어느 늦은 밤이었지요.
부엌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삶이 버거웠던 어머니가
북받치는 감정을 눈물로 쏟아 낸 것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모아 둔 적금에다 빚을 얻어
식당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버스터미널 옆에 작은 식당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고,
2년이 채 안 돼 집안 물건이 모두
압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동생들 공부시킬 돈을 벌어 오겠다며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돈을 빌려 준 시장 사람들은
내게 당장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지요.
임신 중이던 나는
그 일로 몸과 마음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통이 몰려와
급히 병원에 갔습니다.
오랜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울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서둘러 산소통을 찾았고 30분 뒤
마침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가 양수에 질식돼 울지 않았더군요.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라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돌이 지나도 아기가 일어서지 못해
병원에 가니 뇌성마비라더군요.
그 뒤 재활치료,언어치료를 받고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큰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처음 임신 소식을 알던 날,
맑은 하늘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어
정말 축복이라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열 달 뒤 다행히 둘째는
우렁차게 울며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둘째 역시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둘째까지 몸이 좋지 않자,
세상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시부모님도
"너희 집에 성치 모산 사람이 있냐?" 라고 역정을 내셨고
남편은 술만 마시면
곤히 자고있는 아이들을 안고 울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교회를 찾았습니다.
아이를 품에 꼭 안고 기도했습니다.
"부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불평하지 않고
불편함도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두 아들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었지요.
아이 손에 온기가 일어나야 한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겨 주었습니다.
다음 날, 어려운 형편 탓에
더는 값비싼 치료를 계속할 수 없어
병원에서 눈 여겨 본 치료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집에서 운동을 시켰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아이 몸 상태가 나아져
큰 아이를 일반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학습 준비를 미리 해 뒀기에
큰 아들은 늘 선생님께 칭찬받았고
덕분에 학교 생활에 금방 적응했습니다.
둘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복도에 서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지요.
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학교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큰 아이를
일반 중학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큰 아이는 특수 학교에 보내고,
소아마비 증세가 덜한 둘째는
일반 중.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스물 네살인 큰 아이는 지금
직업전문반에서 컴퓨터를,
둘째는 일반 대학교에서
특수치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아들을 참 긍정적으로
잘 키우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몸이 성치 못한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지면서 무릎이며 팔꿈치에
늘 상처가 났는데
그 때마다 찢어진 교복 바지를
누더기가 되도록 박음질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교복을 빨 때면
배어 나오는 핏 물을 보고 숨죽여 울었지요.
어느 덧 다 큰 두 아들이 말합니다.
엄마 아빠가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고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밝고 든든한 두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급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시장 난전에서 채소를 파셨습니다.
어머니 혼자 오남매를 키우기는 벅찼지요.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 온 어느 늦은 밤이었지요.
부엌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삶이 버거웠던 어머니가
북받치는 감정을 눈물로 쏟아 낸 것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모아 둔 적금에다 빚을 얻어
식당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버스터미널 옆에 작은 식당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고,
2년이 채 안 돼 집안 물건이 모두
압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동생들 공부시킬 돈을 벌어 오겠다며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돈을 빌려 준 시장 사람들은
내게 당장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지요.
임신 중이던 나는
그 일로 몸과 마음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통이 몰려와
급히 병원에 갔습니다.
오랜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울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서둘러 산소통을 찾았고 30분 뒤
마침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가 양수에 질식돼 울지 않았더군요.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라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돌이 지나도 아기가 일어서지 못해
병원에 가니 뇌성마비라더군요.
그 뒤 재활치료,언어치료를 받고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큰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처음 임신 소식을 알던 날,
맑은 하늘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어
정말 축복이라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열 달 뒤 다행히 둘째는
우렁차게 울며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둘째 역시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둘째까지 몸이 좋지 않자,
세상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시부모님도
"너희 집에 성치 모산 사람이 있냐?" 라고 역정을 내셨고
남편은 술만 마시면
곤히 자고있는 아이들을 안고 울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교회를 찾았습니다.
아이를 품에 꼭 안고 기도했습니다.
"부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불평하지 않고
불편함도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두 아들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었지요.
아이 손에 온기가 일어나야 한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겨 주었습니다.
