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 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그런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이철환의 <곰보빵> 中 에서
♪ 거위의 꿈 - 인순이
댓글목록 0
박홍규님의 댓글
성실!!! 가슴 뭉클한 사연이네요...사랑은 받는걸까 주는걸까? 주는 사랑이 ...(^+^)
오윤제님의 댓글
눈가에 눈물이 마구 맺히려고 합니다.
이진호님의 댓글
성 실...우정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정흥수(79회)님의 댓글
전철과 지하철엔 등산복장이 많이 보이는 날 입니다.
13,000의 사연이 뭉클 합니다..찐한 사람 냄새가 나요~~~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誠實 진한 그리고 진솔한 우정의 발로입니다 인고인의 동문애 또한 이러 합니다
전재수님의 댓글
킁킁! 찌~이잉 하니 사람냄새가 납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소중한 인연과 진한 우정을 봅니다.가슴이 뭉클하군요.
김정회님의 댓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애증의 아지랑이가 몽기몽기 피어오릅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흠~~,,,,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우리의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아침부터(?) 좋은글 감사^^
김연욱님의 댓글
세상 살기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해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석광익님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고물상"....... 한번 구입해서 읽어 봐야 겠어요. 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