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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후승 인천고 감독 어머니 박금순씨(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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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 인천일보(05. 4.26)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박금순씨
- "3형제 뒷바라지....야구장서 살았죠"
- 승관 후승 주승 형제 나란히 한국야구사 빛내
- 인천고 '왕중왕전' 우승....45년 고생 값진 선물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장. 한국야구 100년을 기념해 고교야구 왕중왕을 가리는 결승전에서 인천고가 부산고를 2대0으로 누르고 승리하는 순간, 관중석 한켠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는 노부부가 있었다.
박금순(70·인천시 남구 숭의1동)씨와 남편 양순남씨(74)였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아들이 잘 해왔지만, 그날은 정말 100년만에 한번 온 승리의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감동이 더 컸습니다.”
양승관(48·SK와이번스 코치), 후승(44·인천고 야구부 감독), 주승(42·인천고 야구부 코치). 한국 야구사의 이름난 삼형제를 40여년간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세 아들이 가져다주는 승리의 기쁨을 수없이 많이 누렸지만, 둘째가 감독으로 있는 인천고의 우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다.
“큰 애가 초등 4학년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뒤 이어 둘째, 셋째… 동생들이 형을 따라 모두 야구를 했으니 참 오래됐네요. 애들이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발달했나봐요. 어려서부터 야구를 잘하더라구요. 큰 애는 학교 야구부 감독님이 골목야구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집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야구선수생활을 하게 됐지요.”
축구를 잘했던 아버지와 높이뛰기 선수였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운동분야에서 활동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제 소질이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운동선수생활을 하다보니 그 뒷바라지는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추운 겨울, 얼음장같은 찬 물로 저희들 야구복을 빠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처럼 몇 벌씩 여유있게 운동복을 갖추기도 어렵고 세탁기도 없던 그 시절, 어머니는 세 아들의 야구복을 열심히 빨았다. 광목천으로 된 야구복은 땀때문에 여기저기 찢어지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이튿날이면 아랫목 이불밑에 펴 말린 야구복을 말끔히 기워 내놓곤 하셨다. 어머니가 상에 올리시던 얼큰한 닭감자탕은 연습에 지친 삼 형제의 체력을 보강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큰 아들을 시작으로, 세 아들이 줄줄이 야구명문 인천고를 다니는 동안 어머니도 인천고를 내집 드나들듯 드나들어야 했다.
“야구부원 엄마들이 서로 조를 짜서 아이들 식사를 준비해줬어요. 석바위시장에서 잔뜩 장을 봐서는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밥이며, 반찬을 지어서 선수들에게 먹이곤 했지요. 다들 없던 시절이었지만, 내 자식은 물론 남의 자식도 다독여주며 좋은 것 한가지라도 더 챙겨먹이려 어머니들이 참 많이 애를 썼지요. 간식과 점심·저녁 두끼를 해내야 했지만, 그땐 참 힘든 줄도 몰랐어요.”
연세 많으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생활설계사로 있었지만, 어머니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운동을 하는 아들들을 힘닿는 데까지 지원을 했다. 아버지는 마늘, 식초 등 운동선수로서 챙겨먹어야 할 음식이며, 정신자세를 가르쳐주었다.
“큰 애는 체격이 좋아 별 걱정을 안했는데, 둘째는 몸이 좀 약했어요. 야구를 한 지 얼마안돼 그만두게 했더니 몰래 야구용품을 챙겨갖고 나가서는 녹초가 되도록 연습을 하고 오는 거예요. 그때이후로는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뒀죠.”
승승장구, 이름을 날리는 큰 형을 본으로 밑의 동생들은 뭐라 시키지 않아도 훈련에 온 몸을 불살랐다.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며 기량을 닦았다. 둘째 후승이 고교졸업후 가족의 충고를 따르느라,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해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를 빼고는 어머니가 아이들로 해서 속이 상한 적은 거의 없었다. 삼형제는 오로지 좋아하는 야구에 몰입했고, 그 만큼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1982년 골든글러브 수상, 삼미슈퍼스타즈· LG트윈스· 태평양돌핀스·현대유니콘스 선수, SK와이번스 외야수비코치…. 화려한 이력과 함께 한국 야구사의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기록된 첫째 승관, 국내 프로야구팀 선수 및 대만 프로팀 코치 등을 거쳐 지난 2002년부터 모교인 인천고 야구감독으로 있으면서 대통령배 우승(2004.5월)·야구 100주년 우승을 일궈낸 후승, 모교인 숭의초등학교 야구감독을 거쳐 인고 야구부 코치로 있는 주승. 삼형제는 서로 단점을 코치해주고 장점을 격려해주며 한국 야구의 빛나는 선수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 45년간 야구장에 쫓아다녔네요. 참 긴 세월이지만, 언제 그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이 아이, 저 아이 경기가 있을 때마다 쫓아가 소리높여 응원하고, 먹을 것 챙겨주고 아픈 몸 보살펴주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지금도 각자 바쁜 일정때문에 식구들이 한 자리에 잘 모이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똘똘뭉쳐 서로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큰 아들의 두 아들 등 손자손녀들까지 야구, 육상, 수영 등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손미경기자 blog.itimes.co.kr/mimi
종이신문정보 : 20050426일자 1판 9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5-04-25 오후 9:30:00
댓글목록 0
김종득님의 댓글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 세자녀!
인고인으로써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