다음 날, 어려운 형편 탓에
더는 값비싼 치료를 계속할 수 없어
병원에서 눈 여겨 본 치료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집에서 운동을 시켰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아이 몸 상태가 나아져
큰 아이를 일반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학습 준비를 미리 해 뒀기에
큰 아들은 늘 선생님께 칭찬받았고
덕분에 학교 생활에 금방 적응했습니다.
둘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복도에 서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지요.
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학교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큰 아이를
일반 중학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큰 아이는 특수 학교에 보내고,
소아마비 증세가 덜한 둘째는
일반 중.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스물 네살인 큰 아이는 지금
직업전문반에서 컴퓨터를,
둘째는 일반 대학교에서
특수치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아들을 참 긍정적으로
잘 키우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몸이 성치 못한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지면서 무릎이며 팔꿈치에
늘 상처가 났는데
그 때마다 찢어진 교복 바지를
누더기가 되도록 박음질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교복을 빨 때면
배어 나오는 핏 물을 보고 숨죽여 울었지요.
어느 덧 다 큰 두 아들이 말합니다.
엄마 아빠가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고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밝고 든든한 두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댓글목록 0
김연욱님의 댓글
버거운 싦 속에서도 우리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눌물겨운 인내와 사랑과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인고(仁高)인 모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지 말고 열심히 살도록 합시다. ==성실==
지민구님의 댓글
한가위가 있어 가족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 계절입니다..좋은 글 감사드립니다..성실.
崔秉秀(69回)님의 댓글
성 실~~~!!! 69골프회 라운딩하는 날입니다. 오늘 비가 오면 안되는 데... 예보엔 오후부터 비바람에 천둥까지 ...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하네요. 조심~ 조심~~하세요~~~!!!
표석근님의 댓글
성실!!!
박해웅님의 댓글
하루하루 평범한 내일상들이 간절한 어느 이의 소망이 될수 있음을 알고,
하루하루 감사하고 내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할 수 있는 오늘이
되겠습니다. 성실,,
윤용혁님의 댓글
가슴찡한 좋은 글에 마음두고 갑니다.
봉원대님의 댓글
부모님께 전화드린지가 언젠지 손 꼽아봅니다.. 허걱!!! 당장 전화라도 드리고 오늘 저녁엔 뵈러 가야겠습니다. ^)^ "성실"
이기석님의 댓글
성실~~~~~진짜루
윤인문님의 댓글
오늘은 가슴 찡한 글로 시작합니다. 하여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인문님의 댓글
9월 28일(금) 오후 6시30분 모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인사동 9월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꼭 참석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상철님의 댓글
어떻게 살 것 인가? ~잘 성실
이준달님의 댓글
성~~실!!!오늘도 풍요로운 하루 되세여...
이상동님의 댓글
성실...
엄준용님의 댓글
가슴이 메이는 아침이군여...성실
윤휘철님의 댓글
성실! 진정한 사랑은 항상 신뢰와 희망을 준답니다.
李聖鉉님의 댓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박홍규님의 댓글
성실 !!!... (^+^)
전재수(75회)님의 댓글
성실! 며칠후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의 절을 합니다.
김정래(87회)님의 댓글
성실입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성남 야근줄 알었네요,,,ㅋ
변준형님의 댓글
성실~~ 비오는 날은 왜이리 목도 뻐근하고 허리가 아픈지... ㅜ,.ㅜ 사고 후유증인가봐요.. 몇날 몇일을 비가오니... 화창한 파란하늘 밑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헤헤
김태훈님의 댓글
빗길운전 조심하세요~
김택용님의 댓글
성실~~
오윤제님의 댓글
성실
봉원대님의 댓글
오늘 두번째 출석합니다. 퇴근후에 두꺼비 말고 요걸로.... 간단히 아주 간단히<img src="http://i.blog.empas.com/kosignnet/25520586_300x300.gif">
안동인(77회)님의 댓글
마음이 찡하네요,,,형수님,장애자가 좀더 행복해질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장재학님의 댓글
성실 ...
이상호님의 댓글
성실!!
방창호님의 댓글
성실.....
안남헌(82회)님의 댓글
성실!!
엄준용님의 댓글
원대! 귀빠진날 전어에 두꺼비잡구 또 원샷인감.... ㅋㅋ
나랑한잔함세~~~
임한술님의 댓글
지각 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